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매장 고문" 미얀마 17세 청소년, 코로나 봉사 접은 까닭

입력
2021.07.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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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투쟁 나선 코로나 자원봉사자
"군부가 코로나보다 더 무자비한 적"

코로나19 자원봉사자로 일했던 제야군. 미얀마나우 캡처

코로나19 자원봉사자로 일했던 제야군. 미얀마나우 캡처

손이 뒤로 묶인 채 구덩이에 던져졌다. 눈이 가려져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구타로 인한 고통이었다. 산 채로 매장되기 시작했다. 메워진 구덩이는 소년의 얼굴만 남겨두고 있었다. 목에 삽을 들이댄 남성의 강요로 마지막 기도를 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끝나겠지. 다시 제 가족으로 환생하게 해주세요.' 그때 다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놈한테 더 심문할 게 남아 있어. 끄집어내!"

미얀마 17세 청소년 제야(Zeya)군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다. 지난달 11일 기준 최소 22명이 고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AAPP) 발표를 감안하면 그는 운이 좋다.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자원봉사를 했던 청소년은 10일간 지옥을 경험하고 구사일생했다. 현지 매체 미얀마나우가 최근 그의 사연을 소개했다.

제야군은 5월 2일 집으로 들이닥친 군경에게 체포됐다. 양곤 지역 폭탄 테러 연루 혐의가 적용됐다. 그는 2월 쿠데타 전에는 코로나19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질 무렵 쿠데타가 터졌다. 그는 자원봉사자 동료들과 함께 방호복과 마스크를 쓰고 반(反)군부 시위에 가담했다.

반군부 시위를 하고 있는 미얀마의 코로나19 자원봉사자들. 미얀마나우 캡처

반군부 시위를 하고 있는 미얀마의 코로나19 자원봉사자들. 미얀마나우 캡처

군경은 그의 해명을 무시하고 오로지 폭력에 몰두했다. "체포 당시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맞고 피를 많이 흘려 기절했다" "장화 수선용 바늘과 실로 상처를 꿰매 주는 동안에도 때렸다" "눈을 가리고 쉬지 않고 때렸다" "목마르다고 하면 때렸다"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변기 물을 마셨다" "종일 땡볕에 방치했다" "오랜 시간 여러 번 고문을 당하니 차라리 총으로 쏴 죽여주길 바랐다" 등이 제야군의 폭로다. 그는 생매장 위기를 넘긴 뒤 악명 높은 인세인교도소로 보내졌으나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다시 소년원으로 가야 했다. 그리고 지난달 9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조국에 다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지만 그는 자원봉사 대신 무장 투쟁을 택했다. 그는 현재 소수민족 무장단체 거점인 국경에 있다. "군부가 코로나보다 훨씬 더 무자비한 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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