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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후 위기 대응 후진적… 세계기준 헐떡이며 쫓아가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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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순부터 시작된 폭염이 22일 서부 내륙에서 38도까지 올랐다. 짧은 장마가 끝나자마자 기온이 급상승해 뜨거운 여름을 견디는 경험이 낯설지 않다. 여름 기온 관측 기록을 갈아 치웠던 2018년, 그 전까지 가장 뜨거웠던 1994년 여름이 그랬다.
기상 관측 이후 최고, 최대라는 수식이 붙는 날씨 분석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에는 서울 기온이 영하 18도로 내려가는 한파가 매서웠다. 지난해 장마는 관측 사상 가장 길었고, 2019년 겨울은 너무 따뜻했다. 7월 초부터 폭염경보가 발령돼 한 달 넘게 이어진 2018년에 더위로 숨진 사람이 160명을 넘는다.
다른 나라를 보면 우리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독일, 벨기에에서 전에 없던 폭우가 쏟아져 수백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미국, 캐나다 서부에서는 50도의 폭염과 산불로 큰 인명 피해가 났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도 집중호우 피해가 컸다. 대기과학자인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을 21일 서울 통인동 길담서원에서 만나 이상 날씨가 왜 계속되는 것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들었다.
-세계 각지에서 이상 날씨로 인한 피해가 잇따른다. 다들 겪어보지 못한 날씨라고 한다.
“유럽은 비가 오더라도 대체로 부슬부슬 내린다. 그래서 도시 모습이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여름 큰비로 하천 범람에 따른 피해가 크기 때문에 고수부지 같은 공간이 있지만 유럽은 하천 옆에 붙어 집이 늘어서 있는 게 흔하다. 최근 독일, 벨기에에서 내린 하루 100㎜ 정도의 비는 그 지역에는 큰 재난 수준이다. 북미의 고온도 마찬가지고 이런 날씨는 발생 빈도로 따지면 1,0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구동성으로 기후변화를 이유로 지목하는데.
“화석연료를 태워 온실가스 농도가 증가하면서 지구 온도가 전체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똑같은 정도로 더워지는 게 아니다. 극지방 온도가 2, 3배 빨리 상승한다. 날씨란 적도에서 태양에너지를 많이 받고 극지는 적게 받아 에너지 불균형이 생겨나면 지구가 그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그렇게 균형을 맞추는 대표적인 현상이 중위도의 제트기류다. 제트기류 아래에서 기류를 따라 고기압 저기압이 계속 지나간다. 그런데 온난화가 일어나면 적도와 극지 사이 에너지 차이가 예전보다 적어진다. 그 결과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뱀처럼 구불구불하는 기류의 패턴은 더 커진다. 오메가형 열돔 현상이라는 건 바로 그 사행(蛇行)이 커진 형태다. 그 상태로 천천히 움직이니까 마치 정체 상태가 된다. 그 아래 고기압이 오면 폭염, 저기압이 있으면 폭우라는 극단적인 날씨가 나타난다.”
-7월 중순에 폭염이 시작돼 3년 전 같은 극한 더위가 우려된다.
“이런 역대급 날씨는 100년에 한 번 정도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매년 보고 있다. 보험업계 조사에 따르면 이상 날씨는 1980년대에 250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800개로 늘었다.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극단성도 더 커진다. 폭염과 열대야가 증가하고 비가 오면 한 번에 많이 쏟아진다. 그렇지 않은 강수는 갈수록 줄어든다. 홍수와 가뭄이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이상 날씨가 계속된다면 어떤 문제가 닥칠 수 있나.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날씨가 이어지면 식량 부족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처럼 식량 자급자족률이 낮은 나라일수록 더 큰 위기를 맞는다. 2050년 세계 인구는 100억으로 늘어난다. 현재 전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은 3%인데 이렇게 되면 더 많이 더 잘 먹으려는 전체 욕망이 그만큼 커진다. 그를 충당하려면 곡물 생산량이 지금보다 60%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녹색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선 기후 위기로 식량 생산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기후 위기 시대에 안정적인 식량 공급 체제를 갖추느냐는 폭염이나 홍수와 달리 국가 존망에 직결된 문제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과거보다 활발하다. 금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의 체온은 고정돼 있지 않다. 혈당이나 혈압도 변한다. 그렇지만 어떤 정해진 범위를 두고 정상 상태를 이야기한다. 건강한 생활이 가능한 정상 상태라는 탄력적 범위가 있는 거다. 기후의 경우 그 범위를 산업혁명 이후 1.5도까지로 본 것이다. 기후변화를 막아낼 마지노선이라는 의미다.
