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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임 잊지 않으셨죠?" 사생결단 경선 '팀킬'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21.07.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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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보다 더 독하고 처절한 당내 경선의 역사
이인제 네거티브 '진심'으로 받아친 노무현
친이 vs 친박 '한 지붕 두 가족' 만든 검증 전쟁
경선 내내 싸우다 결국 대선에서 진 민주당
'품격'-'승복'-'원팀' 삼박자 갖춰야 경선 흥행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 참석해 기념촬영 후 이재명(오른쪽) 경기지사와 박수를 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 참석해 기념촬영 후 이재명(오른쪽) 경기지사와 박수를 치고 있다. 뉴시스

"마음고생 많았네" "당해보니 죄송합니다"

최근 청와대를 방문했던 이재명 경기지사문재인 대통령과 주고받았다고 공개한 대화 내용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 지사를 따로 불러 위로의 말을 건넸고, 이 지사는 뒤늦은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 사이에는 작은 앙금(?)이 남아 있었습니다. 민주당 대선주자 중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 지사는 당내 경선이 시작된 이후 후발 주자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 있죠.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들로부터 호되게 당하는 모습을 보며 문 대통령은 2017년의 본인을 떠올렸을 겁니다.


2017년 3월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MBC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100분 토론'에 참석한 당시 문재인(오른쪽) 후보와 이재명 후보. 뉴시스

2017년 3월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MBC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100분 토론'에 참석한 당시 문재인(오른쪽) 후보와 이재명 후보. 뉴시스

지금은 "다리 묶은 채 주먹만 쓰는 권투선수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하지만, 이 지사는 4년 전만 해도 문재인 당시 후보를 전담 공격하는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했죠. 오죽하면 민주당 대선주자인 박용진 의원이 "2017년 이재명 지사의 문재인 후보 공격은 이종격투기(UFC) 수준이었고, 요즘 제가 하는 건 잽 수준"이라며 혀를 내둘렀을까요.

뒤늦게나마 마음의 빚을 덜어내고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된 건 다행입니다. 물론 두 사람이 이렇게 서로 마주하며 웃을 수 있었던 건, 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했기 때문이겠죠? 만약 졌다면,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원망하며 철천지 원수로 남았을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팀킬'인 셈이죠.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들이 28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 MBN스튜디오에서 열린 1차 TV 토론회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진, 정세균,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후보.뉴스1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들이 28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 MBN스튜디오에서 열린 1차 TV 토론회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진, 정세균,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후보.뉴스1

역대로 대선은 본선보다 경선이 더 독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가 누가 나오든지 간에, 일단 내가 뽑혀야 대권에 도전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피 튀기는 경쟁이 펼쳐질 수밖에요. "집권을 위해선 대판 싸우는 게 더 흥행에 도움이 된다"(유인태 전 사무총장)는 의견도 있지만, 요새 민주당 경선을 보면 싸워도 너무 싸우지 않나요?

도대체 왜 저런 걸로 싸우고 있나 싶은 걸로 말이죠. 맏며느리에 서자까지 핏줄타령으로 비화된 적통 논쟁에 고(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반 논란으로 불거진 과거사 소환, 여기에 망국적 지역주의 유령까지. 무엇을 위한 검증이고 경쟁인지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싸움에도 지켜야 할 룰이 있고 이길 수 있는 기술이 있죠. 가장 큰 전제 조건은, 경선이 끝이 아니라는 거. 본 게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거겠죠? 경선에서 이겨 대선후보가 된들, 본선에서 지면 끝이니까요.

그래서 정리해봤습니다. 역대 파란만장했던 대선 경선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면 지고, 어떻게 하면 이기는지 그 뼈아픈 승패의 교훈을.


①네거티브와 역풍 사이… 색깔론 뒤엎은 2002년 민주당 경선

2002년 4월 6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인천 지역 개표를 앞두고 이인제 후보가 심각한 표정으로 노무현 후보 뒤를 지나가고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2년 4월 6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인천 지역 개표를 앞두고 이인제 후보가 심각한 표정으로 노무현 후보 뒤를 지나가고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나라당보다 더 무지막지한 수법으로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맞붙은 이인제 후보와 노무현 후보. 국민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혜성처럼 떠오른 노무현 후보의 '기세'를 꺾기 위해 이인제 후보색깔론 카드를 들고 나옵니다.

과거 노 후보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문제 삼은 데 이어 급기야 작고한 노 후보 장인의 좌익 활동 경력까지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죠. 같은 편의 공격이 상대 편인 한나라당보다 더 독하다 보니, 노 후보 측에선 이 후보 진영을 '한나라당의 2중대'라고 비판하기까지 합니다.

