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몰패 딛고 금 같은 은메달

입력
2021.07.27 22:33
수정
2021.07.27 22:5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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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적’ 중국 꺾고 결승 올랐지만 에스토니아에 석패
최인정 피스트서 울음 터뜨리자 모두 올라가 위로
“격차 극복하고 은메달 성과…우리 팀원 모두 대단”

최인정(왼쪽부터), 강영미, 이혜인, 송세라가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 시상식에서 은메달과 올림픽을 위해 준비한 월계관 모양 반지를 보여주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최인정(왼쪽부터), 강영미, 이혜인, 송세라가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 시상식에서 은메달과 올림픽을 위해 준비한 월계관 모양 반지를 보여주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상대는 또 에스토니아였다. 2016 리우올림픽 8강전 마지막 9라운드에서 에스토니아에 역전을 허용, 아쉬움을 삼켰던 막내 최인정(31·계룡시청)은 5년이 지난 2020 도쿄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라운드에서 팀의 에이스로 다시 에스토니아를 마주했다. 이번에는 승리하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시간이 10초밖에 남지 않자 최인정은 불나방처럼 계속 상대 선수에게 몸을 던졌다. 초시계는 0으로 변했고 결국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강영미(35·광주시 서구청) 송세라(28·부산시청) 이혜인(26·강원도청)은 승리를 거머쥔 에스토니아 선수들보다도 먼저 피스트로 뛰어올라 최인정을 안았다. 강영미는 곧 울어버릴 듯한 표정으로 최인정을 바라보며 달랬다.

대한민국 펜싱 여자 에페팀은 27일 일본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결승에서 에스토니아에 패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금메달만큼이나 값진 은메달이었다. 여자 에페가 메달을 딴 것은 런던 올림픽 이후 9년 만의 쾌거다.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던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되는 사례를 남겼던 에페 대표팀은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올림픽 메달을 거머쥔 최초의 태극전사로도 이름을 남기게 됐다.

개인전 탈락이라는 좌절도 함께 이겨냈다. 에페팀은 이번 올림픽 펜싱 첫날인 24일 개인전에서 모두 떨어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충격이 컸다. 세계랭킹 2위 최인정과 8위 강영미는 첫 판인 32강전에서 하위 랭커에게 패했다. 마지막일지 모를, 간절한 올림픽이어서인지 긴장이 덜 풀린 모습이었다. 16강에 오른 송세라도 세계랭킹 1위 아나 마리아 포페스쿠(루마니아)에게 6-15로 패했다.

강영미, 최인정, 송세라, 이혜인 선수(왼쪽부터)가 27일 일본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여자 에페 단체 결승에서 에스토니아에 패한 후 아쉬워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강영미, 최인정, 송세라, 이혜인 선수(왼쪽부터)가 27일 일본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여자 에페 단체 결승에서 에스토니아에 패한 후 아쉬워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에페팀은 똘똘 뭉쳐 지난 패배를 털어냈다. 조금만 더 집중하자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단체전 준결승에서 ‘숙적’ 중국을 잡으며 반전을 만들었다. 에이스 최인정은 중국의 에이스 쑨이원과의 대결에서 공세를 몰아가 경기를 리드했고, 송세라는 특유의 가벼운 스텝으로 상대 선수의 혼을 빼놨다. 최인정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고 돌아봤다.

결승전에서도 에페팀의 호흡은 빛났다. 최인정이 내준 점수를 강영미가 되찾고, 송세라가 점수를 벌리면 언니들이 지켰다. 서로 응원하며 막판까지 경기를 리드했다.

승부는 9라운드 26-26 동점 상황에서 최인정에게 넘어갔다. 1분 가까이 탐색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차’ 하는 순간 근접전에서 한 점을 내줬고, 뒤이어 과감한 공격을 시도하다 다시 점수를 잃었다. 33초를 남긴 상황에서 한 점을 만회하며 희망을 이어가는 듯했지만 끝내 점수차를 좁히지 못했다.

패배는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워만 하기엔 큰 성과였다. 최인정은 경기를 마친 뒤 “아무래도 리우 때 일이 신경 쓰였다. 언니, 동생들은 너무 잘해줬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강영미는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러면서 “모든 신체 조건을 이겨내고 은메달이라는 성적을 낸 우리 팀원 모두 대단하다”고 강조했다. 송세라는 “저랑 (이)혜인이는 첫 올림픽이었는데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 정말 감사하다. ‘할 수 있다’는 언니들의 격려를 받으며 정말 많이 느끼고 배웠다”고 했다. 에페팀은 올림픽 준비를 시작하며 같이 맞췄다는 월계관 반지를 취재진에 내보이며 금빛 미소를 지었다.


도쿄=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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