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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집단폭력, 사이버 불링

입력
2021.07.30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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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 드라마에서 태형(笞刑)이 이뤄지는 장면을 봤다. 법무부 장관 엄마와 재벌 아빠를 둔 피고인은 마약을 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문제아였다. ‘악마판사’라고 불리는 재판관은 분노한 시민들의 의견에 따라 태형 30대를 선고했다. 집행 장면은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었다. 시민들은 갑질을 일삼은 재벌 2세의 처절한 몰락에 열광했다.

물론 공개적 태형은 신체형을 비인간적 형벌로 인식하는 근대 사법체계가 등장하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라졌다. 전 세계적으로 태형은 전근대적 형벌이라는 것이 통념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는 태형을 유지하고 있다. 대개 태형을 집행할 때 죄인의 옷을 벗기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체를 노출하고 매를 맞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치욕이다. 어쩌면 태형은 신체형보다 명예형에 가까울 수 있다.

명예를 박탈하는 형벌이 사법체계 안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최근 SNS상에서는 ‘공개적인 망신주기’가 횡행한다. 가상공간을 뜻하는 ‘사이버’에 집단 따돌림을 뜻하는 ‘불링’이 더해진 신조어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은 온라인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누구나 살면서 하는 푸념이나 실언이 자의든 타의든 SNS를 통해 공개적인 공간으로 옮겨가는 순간 심판관을 자처하는 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윤리’를 벗어난다고 판단하면 바로 널리 알리며 조리돌림에 동참하라고 권한다. 사람들은 “이런 나쁜 놈이!”하면서 리트윗을 하고 순식간에 상대방은 사회의 공적(公敵)이 된다.

사이버 불링은 디지털 매체를 통한 소통이 일상이 되면서 등장한 공개적 태형의 디지털 판본이다. 문제는 사이버 불링으로 가상공간에서 조리돌림을 당하거나 드라마 ‘악마판사’처럼 공개적인 명예형이 형벌로 치면 무기형(無期刑)이라는 점이다. 범죄인의 존엄과 사회적 삶의 훼손이라는 처벌 효과가 사실상 전 생애로 유지된다. 과연 이런 형태의 명예형이 온당한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벌로 범죄인의 평생이 영향을 받아 불행한 삶을 살 개연성이 증가하는 것과 평생이 형벌인 것과는 구별해야 한다.

다수가 자행하는 잔혹한 집단폭력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폭력의 대상은 악마화 되고 폭력의 명분은 합리화되어 폭력의 강도를 진정성의 지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폭력을 떠올려 보라. 폭력의 주체들이 얼마나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한다고 신념과 이념에 사로잡혀 있던가. 주디스 버틀러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보편성이 윤리의 얼굴을 할 때 윤리적 폭력이 발생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집단적 확신만 있고 다름에 대한 인정이 전무한 사이버 불링은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 상대를 표적으로 윤리회복을 내세우는 경우라 할지라도 윤리적 폭력으로 끝나기 쉽다. 타락한 재벌을 공개 태형으로 처벌한다는 드라마 속의 대중적 판타지 역시, 법의 형평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윤리적 폭력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개인의 비도덕적 행위가 무제한의 집단폭력을 정당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윤리적 폭력을 피하려면 늘 상대의 사소한 도덕적 일탈을 빌미로 과도한 응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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