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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노골드'에 대한 변명 [도쿄 돋보기]

입력
2021.07.28 15:16
수정
2021.07.28 15:26
20면

이대훈이 25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 경기장에서 열린 68kg 이하급 남자태권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후 상대 선수를 축하해주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대훈이 25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 경기장에서 열린 68kg 이하급 남자태권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후 상대 선수를 축하해주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 종목이 모두 끝났다. 성적은 초라했다. 2000년 시드니 대회 이래 한국이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건 처음이다.

외국 언론의 평가처럼 태권도의 세계화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일지 몰라도 종주국의 국민이자 올림픽 무대를 경험한 경기인의 한 사람으로 5년을 준비한 선수들의 심정이 어떨까 생각하니 안타깝다.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점점 발전하는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이번 대회에선 나도 잘 몰랐던 신예 선수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을 위한 변명을 해 보자면 전자호구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 80kg 초과급 16강전에서 인교돈 선수가 경기 종료 직전 파르자드 만수리(아프카니스탄)의 머리를 향해 호쾌한 뒤돌려차기를 했다. 상대는 쓰러졌고, 헤드기어가 벗겨져 떨어질 정도로 강력한 발차기였다. 가장 높은 5점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자호구에 붙어 있는 센서가 반응하지 않았고, 득점도 인정되지 않았다. 다행히 인교돈 선수가 승리하긴 했지만 전자호구의 맹점을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다.

사람들은 한국 선수들의 공격이 소극적이라고 비판한다. 태권도를 발 펜싱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선수들끼리 이전부터 입을 모았다. 발바닥에 부착된 센서만 없다면 어지간한 상대는 초전박살 낼 수 있다고. 나도 리우올림픽 때 운 좋게 금메달을 땄지만 매 경기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센서가 언제 어떻게 작동할지 몰라 과감하게 접근하지 못했다. 발바닥을 쓰는 기술도 있기 때문에 센서를 완전히 떼자는 건 아니다. 전자호구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고도 역차별을 받고 있는 한국 선수들을 위한 타협이 필요하다.

인교돈이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태권도 80kg 초과급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바=뉴시스

인교돈이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태권도 80kg 초과급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바=뉴시스

여러 모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후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모두가 고생했지만 두 사람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먼저 (이)대훈 오빠다. 마지막 올림픽일 거라는 건 알았지만 현장에서 은퇴를 말할 줄은 몰랐다. 리우올림픽 때 동메달에 그친 오빠는 다른 선수들의 시상식을 보면서 금메달을 딴 나에게 물었다. "(김)소희야, 금메달을 따면 어떤 기분이야?" 천하의 이대훈에게도 미지의 세계였던 올림픽 금메달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실력 못지않은 최고의 인성을 갖춘 선수였다.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했고, 비인기 스포츠 태권도를 널리 알린 주인공이다. 올림픽 금메달이 없는 '비운의 황제'가 아니라 한국 태권도의 영웅이다.

그리고 내가 코치로 있는 팀의 인교돈 오빠. 그는 '멘털 갑'이다. 용인대 시절 그가 암이라는 소식을 들었고, 동료들 대부분은 태권도를 그만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소속팀에 복귀했다. 그의 목 주변을 보면 항상 부어 있었고, 향수 냄새를 아예 못 맡았다. 언론에 소개된 이상의 인간 승리 드라마를 곁에서 지켜봤기에 동메달을 딴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완치 판정을 받고 기뻐했던 그의 말이 떠오른다. "(김)소희야, 나 이제 병원 안 가도 돼."

김소희 한국가스공사 코치

김소희 한국가스공사 코치


김소희 한국가스공사 코치ㆍ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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