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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중이 익숙한' 한국 럭비, 첫 올림픽 무대서 '기적의 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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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9시 일본 도쿄 스타디움에선 한국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럭비 군단’이 출격했다. 첫 상대는 ‘하필’ 세계랭킹 2위 뉴질랜드. 전 세계 럭비 팬들에게 ‘올 블랙(All black)’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들은 럭비 월드컵(15인제)에서 9회 우승한 럭비 전통 강호로, 럭비 좀 아는 사람들은 ‘득점은커녕 과연 게임이나 될지’를 의심하는 상대다. 대회를 앞두고 “우린 무관중에 익숙하다”며 애써 웃는 한국 선수들과의 기량 차이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재작년 11월 홍콩을 극적으로 꺾고 사상 첫 본선 티켓을 따 냈지만, 대회가 연기된 1년 동안 취소 걱정에 잠을 설치기도 했던 럭비대표팀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대형 악재가 닥쳤다. 장정민(27)이 뇌진탕 우려로 경기에서 빠지면서다. 미식축구와 달리 헬멧을 쓰지 않는 럭비에선 머리 부상이 우려되면 10분 이상 경기장을 벗어나 검사를 받게 돼 있다. 상대에 2분 27초 만에 첫 트라이(미식축구의 터치다운)와 컨버전 골(보너스 킥)을 허용하며 초반부터 0-7로 밀렸지만, 예상 밖 선전으로 7분이 주어진 전반 중반까지 잘 버텼다.
그러던 전반 5분 48초, 관중 없는 경기장의 모든 관계자들이 깜짝 놀란 장면이 펼쳐졌다. 장용흥(28)의 패스를 이어받고 코트 오른쪽 라인을 타며 전력 질주한 정연식(28)이 마침내 한국 럭비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서 트라이 라인을 넘어선 것이다. 부상 당한 장정민을 대신해 투입된 그가 보여준 ‘기적의 트라이’에 경기장 내 있던 전 세계 럭비 관계자들도 기립박수를 보냈다. 전광판의 태극기 아래 숫자가 0에서 5로 바뀌자, 선수들은 격하게 부둥켜 안았다.
현장에 있던 한국 선수단 관계자들은 태극기를 펄럭이며 감격을 나눴다. 도쿄올림픽 한국 선수단 부단장을 맡아 도쿄에 온 최윤 럭비협회장, 그리고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체면이고 뭐고, 관계자석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격한 감격을 나눴다. 최 회장은 “이 곳에 있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기적의 5점”이라고 했고,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 출신 이 의원은 “나도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누구보다 많이 겪었기에 도쿄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럭비 선수단을 격려하러 왔다”며 “감격의 트라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전반을 5-14로 마치면서 후반전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여차하면 망신 당할 위기에 놓인 뉴질랜드는 후반 들어 체격과 체력, 기술 모든 면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정신 없는 7분 간의 후반전을 마친 뒤 전광판에 적힌 점수는 5-50. 후반에만 무려 36점을 내준 럭비 대표팀이 올림픽 무대에서 받아 든 성적이다. 경기 후 대표팀 주장 박완용(38)은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그는 “전반을 마치고 경기를 잘 풀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후반에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했다.
한국 럭비 역사상 첫 올림픽 득점자가 된 정연식은 “트라이를 한 후 ‘이게 트라이 맞나’싶을 정도로 얼떨떨했다”며 “우리 팀 모두가 함께 만든 트라이”라고 했다. 그는 “선수들이 충분히 가능성을 봤다”며 “첫 경기는 비록 졌지만 이번 대회에서 메달권 진입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혼혈 선수인 코퀴야드 안드레진(30)은 “뉴질랜드가 국제대회에 50번 나갈 때 한국은 5번 정도 나간다”며 “메달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이번 올림픽을 통해 럭비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대표팀은 이날 오후 6시에 열린 호주(6위)와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도 5-42로 대패했다. 후반 2분 21초에 나온 귀화 선수 안드레진 코퀴야드의 트라이 득점에 만족해야 했다. 대표팀은 27일 아르헨티나(7위)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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