선거 판도를 단번에 뒤집은 건, 2002년 4월 6일 '인천 경선'이었습니다. 이 후보는 이 자리에서도 노 후보 장인의 좌익 활동을 고리로 노무현의 사상을 제대로 '검증' 해야 한다고 압박했습니다. 여기에 노 후보는 기다렸다는 듯 정면 돌파를 선택했죠. 그 유명한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는 명연설이 탄생한 순간이죠.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상승세였던 노무현 후보를 꺾기 위해 색깔론 공격을 제기했다. 한국일보 지면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상승세였던 노무현 후보를 꺾기 위해 색깔론 공격을 제기했다. 한국일보 지면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아내를 버리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서 심판해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색깔론을 '감성적 호소'로 맞받아친 노 후보는 인천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고, '노풍'은 전국으로 퍼져 나갑니다. 일찌감치 '대세론'에 취해 있던 이 후보는 충격이 컸던지 경선을 중도에 포기하고 맙니다.

그해 4월 27일 서울 잠실체육관. 50일 동안 전국을 돈 민주당 대선 경선은 노무현 후보 확정으로 막을 내렸지만, 축제의 장이 돼야 할 그곳에 이 후보는 없었습니다.

정치 행보를 구상하겠다며 싱가포르로 돌연 출국하며 패배의 '뒤끝'을 보였던 거죠. 검증을 가장한 구태의연한 네거티브는 역풍을 맞게 된다는 걸 새삼 깨우쳐주는 장면이네요.


②야당보다 더 무서운 '여당 내 야당', 2007년 한나라당 경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이명박, 박근혜 예비 후보가 8월 13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합동연설회에 참석, 각각 얼굴을 만지며 연설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이명박, 박근혜 예비 후보가 8월 13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합동연설회에 참석, 각각 얼굴을 만지며 연설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처절(?)했던 대선 경선을 뽑자면,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아닐까 싶은데요. 당시 대선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심판론이 거셌고, 여당 역시 지리멸렬하면서 한나라당 당내 경선이 사실상 대선 본선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 경쟁은 더 치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열한 싸움에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는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는데요. 박근혜 캠프는 당시 앞서가던 이명박 후보를 향해 ①BBK 주가 조작 사건 의혹 ②도곡동 땅 투기 및 차명 재산 보유 의혹 ③다스 횡령 의혹 등 집중 포화를 퍼부었죠.

박 후보의 검증 공세는 당시 여권으로도 불붙습니다. 그러자 이 후보는 "내가 세상에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나를 죽이려고 세상이 이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반발하며, 청와대와 박 후보가 결탁했다는 음모설을 제기하기도 하죠.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8월 8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연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동시에 얼굴을 만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8월 8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연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동시에 얼굴을 만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모든 의혹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던 이명박 캠프도 반격에 나섭니다. ①영남대 비리 의혹 ②정수장학회 문제 ③고(故) 최태민 목사그의 딸 최순실 관련 의혹을 무기로 몰아붙였죠.

"박 후보가 최태민과 그의 딸 최아무개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청와대도, 행정부도, 산하기관도, 최태민 일족이 장악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예언(?)도 이때 터져 나옵니다.


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차원의 후보 검증 청문회가 열렸다. 이명박 후보의 청문회 내용을 전한 한국일보 지면.

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차원의 후보 검증 청문회가 열렸다. 이명박 후보의 청문회 내용을 전한 한국일보 지면.

양측의 불꽃 튀는 검증 공방이 가열되자, 당시 한나라당은 별도의 검증위원회를 가동하며 자제를 촉구했는데요. 강재섭 대표는 "검증은 당에서 해야 하는데 (각 캠프에서) 자기들끼리 쇼를 하고 있다"며 "폭로해야 할 게 있다면 검증위에 제출해달라"고 캠프의 자제를 촉구했었죠.

그럼에도 난타전이 그치지 않자 한나라당은 2007년 7월 19일 당 차원의 후보 검증 청문회를 직접 열기도 했죠. 이 자리에서 나왔던 다스 횡령과 국정 농단은 법원에서 사실로 인정되며 두 사람 모두 영어의 몸이 됐으니, 실체 없는 네거티브는 아녔던 셈이네요.

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차원의 후보 검증 청문회가 열렸다. 박근혜 후보의 청문회 내용을 전한 한국일보 지면.

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차원의 후보 검증 청문회가 열렸다. 박근혜 후보의 청문회 내용을 전한 한국일보 지면.

2007년 혈투의 승리는 결국 이 후보가 가져갔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내 회복되지 못한 듯합니다. 경선 후유증이 그만큼 컸던 거죠. 당장 MB정권은 임기 내내 '여당 내 야당'을 자처하는 친박계 의원들의 반대에 수시로 부딪히며 갈등합니다. 한 지붕 두 가족이었던 셈이죠.

