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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과 이해충돌방지법…정치인들이 조심해야 할 법”

입력
2021.07.29 16:30
수정
2021.07.29 16:39
24면

[김정곤의 노크]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최근 공직사회를 강타한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의 사기사건과 관련해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 현주소를 진단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국가 청렴도는 상당히 높아졌다면서도 “사회지도층 인사 중에 직업윤리 의식이 낮거나 과거의 낡은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최근 공직사회를 강타한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의 사기사건과 관련해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 현주소를 진단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국가 청렴도는 상당히 높아졌다면서도 “사회지도층 인사 중에 직업윤리 의식이 낮거나 과거의 낡은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로 알려진 사기꾼이 공직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수산업자 행세를 하는 김모(43)씨의 100억 원대 사기행각에 검사와 경찰은 물론 특별검사, 야권의 유력 정치인, 중견 언론인들까지 들러리를 선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김씨가 유력 인사들에게 대가를 바라고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것인지는 경찰 수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한낱 사기꾼의 인맥관리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줄줄이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은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일정 금액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처벌을 받게 된다. 2016년 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또는 김영란법)에 따르면 가짜 수산업자에게 렌트차량이나 명절선물 등 100만 원을 초과한 금품을 받은 공직자들은 원칙적으로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대규모로 적발된 것은 처음이어서 이번 사건은 ‘김영란법 게이트’로 회자될 정도다.

청탁금지법 시행 5년째를 맞아 대규모 부정부패 사건이 터진 이유는 무엇일까. 청탁금지법을 사실상 총괄하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 전현희 위원장은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공직사회 청렴도는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사회지도층 인사 중에 직업윤리 의식이 낮거나 과거의 낡은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공직자가 지위를 남용해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해충돌방지법’이 내년부터 시행되고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을 확대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의 청렴도는 크게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전 위원장은 그러면서 “청탁금지법과 이해충돌방지법은 국회의원들이 상당히 조심해야 할 법”이라고 꼬집었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수산업자 김씨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입건되자 ‘특별검사는 김영란법의 공직자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반면 권익위는 ‘특별검사도 공직자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는데 근거는 무엇인가.

“관련 법령에 특별검사를 청탁금지법상 공직자로 볼 수 있는 명백한 규정들이 있다. 일반법인 특검법과 특별법인 국정농단 특검법 모두에 규정돼 있고, 청탁금지법상 공직자는 다른 법률에서 공무원으로 인정된 사람도 포함하기 때문에 특검 또한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이다. 유권해석을 자문하는 외부 법조인들도 특검은 공직자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내렸다.”

-청탁금지법의 공직자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처음인가.

“공직자 관련성은 법률에 대부분 근거 규정을 두고 있다. 공직자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다투는 논란은 그동안 거의 없었다. 참고로 사법연수생이나 공중보건의, 청원경찰 등도 관련법에 따라 공직자로 인정되고 있어 모두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이다.”

-일각에서는 경찰에서 수사 중인 박 전 특검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특검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데 청탁금지법은 공수처 수사대상이 아니다. 수사 과정에서 대가성 뇌물이 확인되면 형법에 해당되는 범죄행위라서 공수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언론인들도 이 사건으로 많이 입건됐다. 언론인이 김영란법에 특별히 취약한 직업군인가.

“현재까지 입건된 언론인은 4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지난해 말까지 총 1만735건의 위반 사례가 신고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 가운데 언론인은 11건에 불과했다. 극히 미미한 수준이고 이번 사건은 좀 특이한 사례로 보인다.”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윤우진 전 세무서장 또한 언론인 접대 사실을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윤 전 서장은 스폰서를 동원해 언론인을 접대한 경우인데, 이 또한 김영란법 적용대상인가.

“공직자가 직접 금품을 받지 않고 제3자에게 접대비용을 대납하도록 하는 것도 해석상 공직자에게 준 금품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다만 2012년 발생한 이 사건은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이라 적용대상이 아니다.”

-특검과 부장검사, 언론인들이 대거 입건되면서 이번 사건이 일각에서는 ‘김영란법 게이트’로 회자되고 있다.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인 공직자, 언론인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안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청탁금지법이 주목받고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 중에 직업윤리 의식이 낮거나 과거의 낡은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게이트라고 불릴 정도인지는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김영란법 시행 첫해 1,568건이던 신고 건수가 4,386건→,3020건→1,761건으로 점차 줄고 있다. 이를 두고 공직사회가 청렴해진 것인지,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 것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청탁금지법이 공직사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청렴 의식을 높이는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왔다고 확신한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던 2016년 우리나라 국가청렴도가 세계 52위였는데 지난해 말 33위로 올랐다는 게 방증이다. 금품이나 접대를 경험한 국민의 숫자나 비율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당연히 청탁금지법 신고 건수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작년까지 제재를 받은 사람이 1,025명으로 전체 신고처리의 6%에 불과하다. 이마저 과태료 처분(679명)이 대부분이고 형사처벌은 110명뿐이어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있다.

