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방송사고 MBC... 결국 사장 대국민 사과

입력
2021.07.26 18: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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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MBC 경영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20 도쿄올림픽 중계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MBC 제공

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MBC 경영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20 도쿄올림픽 중계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MBC 제공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조롱 섞인 참가국 소개로 비난을 산 MBC가 또 부적절한 자막을 내보냈다. 지난 23일 어처구니없는 방송사고를 낸 뒤 이틀 만인 25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공분이 커지고 있다. MBC가 제작 시스템 점검에 나서겠다고 한 뒤 또 제작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방송사 자체 조사와 점검에 불신이 짙어지는 분위기다. 준공영방송인 MBC가 올림픽이란 국제 행사에서 국격을 떨어뜨린 데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박성제 사장이 나서 26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MBC는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대사관에 사과 서한을 이메일과 인편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MBC는 지난 25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축구 B조 예선 대한민국과 루마니아 경기가 끝난 뒤 중간광고에서 화면 오른쪽 상단에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문구를 띄워 입길에 올랐다. 루마니아의 마린 선수가 자책골을 넣은 상황을 이렇게 표현해 또 비난 여론에 휩싸인 것이다. 존중과 배려를 통한 선의의 경쟁이란 올림픽 정신을 조롱 섞인 문구로 훼손했다는 지적이다. 루마니아 축구 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문제의 MBC 화면을 캡처해 공유한 뒤 '한국의 공영방송 MBC가 마린의 부끄러운 순간을 조롱했다(mocked)'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현했다. 당시 KBS와 SBS는 중간광고에서 '대한민국 1 (후반) 루마니아 0' 식의 경기 결과와 골을 넣은 상황만 고지했다. 상대 팀의 자책골에 대한 주관적 표현은 따로 쓰지 않았다.

앞서 MBC는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방송에서 우크라이나를 소개하는 화면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 사진을, 시리아 소개 땐 현지 내전 사진을 내보내는 등 일부 국가와 관련된 부적절한 자료 화면을 써 안팎으로 비난을 샀다. 해외 언론은 "해당 이미지로 시청자는 불쾌했고(offensive),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킨다고 비판했다(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며 MBC의 실수를 꼬집었다.

이번 사고를 두고 방송가에선 MBC의 삐걱댄 조직 개편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1월 MBC 스포츠국의 제작 기능을 자회사 MBC스포츠플러스로 이관한 조직 개편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 5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노보를 통해 스포츠국의 인력난으로 당장 올림픽 준비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는 내부 목소리를 전한 바 있다. "통상 올림픽을 두 달여 남긴 시점에서 올림픽 슬로건과 예고 스팟, 주요 종목 출전 선수들에 대한 사전 제작물이 만들어져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어느 것 하나 준비된 게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박 사장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참가국을 존중하지 못한 규범적 인식이 미비했던 게 근본 원인"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두 조직이 함께 일하고 있는데 막판까지 많은 일이 몰렸고, 데스킹이 부실하게 이뤄진 탓"이라고 해명했다. 더불어 "방송강령과 사규, 내부 심의 규정을 강화하고 윤리위원회, 콘텐츠 적정성 심사 시스템도 만들어 사고 재발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번 사고는) 올림픽 같은 대형 이벤트 중계는 미리 준비를 하고, 기본적인 내부 데스킹만 거쳐도 있을 수 없는 사고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며 "허술한 제작시스템의 원인을 조속히 찾고, 공영방송답게 분명하고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설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MBC가 젊은 시청층을 잡기 위해 그간 국제 경기 중계에서 '밈(meme·온라인에서 놀이처럼 유행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과도하게 사용한 게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희정 방송평론가는 "과도한 시청률 경쟁으로 국제행사에 걸맞지 않은 조롱과 비하적 표현이 무분별하게 쓰여왔다"며 "평등과 정당한 경쟁이란 올림픽 정신에 맞는 정보 전달의 중요성을 다시 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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