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명품 궁사' 김제덕은 '짝퉁 루이비통'을 사랑했네

입력
2021.07.25 13:56
수정
2021.07.26 09:09
21면
구독

김제덕 발굴한 예천초 은사 양은영 코치 인터뷰

경북 예천초 재학 시절의 김제덕이 글로벌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가방과 비슷한 재질의 체스트 가드를 하고 있다. 양은영 코치 제공

경북 예천초 재학 시절의 김제덕이 글로벌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가방과 비슷한 재질의 체스트 가드를 하고 있다. 양은영 코치 제공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의 첫 금메달을 합작한 김제덕(17)은 초등학생 때부터 활을 잡을 때마다 ‘짝퉁(가품) 루이비통’을 걸쳤다. 경북 예천초 3학년 때 그에게 처음 양궁을 가르쳤던 양은영(41) 코치가 글로벌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가방과 비슷한 재질의 ‘레자(인조가죽)’ 체스트 가드를 만들어 줬더니, 말없이 엄지를 치켜 들고는 지금까지 꼭 인조가죽 체스트 가드만 고집했다. 체스트 가드 패턴도 루이비통과 비슷한 체크무늬라 지도자와 선수들 사이에선 ‘루이비통’으로 통한다고 한다.

김제덕은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전에서 안산(20)과 함께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을 합작한 뒤, 그간 자신을 지도했던 지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양 코치는 25일 본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모든 지도자들이 제덕이를 아들처럼 여겼다”며 “(김)제덕이가 워낙 까끌까끌한 재질의 ‘루이비통 체스트 가드’를 고집해서 나는 물론 예천중 서만교 코치가 대구 서문시장까지 가서 원단을 사다가 직접 재단을 해서 만들어줬을 정도”라고 했다.

선수들이 활을 발사할 때 현이 가슴 부분의 옷에 걸려 발생할 수 있는 부상이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착용하는 체스트 가드는 경기력과 직결돼 선수 의사가 중요한데, 김제덕이 자란 경북 예천군엔 다양한 원단을 팔지 않았기에 코치들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 양 코치는 “성장하면서 매끄러운 재질로 바꾸는 선수들도 많은데, 디자인은 바뀌더라도 같은 재질의 체스트 가드를 사용한다”며 “도쿄올림픽에선 국제 대회라 색깔만 검은색으로 바꿨을 뿐”이라고 했다. ‘촉감만 루이비통’이었던 셈이다.

예천초 재학 시절의 김제덕(오른쪽)과 양은영 코치. 양은영 코치 제공

예천초 재학 시절의 김제덕(오른쪽)과 양은영 코치. 양은영 코치 제공


짝퉁 루이비통을 사랑한 김제덕은 이번 대회를 통해 온 국민이 아끼는 ‘명품 궁사’가 됐다. 김제덕을 발굴한 양 코치는 한번 터진 ‘제덕이 자랑’을 좀처럼 멈추지 못했다. 그는 “5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6학년 때는 다섯 차례의 전국 대회를 모두 휩쓸었다”며 “중학교 3학년 때도 마찬가지라 분명 세계 무대에서도 잘 해낼 거라 믿었다”고 했다. 특히 자신과 꼭 맞는 장비를 찾으면, 성과를 꾸준히 냈다고 한다. 양 코치는 “꼭 비싼 활이 아니더라도, 체스트 가드처럼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활을 구해다 주면 꼭 성적을 냈다”며 “대한양궁협회뿐 아니라 예천군에서도 아낌없이 지원을 해준 덕분”이라고 했다.

양궁장이 떠나갈 듯 목청 높여 “파이팅”을 외쳐 더 주목받았던 김제덕의 ‘스타성’도 그는 일찌감치 알아봤다. 방송 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 출연했던 초등학교 6학년 때 촬영 스태프가 따라붙은 공식 대회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우승을 따내는 모습을 보면서다. 양 코치는 “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제덕이는 하나도 긴장 않고 주목받는 걸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큰 무대에서도 당돌하게 잘 해낼 선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줄기차게 “파이팅”을 외친 김제덕의 속내도 조금은 이해한다는 게 양 코치 설명이다. 그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파이팅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파트너인 안산, 그리고 스스로에게 외친 ‘주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양궁대표팀 안산(오른쪽)과 김제덕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혼성단체 결승전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도쿄=뉴스1

대한민국 양궁대표팀 안산(오른쪽)과 김제덕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혼성단체 결승전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도쿄=뉴스1

도쿄올림픽이 1년 미뤄진 사이 어깨 부상을 회복하고 극적으로 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김제덕은 이번 우승으로 한국 양궁사에 의미 있는 기록들을 남겼다. 올림픽 양궁 혼성전 초대 금메달리스트가 된 그는 남자 단체전과 개인전에서도 메달을 거머쥘 경우 양궁 역사상 첫 단일 올림픽 3관왕이 된다. 17세 3개월의 나이로 금메달을 딴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18세 1개월의 나이로 은메달을 딴 정제헌이 가지고 있던 한국 남자 양궁 최연소 올림픽 메달리스트 기록도 갈아 치웠다.

양 코치는 ”제덕이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라며 “금메달을 따낸 후 연락이 왔길래, 고마운 마음을 감추고 두 번째 메달을 따고 나서 연락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큰 대회를 앞둘 때마다 김제덕과 꿈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는 그는 “혼성전을 앞두고 여러 마리 뱀이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는데, 우연인지 파트너인 안산이 뱀띠였다는 점이 놀라웠다”며 “좋은 기운을 몰고 온 뱀이 여러 마리 등장했다고 하니 그 꿈이 여러 개의 금메달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도쿄= 김형준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