“청탁금지법의 애초 취지는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다. 공직자들의 윤리의식을 높이고 잘못된 관행을 바꾸어 청렴문화를 뿌리내리게 하자는 게 애초 취지다. 금품을 받은 공직자라 하더라도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해 형법상 뇌물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한계를 메우는 보완입법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징계만 받아도 승진 등에서 치명적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공직자들은 징계를 받도록 되어 있다.”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적용 대상을 축소하자는 의견도 있다.

“법 제정 당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포함되면서 반발이 컸다. 지금은 도리어 적용 범위를 확대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네이버 등 인터넷뉴스 서비스 사업자의 대표자 및 임직원과 어린이집 원장 및 보육교사 등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적용 대상 범위가 확대되면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의 정도나 청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내년 5월 시행되는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한 기대는.

“법이 시행되면 약 200만 명의 공직자들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정하게 사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원천차단된다. 가족 채용은 물론 수의계약 체결이 제한되고 공공기관 물품 등의 사적 사용도 금지된다. 공직자들은 직무수행 중 이해충돌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나 심리적 갈등을 덜 수 있고 국민은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신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영란법과 마찬가지로 선출직도 모두 적용 대상인데, 국회의원들이 조심해야 될 법이라고 본다.”

청탁금지법과 이해충돌방지법 시각물. 한국일보 그래픽뉴스부 제공.

청탁금지법과 이해충돌방지법 시각물. 한국일보 그래픽뉴스부 제공.


국민권익위는 고충민원을 처리하여 불합리한 행정을 개선하는 한편 부정부패 방지 활동과 국민의 권리 보호 및 구제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상반기 LH부동산 투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여야 정당으로부터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의뢰받아 더불어민주당에 조사 결과를 통보했고 국민의힘 등에 대해서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부정부패 신고와 관련해서는 최근 피신고자 조사권을 확보해 보다 공정하고 내실 있는 조사를 기대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그동안 신고자만 조사한 뒤 관계기관에 통보했기 때문에 반쪽 조사에 그쳤다”면서 “20년 묵은 숙원 사업이 해결됐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에 이어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 조사에 위원장이 직접 참여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

“공무원 행동강령에 사적 이해관계가 있을 때는 직무를 회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해충돌방지법에도 그 내용이 들어가 있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민주당 조사 때는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라 이해관계 신고를 하고 조사를 회피한 거다. 하지만 야당의 경우에는 이전에 근무했던 기관으로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공무원 행동강령상의 회피대상이 아니다. 민주당 조사를 회피했기 때문에 야당도 회피하라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조사를 앞두고 법 규정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야당의 경우 의무회피 대상은 아니지만 동일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

-국민의힘 조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

“권익위는 직접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제출한 자료에 국한해 조사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경우 국민의 눈높이에서도 엄격한 잣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의힘과 비교섭단체 5개당의 경우에도 민주당 조사 때와 동일한 절차와 방법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

-공익신고의 경우 피신고자를 조사할 수 없으면 반쪽 조사에 불과한 것 아닌가.

“20년 전 권익위 출범 당시 다른 사정기관의 견제 등으로 인해 피신고자 조사가 배제됐다. 실제 공익신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이 대목이 최대 장애물로 등장했다. 버닝썬 사건이나 이재용 부회장 프로포폴 사건 등 수많은 공익신고를 접수하는데 피신고자 조사권한이 없다 보니 혐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부패행위 피신고자를 조사할 수 있는 ‘부패방지권익위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해 조사업무에 보다 내실을 기할 수 있게 됐다. 피신고자 입장에서도 수사기관 이첩 이전에 방어력을 행사하는 이점이 있다.”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을 공익제보한 검사가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며 최근 박범계 법무장관을 신고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위반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처리되고 있나.

“부패·공익신고자에게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줬다면 당연 형사처벌 대상이다.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고 권익위가 인정하게 되면 인사조치에 대해서도 원상회복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다만 이 사안은 요건에 해당하는지 현재 조사 중에 있다.”

정리=변한나 사원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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