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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청해부대 역학조사관은 '빈손 귀국 中'… 軍 '셀프 감사' 한계, 이유는

입력
2021.07.23 06: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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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C, 작전지역 급변경... 靑 책임론 대두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을 국내로 이송하기 위해 출국한 특수임무단이 21일 문무대왕함 출항 전 팀워크 훈련 및 장비 점검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을 국내로 이송하기 위해 출국한 특수임무단이 21일 문무대왕함 출항 전 팀워크 훈련 및 장비 점검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군 당국이 22일 청해부대 34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대한 본격 감사에 착수했다. ‘동일집단 내 90%’라는 최악의 감염률로 국민적 지탄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파병 사전준비부터 감염 경로를 포함한 초기 대응, 사후 지휘보고 체계까지 속속들이 파헤쳐 엄중 문책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셀프 감사’는 벌써부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감염원을 파악하러 아프리카 현지에 파견된 역학조사관은 이미 ‘빈손 귀국’길에 올랐고, 바이러스를 함내에 유입시킨 현장 검증도 불가능해졌다. 이날 확진자가 한 명 추가되면서 유일한 증인이 될 301명의 청해부대원 중 90%(271명)는 대면조사조차 힘들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무사 귀환한 31~33진과 달리 34진에서만 유독 대규모 감염을 초래한 결정적 이유가 최고 안보 의결기구의 급박한 작전구역 변경 지시 때문으로 밝혀져 청와대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①책임규명 핵심 '역학조사' 끝내 불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이 21일 아프리카 현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이 21일 아프리카 현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책임 소재를 가리는 핵심 열쇠인 감염 경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규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군 당국은 최초 감염원을 파악하기 위해 18일 부대원들을 싣고 올 공중급유수송기 두 대를 급파할 당시 역학조사관 한 명도 파견했다. 바이러스 침투 시점이 기항지에서 군수품을 보급받았던 6월 28일~7월 1일이 유력해지면서 현지 조사는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현지 당국의 비협조로 역학조사는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현지 정부가 부대원들을 이송할 군용기가 이ㆍ착륙하는 것을 두고도 민감하게 굴어 서욱 국방부 장관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협조를 구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항공기가 내리고 뜨는 것도 힘든 마당에 역학조사는 언감생심이었다는 뜻이다.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 역학조사관은 전날 새벽 현지에서 출항한 문무대왕함을 타고 돌아오는 중이다. 사실상 빈손 귀국이다. 게다가 문무대왕함은 34진 부대원들이 1차 방역을 하고, 교대 투입된 특수임무단이 추가 방역까지 마친 터라 함정에는 단서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역학조사관은 함정 내 폐쇄회로(CC)TV 녹화 화면을 토대로 감염 경로를 추적하며 군 당국 및 질병관리청과 소통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무대왕함은 9월 중순에나 국내에 도착한다. 한 보건당국 관계자는 “역학조사는 진행 중인 감염병 유행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뿐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맞춰 추후 있을지 모르는 질병을 예방하는 정보들을 제공해 상당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②부대원 진술에 감사 의존, 한계 뚜렷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 장병들이 탑승한 버스가 2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국방어학원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이천=연합뉴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 장병들이 탑승한 버스가 2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국방어학원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이천=연합뉴스

검증할 현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감사는 부대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책임의 경중을 따져야 하는데, 썩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다. 부대원 301명 가운데 상당수가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장교와 간부들인 탓이다. 상대적으로 진술이 자유로운 병사는 70여 명(23%)에 불과하다. 치부를 제대로 까발리기가 어려운 구조란 얘기다.

더구나 병사들도 같은 함정에서 6개월 가까이 동고동락해 부대에 우호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실제로 상당수 병사들과 가족은 이번 사태를 불가피한 천재지변으로 여기며 군에 대한 비난을 꺼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③준비 없이 작전지역 변경한 靑 책임도 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임 한미 연합사령관 서훈식에 서욱(오른쪽) 국방부 장관과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임 한미 연합사령관 서훈식에 서욱(오른쪽) 국방부 장관과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무엇보다 34진이 앞서 6개월 단위로 파병된 31~33진과 달리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된 건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급박한 작전구역 변경 지시 때문으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통상작전 해역보다 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청해부대를 이동시키면서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백신 접종도 안 한 부대원들을 위험 요소가 훨씬 많은 지역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처음 발을 디딘 기항지는 부대원들에게 낯설기만 했다. 이전과 달리 군수품을 끌어올릴 크레인도 없어 장병들이 직접 손으로 식자재를 옮겨야 했고,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빈틈을 노렸을 가능성이 현재로선 크다. 함정 내 군의관과 원격 토의한 국군의무사령부가 초기 고열 증상을 보인 부대원을 단순 감기로 오인한 것도 현지 특성만 맹신해서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폐에 이상이 없는 데다 이 지역엔 감기 등 풍토병이 흔해 안이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전직 군 고위당국자는 “청와대가 성추행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사건 때처럼 군에 고강도 조사와 문책을 지시하지 못하는 배경도 자신들에게 원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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