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요인 제거가 어린이를 성장시키는 길일까

입력
2021.07.15 15:30
수정
2021.07.15 15:32
19면

편집자주

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 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포목점 주인인 아빠는 우로가 화가가 되기를 바란다. 우로는 캔버스 '우로마'에 자화상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책읽는곰 제공

포목점 주인인 아빠는 우로가 화가가 되기를 바란다. 우로는 캔버스 '우로마'에 자화상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책읽는곰 제공

어린이가 잘 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잘 자랄 수 있게 돕는 길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상적인 ‘성장하는 어린이’상을 그릴 때 해맑고 밝은 얼굴을 떠올린다. 주변과 갈등 없이 크고 작은 삶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인물을 상상하고, 다양한 교육적 방법으로 그들의 성장을 돕는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린이가 자라면서 보여주는 갈등 상황, 좌절, 부정적 감정, 울퉁불퉁한 성장 과정을 직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모든 갈등과 좌절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어린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길일까.

중국의 아동문학 작가 차오원쉬엔이 쓰고 이수지가 그린 그림책 '우로마' 속 주인공 우로의 부모도 아마 비슷한 어려움에 처했던 것 같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포목점 주인이 된 아빠는 우로의 미술 재능이 자랑스럽다. 아빠는 이름난 화가를 모셔 우로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천 전문가답게 최고급 캔버스를 건넨다. 미술 거장 서창 선생이 주문했지만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게에 남게 된 우로마(雨露麻·Yulu linen) 캔버스다.

우로는 자신만만하게 자화상을 완성하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과 이름이 같은 우로마는 그렇게 녹록하게 우로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최고의 거장을 위한 캔버스라는 자부심 때문일까. 우로가 그려낸 자화상을 우로마는 튕겨내고 흘러내려버린다. 우로는 꽃무늬 천으로 캔버스를 덮어버리고 부모에게 그림을 보여주기를 거부한다.

우로마에 그림을 그리고, 실패하고, 지우고, 또 그리기를 반복하면서 매일 밥도 먹지 않고 야위어 가는 우로를 보면서 부모는 우로에게 캔버스를 준 것을 걱정하고 급기야 캔버스를 치워버린다. “내가 버렸다. 쓰레기통에 갖다 넣었어. 네가 그린 자화상이 자그마치 일곱 점이야. 일곱 점! 더는 그 물건을 곁에 두면 안 돼!”

우로는 성난 눈으로 아빠를 노려보며 자신의 캔버스를 찾으러 나간다. 그리고 어둠을 헤치고 필사적으로 캔버스를 찾아 나선다. 우로는 결국 자신의 작품을 완성할 것이다.

흔히 어린이를 하얀 도화지에 비유하며 아무것도 없으니 맘껏 그려넣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러했듯 아무리 자신만만하게 자라난 어린이라도 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만만한 흰 도화지라기보다 아직 화가로서 역량이 부족한 내 그림을 자꾸 밀어내는 캔버스에 가깝다. 미술 거장을 위한 최상급 우로마 캔버스라면, 즉 어린이가 더 큰 세계에 도전할수록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가 성장한다는 것은 세계에 자신을 부딪혀 가면서 도전하고 소통하고 협상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당연히 다양한 강도의 여러 번의 좌절이 있을 것이다. 우로마의 부모처럼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워 좌절과 갈등의 요소를 제거하려 나서기 십상이다.

우로는 칠흑 같은 어두움을 헤치고 버려진 캔버스 '우로마'를 찾아 나선다. 책읽는곰 제공

우로는 칠흑 같은 어두움을 헤치고 버려진 캔버스 '우로마'를 찾아 나선다. 책읽는곰 제공

그렇지만 작가들의 의견은 다른 것 같다. 우로가 칠흑 같은 어두움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버려진 캔버스를 찾아 나설 때다. 우로의 부모는 적당한 거리에서 우로가 안전하게 캔버스를 찾을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을 뿐이다.

이수지 작가가 그린 우로는 화면 한가운데에서 당차게 우로마 캔버스에 도전하고, 만족할 만한 작품이 나올 때까지 끈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어린이 예술가의 모습이다. 우로의 세계를 점령한 엉망이 된 캔버스와 우로가 자신을 감춰 버리는 꽃무늬 천은 마침내 평화롭게 우로의 세계 안에 자리잡는다. 미술 거장 서창 선생의 캔버스는 이제 우로의 것이 됐다.

우로마는 추운 지방에서 냉기, 비, 바람, 서리를 맞으며 자란 아마로 만들어진다, 어렵게 자란 아마는 압착과 빗질 과정을 거쳐 최상급의 리넨으로 만들어져 보통 리넨보다 훨씬 값비싼 고급 원단의 재료가 된다. 추운 기후를 견디며 자란 아마가 최고급 리넨이 되듯, 어린이들은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더욱 곱고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우로마'를 통해 세계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하는 어린이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어른도 용기와 통찰을 얻게 되지 않을까.

우로마·차오원쉬엔 글·신순항 옮김·이수지 그림·책읽는곰 발행·48쪽·1만3,000원

우로마·차오원쉬엔 글·신순항 옮김·이수지 그림·책읽는곰 발행·48쪽·1만3,000원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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