5년 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친박과 친이의 갈등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은 MB정부에서 중용됐던 인사의 발탁을 꺼렸다는 후문도 들렸죠. 인정사정 볼 것 없었던 한나라당 경선에도 보수는 연거푸 집권합니다. 견제와 검증의 힘일까요. 그래도 당시 두 정치인에게 제기됐던 의혹을 제대로 검증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곱씹어 보게 됩니다.


③팔짱 낀 채 먼산, 끝은 대선 패배... 2012년 민주당 경선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2012년 9월 11일 경기 부천시 오정동 경인방송 스튜디오에서 인천 경기권 방송 토론을 하기에 앞서 자료를 살펴보며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재인, 정세균, 김두관, 손학규 후보.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2012년 9월 11일 경기 부천시 오정동 경인방송 스튜디오에서 인천 경기권 방송 토론을 하기에 앞서 자료를 살펴보며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재인, 정세균, 김두관, 손학규 후보. 한국일보 자료사진

'룰 싸움에서 단일화 싸움으로'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내내 분열과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새정치'를 앞세워 급부상한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밀려난 민주당 경선의 흥행을 붙들기 위해 도입한 모바일 투표가 첫 번째 뇌관이었죠.

당시 민주당 경선은 '문재인' vs '비(非)문재인' 구도였는데요. 문재인 후보에 대항하는 손학규 정세균 상임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공동전선을 구축해 모바일 투표의 문제점을 물고 늘어지며 경선 판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2012년 민주통합당 18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을 위한 대전ㆍ세종ㆍ충남 순회 경선이 열린 9월 9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이해찬 대표가 인사말을 하던 중 한 후보의 지지자들과 진행 요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이 대표의 인사말 때 지지자들이 행사장을 난입하거나 계란과 물통 등을 던지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다. 대전=연합뉴스

2012년 민주통합당 18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을 위한 대전ㆍ세종ㆍ충남 순회 경선이 열린 9월 9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이해찬 대표가 인사말을 하던 중 한 후보의 지지자들과 진행 요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이 대표의 인사말 때 지지자들이 행사장을 난입하거나 계란과 물통 등을 던지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다. 대전=연합뉴스

보통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에 룰 싸움은 일단락이 되죠. 규칙이 있어야 경기를 치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2012년엔 달랐습니다. 룰이 완벽히 합의되지 않은 채 시작한 경선. 싸움은 더 뜨거웠는데요. 막상 투표함 뚜껑을 열어 보니 더 믿을 수 없다는 거였죠.

급기야 비문재인 후보들이 표심 왜곡 논란을 주장하며 경선 자체를 보이콧까지 했고, 후보 싸움은 곧 지지자들로 옮겨붙기도 했죠. 지역 경선 대회 곳곳에서 물병이 날아다니고 몸싸움이 일어나는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펼쳐졌습니다.

결국 당시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대선주자로 확정됐지만, 앙금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민주당 경선 후보들이 함께 모여 문 후보를 지지하는 그림은 만들어내지 못했거든요.

목숨처럼 외치던 정권 교체는 '나의' 정권 교체였지, ‘'우리의' 정권 교체는 아니었던 것이었죠. 아름다운 단일화를 만들겠다던 안철수 후보 역시 중도 사퇴를 선언하며 홀연히 떠났고요. 결국 문재인, 민주당, 야권은 2012년 정권 교체에 실패하고 말죠.


2017년 4월 8일 더불어민주당 경선 직후 경선주자였던 최성 고양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문재인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호프집에서 만나 건배를 나누며 화합을 다짐했다. 연합뉴스

2017년 4월 8일 더불어민주당 경선 직후 경선주자였던 최성 고양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문재인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호프집에서 만나 건배를 나누며 화합을 다짐했다. 연합뉴스

반면 2017년엔 달랐습니다. 날 선 공격이 오가긴 했지만, 선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분열로 망하는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예정대로 7개월 이른 5월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원팀이 그렇게 완성됐고, 2012년 대선 때와 달리 정권 교체에 성공합니다.

자, 이번에는 어떨까요. 과거의 치열했던 경선의 '상처'를 반면교사 삼는 게 필요해보이죠? ①싸우더라도 품격 있게(2002년 민주당 경선), ②이기고 지더라도 뒤끝 없이(2007년 한나라당 경선), ③하나가 돼 힘을 합쳐 본선에 나갈 수 있다면(2012년 민주당 경선). 아름답고 시너지 넘치는 대선 경선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올림픽 정신과도 맞닿아 있네요. 실력은 물론 매너까지 갖춰 겨루고, 승부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똑같이 고생하며 훈련했던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면. 국민들도 기꺼이 여야 경선의 열렬한 응원단이 돼주지 않을까요.

강윤주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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