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모범국' 호주는 어쩌다 델타 변이에 발목을 잡혔나

입력
2021.07.15 19:00
수정
2021.07.15 19:12
구독

백신보다 '거리 두기' 위주로 방역 정책
감염력 센 델타 변이 유입에 확진자 급증
뒤늦은 백신접종 확대... 물량 확보 난관
美방송인 "백신 2회 맞았는데 델타 감염"

호주 시드니에서 한 시민이 14일 마스크를 내린 채 '시드니 인근 주민은 집에 머무르라'는 봉쇄 조치 문구가 적힌 표지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시드니=EPA 연합뉴스

호주 시드니에서 한 시민이 14일 마스크를 내린 채 '시드니 인근 주민은 집에 머무르라'는 봉쇄 조치 문구가 적힌 표지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시드니=EPA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청정지역’이라 자부해 왔던 호주가 델타 변이에 덜컥 발목을 잡혀 버렸다. 호주 정부의 방역 정책은 백신 접종보단 사회적 거리 두기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전염력이 매우 강한 델타 변이가 유입되자 지역사회 감염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황급히 ‘백신 접종 확대’를 선언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백신 물량 확보 및 접종에 안일했던 정부 탓에 재확산이 일어났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4일(현지시간) 방역 모범국이었던 호주가 델타 변이 확산과 봉쇄 조치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들어 호주의 일일 확진자 수는 줄곧 30명 미만이었으나, 지난달 16일 델타 변이 유입 이후부턴 상황이 달라졌다. 봉쇄 조치가 시작된 같은 달 말 30명을 넘기더니, 이날엔 108명까지 치솟았다. 당초 16일 종료될 예정이었던 봉쇄도 30일까지 연장됐다.

통신은 “호주 정부가 백신 접종을 등한시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만 집중했던 게 패착”이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호주 정부는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엄격한 국경 통제와 격리ㆍ봉쇄 조치를 시행했다. 백신은 뒷전이었다. 호주에서 1·2차 접종을 모두 마친 사람은 9.1%뿐이다. 영국(52.2%)이나 미국(48.5%)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비율이다. 일각에서 너무 느린 접종 속도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지만, 지난 3월 모리슨 총리는 “백신 접종은 경주가 아니다”라며 빠른 접종은 불필요하다고 일축했다.

그런데 델타 변이 출현과 함께 상황은 급변했다. 거리 두기 조치가 눈에 띄는 방역 효과를 발휘했던 종전과는 양상이 180도 달라졌다. 델타 변이의 전염력이 기존 바이러스보다 훨씬 강력해 봉쇄보단 백신 접종이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델타 변이 감염이 급증하는 미국에서도 코로나19 신규 감염자의 99.7%가 백신 미접종자로 나타나면서 변이에 대항하는 백신의 힘이 확인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호주 정부는 부랴부랴 백신 접종 대상을 확대하고 나섰다. 부작용을 우려해 60세 이상에만 접종했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지난달 29일부턴 18세 이상 성인 모두가 맞을 수 있도록 했다.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은 화이자 백신을 들여오기 위한 협상도 시작했으나, 다른 나라보다 뒤늦게 백신 확보전에 뛰어드는 바람에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보건 전문가들은 호주 정부의 늑장 대처를 재확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빌 보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 감염학과 부교수는 블룸버그에 “모리슨 총리가 ‘코로나 제로’라며 호주의 방역을 치켜세웠지만, 델타 변이가 나라를 강타하기 전 제대로 검역이나 접종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다만 백신 접종만이 능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방송인 캣 새들러는 자신이 2차 접종까지 마쳤는데도 델타 변이에 감염됐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백신을 맞았어도 방심해선 안 된다”며 “실내 공공장소에선 마스크를 착용하길 강력히 권한다”고 당부했다.

박지영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