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이달 초 중미에서 발생한 올해 첫 허리케인인 엘사가 쿠바와 미국 플로리다를 휩쓸며 다수의 인명피해와 정전 사태 등을 일으켰다. 기후 변화로 해수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허리케인과 태풍의 발생 빈도와 규모가 커지며 기후 재해가 더 심각해지는 추세다. 인공위성이 촬영한 거대한 태풍의 모습은 규모 면에서 인간을 심적으로 압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의 신비함과 아름다움까지 느끼게 한다.
사실 허리케인, 태풍, 사이클론은 모두 열대성 저기압이라는 동일한 기상 현상을 일컫는다.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달리 붙었을 뿐이다. 그런데 허리케인은 지구의 전유물일까?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목성, 토성 및 화성에도 허리케인과 비슷한 대기 현상이 관측된다고 한다. 그런데 올 3월 한 국제연구팀은 지구 북극의 상공에서 형성된 ‘우주 허리케인’ 현상을 최초로 발표한 바 있다. 지상이 아닌 수백 ㎞ 상공에서 펼쳐진 허리케인이라니! 폭염 속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오늘은 북극 상공의 무대를 향해 함께 떠나 보자.
허리케인의 고향, 열대의 바다
우주 허리케인의 비밀을 엿보기 전에 우선 지상의 허리케인(태풍)이 생기는 원인을 알아보자.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는 허리케인의 엄청난 파괴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액체인 물이 기체인 수증기로 변하는 과정과 관련된다. 물질은 상태가 변할 때 열을 흡수하거나 방출한다. 0도의 얼음을 0도의 물로, 100도의 물을 100도의 수증기로 바꾸기 위해선 열에너지를 공급해 줘야 한다. 반면에 수증기가 물로, 물이 얼음으로 바뀔 때는 공급해 준 것과 같은 양의 에너지가 외부로 방출된다. 이처럼 상태 변화에 수반돼 출입하는 열에너지를 잠열이라 한다.
허리케인의 고향은 적도 부근의 열대지역이다. 이곳의 고온 다습한 공기 덩어리는 상대적으로 가벼워 상공으로 올라간다. 스티로폼을 물속에 밀어넣으면 물보다 가벼운 스티로폼이 부력을 받아 위로 올라오는 것과 비슷하다. 해상의 공기가 상승하면 기압이 낮아지니 주변의 공기가 흘러 들어와 채우며 상승 기류에 기여한다.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차가운 상공에서 물방울로 변할 때 위에서 설명한 잠열이 방출된다. 이 에너지가 상공의 공기를 데워서 더욱 가볍게 만들며 아래로부터 계속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를 빨아들인다. 그깟 수증기가 얼마나 대단한 에너지를 갖고 있길래 허리케인과 같은 엄청난 기상 현상을 만드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상층부로 올라간 수십억, 수백억 톤의 수증기가 내놓는 에너지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이 거대한 잠열 에너지가 태풍의 중심부(웜 코어)를 주변보다 10도에서 15도 정도 상승시킨다. 이는 태풍 중심부의 압력을 더 낮춰 상승기류를 더 강하게 하고 그렇게 공급되는 수증기는 다시 태풍 성장의 연료가 된다. 지상에서 기압 차이로 인해 태풍의 중심을 향해 가는 바람은 지구의 자전에 따른 영향, 지표와의 마찰에 의한 영향 등으로 북반구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휘어지는 나선형을 그리며 중심부를 향한다. 이런 복합적인 영향의 결과로 우리에게 친숙한 태풍의 구조, 즉 태풍의 눈, 눈의 벽, 나선형 구름 띠 등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주 허리케인의 연출자
이제 북극 위 높은 상공으로 가보자. 우주 허리케인의 무대는 고도 수십~수백㎞에 펼쳐져 있는 전리층이다. 이곳은 태양의 자외선과 엑스선 등에 의해 전리된 전자와 이온이 존재하는 플라스마의 공간이다. 앞에 언급한 국제 연구팀은 2014년 네 대의 기상 위성이 측정한 데이터를 분석한 후 약 1,000㎞의 크기를 가진 우주 허리케인이 2014년 8월에 8시간 정도 북극 상공에서 형성, 머무르다 소멸된 것으로 보고했다. 물론 이 허리케인은 열대 바다 위에서 형성되는 허리케인은 아니다. 지상 허리케인에서 주인공은 열대 지역의 따뜻한 해수와 상승하는 수증기가 내뿜는 잠열이다. 그렇다면 우주 허리케인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연주자는 전자기력이요 출연자는 전하를 띤 입자들, 즉 태양이 내뿜는 태양풍과 지구 전리층 속 이온과 전자들이다.
