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위 선배한테도 "오진혁 파이팅"… 세대 간 벽 허물자 금 내려왔다

입력
2021.07.26 19:14
수정
2021.07.26 20:4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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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남자대표팀의 김우진(왼쪽부터), 김제덕, 오진혁이 26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단체전 시상식을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뉴스1

양궁 남자대표팀의 김우진(왼쪽부터), 김제덕, 오진혁이 26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단체전 시상식을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뉴스1

한국의 2020 도쿄올림픽 세 번째 금메달을 합작한 남자양궁 대표팀 맏형 오진혁은 40세, 막내 김제덕은 17세다. 둘 사이의 나이 차이는 무려 23세. 사석에서 형, 동생으로 관계를 정리하기엔 곤란한 나이차지만, 이들은 달랐다. 도쿄올림픽 남자양궁 단체전이 열린 26일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에서 김제덕은 ‘진혁 삼촌 파이팅’도 아닌, ‘진혁이형 파이팅’도 아닌, “오진혁 파이팅”을 고래고래 외치며 팀 분위기를 띄웠다.

양궁이 제아무리 개인 실력만으로 실력을 겨루는 스포츠라지만, 단체전에서 호흡하는 관계라면 조금 다르다. 훈련장과 숙소에서 매일 마주하며, 대회장에서도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팀 전체에 마이너스다. 2002 한일월드컵 때의 ‘히딩크 리더십’으로 대표되는 위계질서 타파가 체육계도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지만, 선배의 “선 넘네” 한마디면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 건 요즘도 마찬가지다.

오진혁은 처음 본 올림픽 무대에서 특히 커진 김제덕의 박력 넘치는 “파이팅”을 보고는 “쟤 뭐냐”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실전에서 불쑥불쑥 나오는 “오진혁 파이팅”은 불혹의 오진혁이 김제덕만 할 땐 꿈도 못 꾼 그림이지만, 오진혁은 내심 기분 좋은 모양이다.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뒤 취재진과 만난 오진혁은 “(오진혁 파이팅은) 사전에 협의 없었고, 일방적이었다”며 “처음엔 살짝 낯설긴 했는데, 금세 익숙해지고 긴장도 많이 풀렸다”고 했다.

‘한일전 준결승’에서 슛오프 끝에 승리한 한국 대표팀을 두고 오선택 전 양궁국가대표팀 총감독은 “저 조합이니까 이긴 것”이라고 했다. 김제덕이 1세트 자신의 두 번째 화살을 8점에 꽂았지만, 다음 사수 오진혁이 노련함으로 10점을 쏘면서 막내의 부담을 덜어줬다. 자신감을 회복한 막내는 이후 단 한 번도 9점 아래를 쏘지 않았다. 김제덕은 결국 슛오프에서 가장 정확한 한 발을 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고, 대만과의 결승에서 완승을 합작하며 두 번째 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제덕은 일찌감치 2관왕에 오르며 이번 대회 최고 스타로 자리잡았지만, 두 베테랑과 함께한 대표팀 생활이 무척이나 소중하다.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건 김제덕은 “(형들이) 시합에 들어가기 전 ‘메달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자, 욕심을 내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는 말을 해줬다”며 “그 말을 듣곤 올림픽을 즐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들의 리더십을 많이 배웠고, 즐거웠다”고 했다.

27일 시작되는 개인전에선 경쟁자가 될 형들은 2관왕을 이룬 김제덕에게 아낌없는 덕담을 건넸다. 오진혁은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이걸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음 올림픽 등 새로운 목표를 정해 꾸준히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우진도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고, 남은 개인전도 잘 활약해서 3관왕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쿄=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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