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은 사주팔자에서 연유됐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과 행동, 관습들을 명리학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본다.
복날은 명리학(命理學)의 기본 달력인 24절기와 음양오행(陰陽五行)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복날은 24절기 중 열 번째인 하지(夏至)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初伏), 초복을 지나 열흘째 경일이 중복(中伏), 이어 열세 번째 절기인 입추(立秋)로부터 첫째 경일이 말복(末伏)이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10일 차로 삼복이 들면 매복(每伏), 올해처럼 중복과 말복(8월 10일) 사이가 20일로 달이 바뀌면 월복(越伏)이라 한다.
월복은 그만큼 무더위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걱정스럽게도 2024년까지 월복이 계속된다. 복날은 삼복(三伏) 또는 경일이 세 번 들었다 해서 삼경일(三庚日)로도 불린다.
정작 복날은 정학유의 '농가월령가'에서 "삼복은 속절(俗節)이요"라는 대목처럼 24절기가 아니다.
고대 달력은 천간(天干)인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와 지지(地支)인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조합인 60갑자를 사용했다. 천간은 10개로 십간(十干)이라고도 한다.
천간에서 경신(庚·辛)은 오행(木·火·土·金·水) 중 쇠, 바위 등을 나타내는 금(金)으로 경은 양(陽) 기운의 금, 신은 음(陰) 기운을 갖는다.
조선 광해군 때 이수광은 "복날의 복이란 음기가 장차 일어나고자 하나 남은 양기에 굴복한 것이다"라고 했다. ('지봉유설')
이는 오행에서 가을을 나타내는 차가운 금(金) 기운이 아직 한창인 여름인 불(火)에 쇠가 녹듯(火剋金) 힘을 못 쓴다는 뜻이다. 예전부터 삼복더위는 그만큼 맹위를 떨쳤다.
한편 삼복을 모두 경일로 정한 것은 서늘한 가을 기운으로 더위를 조금이나마 이겨내라는 상징으로 해석해 볼 만하다.
육당 최남선은 삼복을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고 했다. '복날은 더위를 꺾어 제압하는 날'이란 뜻이다.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맞서 극복한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인 셈이다. ('조선 상식')
복(伏) 자는 '人(사람)과 犬(개)'가 결합한 회의(會意) 문자다. 사람이 개와 같이 땅에 엎드린(伏地不動) 모습이 본래의 의미다. 사냥할 때 들키지 않게 웅크린 모습으로 매복(埋伏), 잠복(潛伏), 복병(伏兵) 등에 쓰인다. 또 굴복하다, 죄를 인정하다 등의 뜻도 있다. 형벌에 복종하는 것을 복법(伏法), 죄를 시인하는 것을 복죄(伏罪)라고 한다.
더워서 지친 모습이지 '사람(人)이 개(犬)를 잡아먹는다'라는 해석은 무지하거나 견강부회다.
서양에서도 일 년 중 가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를 'dog days'라고 한다. 이 기간에 가장 빛나는 별 큰개자리인 시리우스(Sirius)가 떠 있는 것을 빗대 표현한 것이다.
복날과 무더위에 몸보신용 음식을 먹는 복달임 풍습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시작됐다.
"진(秦) 덕공(德公) 2년(기원전 676년)에 처음으로 복날을 만들어 개를 잡아 열독(熱毒)과 사기(邪氣)를 다스렸다(二年初伏 以狗禦蠱)." ('사기')
당시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음식이 바로 개고기였다. 개고기는 잡귀와 부정을 막고, 제사에 올리기도 했다. ‘예기’와 ‘논어’에도 제사에 개고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순조 때 세시풍속서를 쓴 홍석모는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이 개장국이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타고 밥을 말아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 그렇게 하여 땀을 흘리면 허한 것을 보강할 수 있다"고 했다. ('동국세시기')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별다른 동물이 없는 농경사회일수록 개고기를 먹는 풍속이 강하다"고 했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린 것이 많다. 다양한 먹거리로 영양 과잉 시대다. 개는 더 이상 식용이 아닌 반려견으로 '또 하나의 가족'이다.
진(秦)나라 재상 상앙은 "세상이 변하면 행동방식도 달라져야 한다(世事變而行道異)"고 했다. 이제 사람은 물론 개도 '복날 개 패듯' 하면 큰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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