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 탈출하는 사육곰, 죽이지 말고 보호시설 보내주세요"

입력
2021.07.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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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반달가슴곰 오삼이의 청원

편집자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경기 용인시 곰 사육농가에서 불법 증식된 새끼 반달가슴곰이 철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경기 용인시 곰 사육농가에서 불법 증식된 새끼 반달가슴곰이 철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방랑곰', '콜럼버스곰’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국립공원공단이 종 복원을 위해 2015년 10월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KM-53'입니다. 53번째로 한국(Korea)에서 태어난 수컷(Male)을 의미하는데요, 저는 '오삼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유명해진 건 화려한 지리산 탈주 시도 때문입니다. 2017년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두 차례 발견돼 복원지역인 지리산으로 돌려보내졌지요. 2018년엔 다시 수도산으로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복합골절 수술을 받은 첫 번째 곰이 됐습니다. 수술 후 결국 수도산에 방사됐는데 2019년엔 구미 금오산, 2020년 충북 영동에 나타나 벌통 꿀을 먹다 걸렸고, 지난달 다시 충북 영동, 전북 남원을 누비다 지금은 지리산에 머물고 있습니다.

2018년 9월 경북 김천 증산면 수도산 해발 800m 지점에서 방사되기 직전 반달가슴곰 KM53의 모습. 환경부 제공

2018년 9월 경북 김천 증산면 수도산 해발 800m 지점에서 방사되기 직전 반달가슴곰 KM53의 모습. 환경부 제공

제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건 멸종위기종으로 종 복원 사업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멸종위기종 반달가슴곰인데 죽을 때까지 철창에 갇혀 지내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사육곰'들입니다. 지난 6일 경기 용인시 사육농장에서 곰 2마리가 탈출해 1마리는 농가로부터 400m가량 떨어진 야산에서 사살됐고, 다른 한 마리는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초 탈출한 곰이 1마리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지만 농장주가 2마리라고 밝히면서 용인시와 한강유역환경청은 남은 1마리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는데요. 동물단체와 시민들의 의견에 따라 남은 1마리는 발견해도 사살 대신 생포하기로 했습니다.

2019년 7월 경기 여주시 곰 사육농가에서 탈출해 농수로에 빠졌던 불법증식 새끼 반달가슴곰은 농장으로 돌아가 결국 폐사했다. 여주소방서 제공

2019년 7월 경기 여주시 곰 사육농가에서 탈출해 농수로에 빠졌던 불법증식 새끼 반달가슴곰은 농장으로 돌아가 결국 폐사했다. 여주소방서 제공

문제는 이 곰이 살아 있어도 결국 같은 농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몰수할 수 없고, 몰수한다 해도 이들을 보호할 시설이 없어서입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곰 농가 27곳에서 398마리가 웅담채취용, 불법증식된 23마리가 전시관람용으로 사육되고 있는데, 탈출한 곰은 전시관람용으로 돌아가도 좁은 철창에 갇혀 평생을 살아가야 하죠. 참고로 웅담채취용 곰은 열 살 이상이 되면 도축할 수 있습니다. 앞서 2019년 7월 경기 여주시 곰 사육장을 탈출해 농수로에 빠졌던 새끼곰 역시 농장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았는데요.

2010년 이후 사육곰 탈출 사건 일지. 녹색연합 제공

2010년 이후 사육곰 탈출 사건 일지. 녹색연합 제공


반복되는 탈출, 관리 부실·솜방망이 처벌 때문

용인시, 환경부, 경기도,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이 8일 반달가슴곰 2마리가 탈출한 용인의 한 곰 사육농장을 살펴보고 있다. 1마리는 지난 6일 탈출 당일 사살됐고, 1마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용인시 제공

용인시, 환경부, 경기도,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이 8일 반달가슴곰 2마리가 탈출한 용인의 한 곰 사육농장을 살펴보고 있다. 1마리는 지난 6일 탈출 당일 사살됐고, 1마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용인시 제공

사육곰 탈출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사육곰 탈출 사건은 2010년 이후 이번 용인시 사례를 포함해 20건으로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고요, 탈출 곰들의 절반은 사살됐습니다. 더 주목할 점은 이번에 곰들이 탈출한 농가에서만 2012년 이후 최소 5건의 탈출 사고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이에 더해 5월 울산 울주군에서 탈출한 곰 역시 이 농가에서 불법증식해 임대한 개체죠. 지난해에는 이 농장주가 반달가슴곰을 불법 도살하고 고기를 판매한 사실까지 동물자유연대에 의해 확인됐습니다.

사육곰 탈출이 반복되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부실한 관리, 솜방망이식 처벌 때문입니다. 박은정 녹색연합 녹색생명팀 팀장은 "곰 탈출 사고가 이어지는데도 해당 농가의 시설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이번 사고 후에도 철제 사육장이 훼손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전시 관람용 반달가슴곰의 사육은 법적 사육 시설 규정에 따라야 하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고요. 다른 농가들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웅담채취용 반달가슴곰의 사육시설은 충족 기준도 낮은 데다 권고에 그쳐 더욱 취약합니다.

경기 용인의 한 곰 사육농장에서 불법증식된 새끼곰들은 다른 곰이 죽임을 당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경기 용인의 한 곰 사육농장에서 불법증식된 새끼곰들은 다른 곰이 죽임을 당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해당 농가가 곰을 불법증식한 데 이어 시설을 제대로 보완하지 않고 불법 대여, 취식까지 반복적으로 해온 것은 처벌이 수백만 원의 벌금에 그쳐서입니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해당 농가는 8마리를 불법증식한 것에 대해 200만 원, 사육시설 개선 미이행에 대해서도 200만 원의 벌금만 냈습니다. 곰 1마리에서 나오는 웅담만으로도 최소 500만 원, 대여 시에는 800만 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벌금을 내면서 불법을 저질러 온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부가 전남 구례군에 야외 방사장, 사육장, 의료시설 등을 갖춘 반달가슴곰 보호시설(생츄어리)을 2024년까지 조성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고작 50마리 정도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보호시설이 생긴다 해도 모든 곰을 구조할 수 없는 겁니다. 또 지어질 때까지 3년이라는 시간도 남아 있습니다.

경기 한 곰 사육농장에서 불법증식된 반달가슴곰이 식용 개를 키우는 ‘뜬장’을 본떠 만든 철제 우리에 갇혀 있다. 녹색연합 제공

경기 한 곰 사육농장에서 불법증식된 반달가슴곰이 식용 개를 키우는 ‘뜬장’을 본떠 만든 철제 우리에 갇혀 있다. 녹색연합 제공

사육곰들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사육시설을 철저히 관리, 감독해주세요. 또 불법증식 등 불법 행위에 대해 강력히 처벌하고 구례군 보호시설 이외에도 남은 곰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보호구역 마련에 힘써주시길 강력히 요청합니다.

사육곰들 보호를 촉구한 반달가슴곰 'KM-53'이 낸 청원에 동의하시면 포털 사이트 하단 '좋아요'를 클릭하거나 기사 원문 한국일보닷컴 기사 아래 공감 버튼을 눌러주세요. 기사 게재 후 1주일 이내 500명 이상이 동의할 경우 해당 전문가들로부터 답변이나 조언, 자문을 전달해 드립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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