우주의 근본적인 힘 중 하나인 전자기력은 전자와 이온과 같은 하전 입자에 힘을 주어 이들의 운동 상태를 바꾼다. 전기장은 하전 입자들에 전기력을 주어 가속을 시키고 자기장은 하전 입자들의 운동 방향을 바꾼다. 지구는 그 자체로 거대한 자석이라 주변에 자기장을 만들고, 여기에 태양풍과 태양의 자기장 등이 더해져 복잡한 자기장 패턴이 지구 주변에 형성된다. 중요한 것은 지구의 자기장 덕분에 고에너지 입자로 구성된 태양풍이 지상을 폭격하지 않고 우주 공간으로 밀려나거나 방향을 꺾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의 일부가 극지방으로 들어와 지구 대기와 부딪히며 펼치는 아름다운 오로라는 격렬한 우주 날씨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번에 밝혀진 우주 허리케인 역시 전자기력의 지휘하에 태양풍과 전리층의 플라스마가 펼친 한 판의 멋진 공연이었다. 우주 허리케인은 가운데에 태풍의 눈과 비슷한 구조 속에 수직으로 흐르는 전류 기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주위에 회전하는 나선형 플라스마 팔을 거느렸다. 물론 지상의 허리케인처럼 막대한 양의 비를 뿌리지는 않았으나 전자의 비가 지상 쪽으로 내리꽂히며 허리케인의 아래에 회전하는 오로라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태양풍으로부터 지구의 전리층으로 상당한 양의 에너지가 단기간에 유입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허리케인이 발생했던 시점이 태양풍이 비교적 잠잠하고 지자기의 활동성이 매우 약한 시기였다는 점에 과학자들은 주목했다. 비록 우주 허리케인의 비밀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통해 태양계와 태양풍, 지구의 자기권 및 전리층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과거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음은 분명하다.
대기의 상층부에 숨어 있는 비밀들
예상하지 못했던 우주 허리케인을 지구의 전리층에서 최초로 확인했다는 것은 지구의 대기에, 특히 상층부에 아직도 인간의 발견과 이해를 기다리는 현상들이 많이 있음을 시사한다. 지상의 경우 이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거의 없으나 심해와 높은 고도의 대기는 아직 감추어진 비밀이 많은 곳이다. 가령 번개, 그중에서도 뇌우와 지상 사이에 형성되는 벼락은 우리가 가장 흔히 보는 대기 방전 현상 중 하나다. 그런데, 뇌우보다 훨씬 높은 고도에서 인간의 눈을 피해왔던 방전 현상들이 근래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89년 카메라에 최초로 잡힌 스프라이트(Sprite)라는 번개는 뇌우보다 높은 하늘에서 발생하는 방전 현상에 대한 연구의 불씨를 당겼다. 예상 못한 고도에서 우주로부터 뇌우를 향해 내리치는 붉은색 번개는 이 영역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블루 제트(blue jet), 자이언트 제트(giant jet), 엘프(elf), 할로(halo) 등 다양한 방전 현상들이 높은 고도에서 목격되면서 지구적 차원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규명되지 않았지만 대기 과학자들의 체계적인 탐구 속에서 서서히 이들의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견된 우주 허리케인은 지상의 허리케인처럼 인류에게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을까? 지상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극지방의 전리층에서 벌어지는 플라스마 현상이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단 이번 연구자들은 우주 허리케인이 인공위성의 운동이나 통신 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연구가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상의 날씨에 더해 우주의 날씨 역시 우리의 삶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가고 있다. 격렬한 지자기 폭풍은 우주의 인공위성이나 비행체에 입사되는 방사능의 양뿐 아니라 지상의 송전 시스템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우주 날씨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가는 이유다. 이런 면에서 이번 우주 허리케인의 발견은 지구의 고고도에서 펼쳐지는 우주 날씨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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