과학자들이 모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2013년 5차 보고서를 내면서 당시 과학적 증거로 2도 상승이 위험하다고 했는데 그때 일부 과학자는 1.5도도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자료로는 합의가 어려워 5년 뒤 이 문제를 재평가하기로 했는데 2018년 인천 회의에서 1.5도 특별보고서가 채택됐다. 이 기준을 각국 정부의 정책 대응에 반영하는 회의가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다.”
-지구온난화가 ‘티핑포인트’를 넘으면 더는 손쓸 수 없다고 했다. 탄소 배출이 현재와 같다면 그때는 언제쯤인가.
“티핑포인트는 회복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데 과학자들은 2013년만 해도 지구 평균 기온 4, 5도 상승으로 봤다가 2018년에 이를 1.5도나 2도로 낮췄다. 그동안 1.5도를 2040년쯤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조만간 공개될 IPCC 6차 보고서에는 그 시점이 2030년 초반으로 당겨지고 2도 상승도 2050년 초반이라는 내용이 담긴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규모의 전염병도 기후변화와 관계가 있나.
“감염병 중 60%가 인수공통인데 1만 년 전 농업을 통한 동물의 가축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세계적인 규모의 전염병은 1800년대 전만 해도 200년에 한 번꼴로 나타나는 정도였는데 1800년대에는 100년 동안 3개, 1900년에는 4개, 2000년대에는 이미 5개에 이르렀다. 게다가 최근의 팬데믹은 가축에서 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 야생동물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인간이 서식지를 파괴하거나 기후변화로 이들이 살 곳을 잃어 인간의 삶 안으로 들어올수록 감염병 위험은 높아질 것이다. 기후변화로 기온과 습도가 바뀌면 곤충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갑작스러운 벌레 증식으로 인한 감염병 피해도 예상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온대 지역이 아열대로 바뀌면서 흰줄숲모기가 매개하는 뎅기열 같은 열대성 감염병도 출현할 수 있다.”
-기후 위기에 공감하면서도 탄소 감축 방식이나 목표를 둘러싸고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이견이 있다.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위기 극복에 합의할 수 있을까.
“최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지구 평균 온도를 1.5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10월 중국에서 열리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육지와 해양에 30%의 보호구역을 설정하는 문제도 논의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개도국에 매년 1,000억달러를 모아서 지원하기로 했다. 성장 과정에 있는 나라가 탄소 감축에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돕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11월 총회에서 이런 문제들을 놓고 G7 등 선진국은 어떤 형태로든 합의를 이끌어내려 노력할 것이다.”
-유럽연합에서 최근 새로운 온난화 대책을 내놨다. 전원의 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지금의 2배인 65%로 끌어올리고,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기후변화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았지만 기본적으로 화석연료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인식에 바탕한 전략이다. 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에서 화석연료에 기반한 성장으로 새로 일어섰지만 그 체제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강력한 전환으로 세계 시장을 끌어가면서 새로운 재생에너지의 산업 체제에서도 지배력을 갖겠다는 의미다.”
-온난화 대책 후발국인 우리의 목표와 속도는 이대로 괜찮나.
“유럽은 재생에너지로 만들지 않으면 물건 안 받겠다, 탄소국경세 매기겠다고 나오고 있다. 이렇게 판이 바뀌는 마당에 우리 정부는 더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전환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유럽을 설득해보겠다는 식이다. 유럽은 새로운 산업의 지배력을 쥐기 위해 더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것이다. 10여 년 전 녹색성장을 외칠 때부터 내실 있게 준비해야 했는데 제대로 한 게 없어서 지금 바뀌는 세계 시스템을 헐떡이며 쫓아가는 꼴이 됐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기후변화 대응이나 재생에너지 전환이 가장 후진적인 나라다.”
