편집자주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 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곳. 10여 년 전에는 한국도 베네수엘라 모델을 따라야 한다더니 요즘엔 베네수엘라 꼴 날까 봐 걱정들이다.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가 중남미의 제대로 된 꼴을 보여준다.
다빗의 아버지는 '코요테'(중미와 멕시코의 밀입국자 거래상을 일컫는 말)에게 돈을 주고 아들의 미국행을 부탁했다. 일곱 살 꼬마는 다른 밀입국자들 틈에 끼어 엘살바도르에서 댈러스까지 2,400㎞의 여정을 시작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용감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겠노라 다짐하며 걸었다. 북반구 삼각지대(Northern Triangle)라고 불리는 중미 3개국(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에는 코요테를 따라 미국으로 향하는 수많은 다빗이 있다. 올 2월에만 1월보다 60% 증가한 9,000여 명의 아이들이 부모 없이 국경을 건넜다.
이들 3개국은 니카라과, 도미니카공화국, 벨리즈, 코스타리카, 파나마와 더불어 1993년에 발족한 중미통합체제(SICA) 회원국이다. 중미는 원주민 인디오 문화유산의 보고다. 풍부한 생물 다양성은 물론 중남미를 둘러싼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를 끼고 아메리카 대륙의 교량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SICA 회원국의 인구는 5,700만여 명, 국내총생산은 약 1억800만 달러, 국제 투자는 약 30억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개발의 기반인 인구 및 경제 규모는 매년 감소 추세다. 빈곤과 불평등, 정치·경제적 난관, 천연자원보호, 재난관리 및 예방, 조직범죄 및 보안은 회원국들이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공중보건 및 경제적 측면에서 라틴 아메리카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친 코로나19로 이 지역 전반에 걸친 정부 통치의 결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실패한 포퓰리즘과 부정부패, 무너진 민주주의의 여파로 국민의 권리는 박탈당했다.
미국은 이 지역 문제로 늘 골머리를 앓아왔다. 지리적으로 미국과 인접해 테러 병참 거점화 우려가 제기되어 왔고 6만여 명에 이르는 조직범죄단이 국경을 넘나들며 마약과 무기 밀매 등 각종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 캐러밴(범죄 및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미국으로 진입하려는 중미 국가와 멕시코의 이주민 행렬)의 수는 나날이 늘어난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모를 동반하지 않은 미성년자의 망명 신청이 급증하자 이민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2014년 북부 삼각지대에 대한 지원을 7억 5,000만 달러로 늘렸다. 이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보기 시작해 이 지역의 살인 사건이 감소하는 듯했으나 불법 이민 행렬까지는 막지 못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미 국가에 캐러밴의 밀입국이 계속될 경우 이들 나라에 제공했던 대규모 원조를 끊거나 상당 부분 축소할 것이라 엄포를 놓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임기 후반 정책을 따른다. 그러나 당근도, 채찍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SICA는 아메리카 11개국의 지역 내 옵서버와 한국을 포함한 21개국의 지역 외 옵서버들의 도움을 받아 경제통합과 정치안정을 꾀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한국에선 수십 년째 '떠오르는' 중남미. 다빗과 같은 중미의 어린이들이 미국행 대신 고국에 남아 중남미를 제대로 띄울 날은 언제쯤 올까. 올 6월 SICA 회담에서 미국은 이 지역에 대한 한국의 지원을 치하하며 더욱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했다. 한국도 포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한·SICA 공조가 미국의 칭찬 뒤로 우리 실속도 야무지게 챙기는 협력이었으면 한다. 무한한 가능성의 땅이 자력으로 잠재력을 발휘할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제고 그때가 온다면 한국과 중남미가 조금 더 가까워져 있기를 기대해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