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자 휴대폰에서 울리는 핑, 핑, 핑... 英 봉쇄 해제 후 '핑데믹' 우려

입력
2021.07.23 21:00
영국 정부 "필수인력 자가격리 면제키로"
'자유의 날' 전후 확진자·자가격리 급증에
노동현장 마비·경제 악화 방지 대책 성격
스코틀랜드는 일부 규제 유지... '마이웨이'
"방역완화 실패땐 분리독립 목소리 커질듯"

19일 영국 런던 파링던의 피아노 웍스가 재개장한 후 젊은이들이 무도장에 올라 춤을 추고 있다. 이날 0시를 기해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완전히 해제되면서 수천 명의 젊은이는 '자유의 날' 파티를 열어 춤을 추며 밤을 지새웠다. 런던=AP 뉴시스

영국 정부가 최근 ‘자유의 날’을 선언하며 봉쇄 해제에 나선 가운데, 영 연방의 ‘한 지붕 두 가족’ 격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대응 방식도 대비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서로 다른 민족 뿌리 역사, 문화만큼 엇갈린다는 얘기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는 물론, 집합 금지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대부분 규제를 없앤 잉글랜드는 일부에 대해 자가격리 면제까지 허용하며 ‘자유 수호’에 나섰다. 반면 스코틀랜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일각에선 ‘감염병과의 동거’를 택한 영국 중앙정부의 실험이 실패로 끝날 경우,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英 필수분야 노동자 격리 면제

22일(현지시간)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필수 분야 종사자에 한해선 격리 조치에서 제외하는 지침을 이날 발표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이 △식품 생산·공급 △에너지 △교통 △의료 △국경 통제 분야에서 일하는 경우, 확진자와 접촉하더라도 최대 10일간의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시행 기간은 내달 16일까지다. 지난 19일 코로나19 봉쇄 해제를 선포하며 잉글랜드 지역에 사회적 거리두기와 모임 인원 규제, 공연장 수용 인원 제한, 재택근무 지침 등을 사실상 폐지한 데 이은, 또 하나의 전향적 조치다.

역설적으로 이런 지침은 영국 내 감염병 상황이 악화하면서 나왔다. 방역조치 해제 전후로 확진자가 급증하자 자연스럽게 자가 격리자도 폭증했는데, 2주 전 35만6,000여 명에서 지난주엔 60만8,000명으로 70%나 치솟은 상황이다.

시민들 발이 묶이자 노동 현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트럭 운전기사들이 자리를 비우며 물류 대란 우려가 커졌고 대형마트에선 물건을 나를 사람이 없어 진열대가 텅 비는 경우가 속출했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릴 사람도, 원유를 운반할 사람도 급감하면서 생산 현장 또한 비상이 걸렸다. 대중교통과 환경미화, 치안 등 공공 서비스 인력마저 줄어들어 나라 전체가 ‘올 스톱’ 위기다. 자가격리 대상자의 휴대폰에 울리는 알림음 ‘핑’ 소리가 곳곳에서 끊이지 않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합쳐 자가격리자 급증에 따른 경제 마비를 의미하는 ‘핑데믹(pingdemic)’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영국의 코로나19 규제가 완전히 해제된 지난 19일, 런던의 옥스퍼드 광장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이번 조치는 방역 해제로 감염병 상황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경제와 일상을 되살려야 하는 영국 정부의 고육지책이다. 격리를 더 느슨하게 해서라도 시민들이 어렵게 되찾은 자유를 다시 옥죄진 않겠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멈췄던 일상도 다시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BBC는 “대형마트 500여 곳과 식품 제조·유통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1만여 명이 무분별한 자가격리 의무를 피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코틀랜드는 방역 ‘마이웨이’

반면 영국 연방 국토의 3분의 1, 인구의 8%를 차지하는 스코틀랜드는 방역 고삐를 완전히 풀진 않고 있다. 물론 19일부터 △오후 11시 통행 금지 폐지 △실내 모임 8명까지 허용 등 문턱을 다소 낮추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상점 및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실내·외 1m의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권고도 여전하다. 에든버러와 인근 도시 클럽은 여전히 문을 열지 못한다. 봉쇄 해제 직후 수도 런던 등 잉글랜드 지역 클럽들이 그동안 자유에 목말라했던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룬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같은 ‘마이웨이’는 방역만큼은 자치정부의 독자적 권한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는 영 연방 소속이지만 외교·국방·재정을 제외한 교육과 보건 분야는 내정을 담당하는 자치 의회에서 따로 담당한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우리는 감염병 제한을 포기할 준비가 안 됐다. 모든 제한을 해제하면 더 큰 위협에 처할 것”이라며 중앙정부의 봉쇄완화 조치엔 선을 그었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이 지난달 24일 에든버러에서 열린 스코틀랜드 의회 질의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에든버러=로이터 연합뉴스

감염병 상황이 현재진행형인 만큼, 아직은 어떤 선택이 정답일지 예단할 수 없다. 다만 방역 조치 성패가 보건 문제를 넘어 정치 이슈로 비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날 “보리스 존슨 총리의 방역 완화 실험이 역효과를 낸다면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지지가 높아질 수 있다”까지 내다봤다.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며 분리독립 열망이 커진 터라, 스코틀랜드의 방역이 성공하면 그 자신감에 힘입어 실질적 자치권을 더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존 커티스 스트라스클라이드대 박사는 “스코틀랜드가 (방역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면,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보건 위기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300여 년간 이어져 온 동거 여부를 결론 짓는 나비효과로까지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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