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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차버린 것

입력
2021.07.15 18:20
수정
2021.07.16 09: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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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토론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예비경선에서 이 지사는 대표 정책인 기본소득에서 후퇴하는 입장을 밝혔다.

8일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토론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예비경선에서 이 지사는 대표 정책인 기본소득에서 후퇴하는 입장을 밝혔다.

기본소득 후퇴하고 성장 내건 예비경선
불평등과 증세 토론할 기회 내던져
민주당, 공론화해 대선 어젠다 삼아야

노동의 가치는 빛을 잃고 자산·소득 격차는 커지기만 하는 이 시대에 성장은 우리를 구할 것인가. 아닐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석학들은 성장이 아닌 불평등 해소가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은 이 중대한 문제의식에 접근할 기회를 차버렸다. 반(反)이재명 연대가 기본소득을 집중 공격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스스로 대표 정책을 구겨 넣으면서다. 예비경선의 가장 실망스러운 대목은 바지논란이 아니라 기본소득 후퇴였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건 적 없다고 했고 제1공약은 성장회복이라 했다. 경쟁 주자들은 말바꾸기를 문제 삼았다. 결과적으로 기본소득의 목적과 방법과 의미는 다뤄지지 않았다. 그나마 박용진 의원이 기본소득의 재원을 따져물으며 논쟁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당혹스럽게도 ‘감세를 통한 성장’이라는 고색창연한 보수 캐치프레이즈를 들고나온 후보다. 감세가 성장을 촉진한다는 주장이 실증적 근거가 없다는 것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저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이 단언하는 바다. 1980년대에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영국 대처리즘은 감세, 기업 규제 완화, 노조 약화를 밀어붙였으나 성장률은 기대 이하였고 불평등은 폭발했다.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이 미국의 31차례 조세 개혁을 분석한 결과 상위 10%에 혜택을 준 조세 감면은 고용과 소득 증대, 경제성장과 무관했다. 과거의 상식에 사로잡힌 박 의원은 기본소득 토론을 했더라도 한계가 있었을 것 같다.

나는 기본소득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그럼에도 이를 공론화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믿는다. 기본소득이 필요한지 토론하다 보면 세계화 시대에 부의 격차는 왜 날로 커지는지를 따지게 될 것이다. 부동산과 금융으로 돈 버는 일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보다 그렇게 큰 대가를 받을 일인지 묻게 될 것이다. 자산이 없어 빈곤에 머문 이들을 ‘무능력자’로 낮춰보는 게 당연한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가난한 삶도 품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온 사회가 함께 생산해 얻은 수익을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나눠야 한다는 것까지 말하게 될 것이다. 이 지사는 이것을 말할 기회를 차버렸다. 불평등 문제가 2022년 대선 어젠다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민주당은 알지 못했다.

기본소득의 관건이 증세이기에 또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대기업 법인세, 최고 부자의 소득세·자본이득세 최고 세율 인상안을 내놓았다. 주요 20개국(G20)은 최근 조세회피를 막기 위한 15% 최저 법인세율과 다국적 기업 현지 과세에 합의했다. 그렇다. 증세의 시대다.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기본소득에 반대해 안심소득을 내놓은 오세훈 서울시장, 중부담-중복지를 주장해 온 유승민 전 의원 등 보수의 복지정책조차 증세를 필요로 한다. 보수-진보 공통의 이해로써 증세를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부자들의 자산에 대한 부유세를 주장한다.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근로소득세를 깎고 금융거래세를 신설하기를 제안한다. 기업인 빌 게이츠는 로봇세에 찬성한다.

‘힘든 시대…’의 저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심화하는 불평등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흔히 트럼프의 포퓰리즘, 영국의 브렉시트, 유럽의 극우주의가 그 사례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라고 예외일까. 양극화 해소에 천착하기는커녕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공들이는 지경이다. 그러니 민주당 대선 주자들에게 요구한다. 기본소득을 토론하라.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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