-그래도 2050년 탄소중립 선언 등 포괄적인 방향을 정하고 세부 계획도 수립 중이지 않나.
“2018년 인천 IPCC 총회에서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2030년까지 탄소를 절반 이상 줄이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4분의 1만 줄이고 나머지 4분의 3은 이후 줄인다는 계획을 잡고 있다. 탄소 배출은 초반에 과감하게 줄일 여지가 많다. 뒤로 가면 갈수록 기술적인 문제 등으로 부득이 화석연료를 써야 할 부분이 있다. 이를 줄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결국 다음 세대로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먼저 4분의 1 줄인다는 것도 실현 방안이 좋지 않다. 아직 실용화되지 않은 탄소 포집, 저장기술을 활용하겠다거나 산에 나무 많이 심겠다는 식이다. 정책 책임자들이 기후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이런 인식 능력이 더 큰 위기다.”
-탄소 감축 과정에서 원전은 뜨거운 감자다. 원전을 온난화 대책의 하나로 유지할 필요가 있나.
“가동 중인 원전을 멈출 이유는 없다. 위험이냐 혜택이냐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원전 폐기물이 미래 세대에 편익도 없이 위험만 안기는 점을 고려하면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는 것은 윤리적으로 당연하다.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해결할 기술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 일본이 영국과 터키의 원전 건설을 수주했다가 매몰 비용을 내고 철수했다. 이 원전들은 짓는데 10년 걸리고 원금 회수에 30년이 걸려 그 후 계속 돌려야 이익을 보는 구조였다. 30, 40년 후면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판도를 완전히 바꿀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비용은 이미 10년 전보다 각각 90%, 70% 떨어졌다. 기술혁신 연구도 활발하다. 지금도 재생에너지가 가장 싼 데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원전에 투자하겠다는 나라가 얼마나 있나. 새로 원전 짓는 비용은 결코 싸지 않다. 원전은 시장경제에서 끝났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나.
“정부가 몰라서 안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들으려 하지 않고 들을 귀가 없다는 게 문제다. 기후 위기 대처법을 만든다는데 그 속에도 녹색성장이라는 말이 들어간다. 위기에 대응한다면서 결국 성장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위기는 주로 결핍 때문에 일어났다. 홍수는 둑이 없어 막지 못했고, 가뭄은 댐이나 저수지가 없어서 겪는 일이었다.
지금의 기후 위기는 결핍이 아니라 과잉 때문에 일어난다. 전 세계 식량 생산량만 따지면 80억 인구가 먹고 남는데도 굶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쓰레기 처치 곤란은 몇십 년 전이었으면 집에 있을 물건들이 버려진 결과다. 정치인은 여전히 부족하니 성장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성장이 아니라 정의로운 분배가 없어서 발생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런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에너지 문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후변화를 그저 먼 나라의 불행 정도로 여겨온 것도 사실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하나.
“서구인 기준으로 한 사람이 1년에 60톤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그 사람이 대중교통만 이용하고 채식을 하며 비행기는 절대 타지 않는 성자 수준의 절제를 한다면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 것 같나. 고작 10톤 정도다. 지금 같은 서구 문명 속에 사는 한,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50톤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출된다. 기후변화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시스템이 바뀌지 않고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개인 차원의 각성이나 도덕성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시스템은 어떻게 바꿀 수 있나.
“웬만한 유럽 도시에서는 대중교통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비율이 50% 가까이 된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가서 왜 자전거 타느냐고 물어보면 기후변화 대응이라고 답할 것 같지만 아니다. 빠르고 편리해서 이용한다고 말한다.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춰져 있으면 10㎞쯤 얼마든지 갈 수 있다. 그렇게 삶의 조건을 바꿔야 한다. 정치가 할 일이고 대통령이 앞장서 끌어가야 할 문제다.
지난해 재선된 파리 여성시장이 선거 때 파리 시내 9만 개 주차장 중 6만 개를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자신의 2기 임기가 끝날 때는 자가용으로 동에서 서로 파리 시내를 가로질러 가지 못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당선됐다. 이런 후보가, 이런 시민의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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