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산업 성행한 1970년대 뉴욕 42번가에서는...

입력
2021.07.17 10:00
17면

<45> 왓챠 '더 듀스'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HBO가 제작하고 왓챠에서 볼 수 있는 '더 듀스'는 포르노 산업이 성행하던 1970년대 뉴욕 42번가를 배경으로 한다. HBO 제공

HBO가 제작하고 왓챠에서 볼 수 있는 '더 듀스'는 포르노 산업이 성행하던 1970년대 뉴욕 42번가를 배경으로 한다. HBO 제공

1997년, 처음 뉴욕을 갔다. 영화 속 풍경과 똑같았던, 타임스퀘어 근처 호텔에 묵었다. 다음 날 조식을 먹고 혼자 주변을 산책했다. 화려하고, 세련되고, 지저분했다.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가자 스트립쇼와 핍쇼(동전을 넣고 보는 누드쇼) 가게가 있고, 홈리스도 무척 많았다.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갈수록 환경은 열악해졌다. 저기 널브러진 사람은 홈리스가 아니라 마약중독자 같은데. 아니 둘 다일까. 호텔에서 겨우 두어 블록 거리인데도 전혀 다른 세계였다. 어둡고 위험한 대도시의 더욱 음침한 뒷골목. 그래도 2000년대 이후 뉴욕 거리는 이전보다 깨끗하고 안전해졌다.

찰스 브론슨이 출연한 영화 '데드 위시(1976)'의 뉴욕은 폭력의 아수라장이었다. 고급 아파트 주변에서 절도와 폭력이 수시로 벌어져도 경찰은 통제 불능이다. 대도시는 슬럼화했고, 중산층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교외에서 살고 싶어한다. 건축사인 주인공은 아내와 딸이 불량배의 폭력에 희생되고 경찰이 범인을 잡지도 못하자, 총을 들고 거리에 나가 자경단이 된다. 20세기의 대도시는 무척이나 위험한 장소였다.


'더 듀스'는 술집 주인과 바텐더, 포주와 성매매 여성, 포르노 제작자, 게이와 레즈비언 등 뉴욕의 42번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HBO 제공

'더 듀스'는 술집 주인과 바텐더, 포주와 성매매 여성, 포르노 제작자, 게이와 레즈비언 등 뉴욕의 42번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HBO 제공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 '더 듀스'의 무대는 1971년에서 1985년까지의 뉴욕이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난잡했던 시절의 뉴욕. 듀스는 뉴욕의 42번가를 지칭하는 속어다. 지금은 뮤지컬의 성지로 유명하지만, 당시만 해도 듀스는 스트립쇼와 핍쇼, 성매매가 일상화된 유흥가였다. '더 듀스'는 42번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그려낸다. 술집 주인과 바텐더, 포주와 성매매 여성, 포르노 제작자, 게이와 레즈비언, 이탈리안 마피아 등등.

걸작 범죄 드라마 '더 와이어'를 함께 만든 데이빗 사이먼과 조지 페레카노스가 제작했는데, 그들보다 눈길을 끄는 제작자는 배우로도 참여한 매기 질렌할과 제임스 프랑코다. 성매매 여성이었다가 포르노 배우가 되고, 다시 감독이자 제작자가 되는 캔디를 연기한 매기 질렌할은 '더 듀스'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스타일에 개입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상반된 성격을 가진 쌍둥이 프랭키와 빈센트 마르티노를 연기한 제임스 프랑코는 에피소드 4편도 직접 연출했다. '더 듀스' 3시즌 25개 에피소드의 연출자 12명 중 9명은 여성이다.

2017년 시작해 2019년까지 방영된 '더 듀스'는 시청자와 비평가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로튼 토마토의 평점은 1시즌 93%, 2시즌 99%, 3시즌은 약간 떨어진 88%였다. 비평가들은 1970, 80년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디테일과 매기 질렌할 등 풍성한 여성 캐릭터들의 탁월한 연기와 역할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사건들을 그리는 균형적인 시각 등을 칭찬했다. 듀스라는 공간에 살거나 거쳐 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한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흐름을 예리하고 논쟁적으로 그려낸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임스 프랑코는 쌍둥이 형제인 바텐더 빈센트와 도박 빚에 허덕이는 프랭키라는 1인 2역을 실감나게 소화했다. HBO 제공

제임스 프랑코는 쌍둥이 형제인 바텐더 빈센트와 도박 빚에 허덕이는 프랭키라는 1인 2역을 실감나게 소화했다. HBO 제공

'더 듀스'의 이야기는 빈센트에게서 퍼져나간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술집의 바텐더였던 빈센트는 프랭키의 도박 빚을 받으려는 마피아 두목 루디 피필로와 가까워지고, 그의 도움으로 '더 듀스'에 하이햇이라는 술집을 시작한다.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술을 팔았다. 사업 수완이 뛰어난 빈센트는 루디의 구역에서 많은 술집과 마사지 업소 등을 관리하게 된다. 처남인 바비에게 마사지 업소를, 게이인 폴에게는 화려한 클럽의 운영을 맡긴다. 빈센트는 아내와 별거를 시작하고, 대학을 중퇴한 애비와 동거를 한다. 독점적 연애는 아니며 서로의 섹스 라이프에 간섭하지 않는다.


매기 질렌할이 연기한 아일린은 성매매 여성이었다가 포르노 배우가 되고, 다시 감독이자 제작자가 된다. HBO 제공

매기 질렌할이 연기한 아일린은 성매매 여성이었다가 포르노 배우가 되고, 다시 감독이자 제작자가 된다. HBO 제공

듀스는 환락가다. 거리에는 성매매 여성들이 남자를 유혹하고, 극장에서는 포르노 영화를 상영하고, 향락업소가 성행한다. 1972년에는 '목구멍 깊숙이'가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고, 뉴욕타임스(NYT)에서 리뷰를 싣는다. 포르노 영화는 은밀한 취향에서 새로운 문화예술의 가능성이 되었다. '더 듀스'는 소위 향락산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포르노 배우는 거리에서 일하던 여자들이었다. 캔디라는 이름으로 성매매를 하던 아일린 머렐은 우연히 포르노에 출연하면서 제작 과정에 흥미를 갖는다. 아일린은 촬영을 배우고, 연출에 참여하고, 제작을 시작한다. 아일린에게 영화에 대해 알려주는 하비 와서먼은 영화과 출신이고, 사무실에는 장 뤽 고다르의 '네멋대로 해라'와 프랑소와 트뤼포의 '쥴과 짐' 포스터가 걸려 있다. 예술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현재 포르노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이다. 캔디는 하비에게 이전과는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한다. 섹스신은 포르노이지만, 그 외의 장면들에도 의미가 담긴, 그리고 여성의 욕망을 보여주는 영화를.

빈센트가 하이햇의 운영을 맡긴 애비는 뉴욕의 예술가, 페미니스트들과 교류하며 펑크 밴드의 공연, 작가의 사진전 등을 유치한다. 성매매 여성의 건강을 위해 진료센터를 운영하고, 귀향을 원하는 여성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도 한다. 1980년대가 되면서, 폴을 비롯한 동성애자에게는 에이즈가 심각한 문제가 된다. 배우인 연인의 병세가 악화하자 그의 부모에게 연락을 한다. 연인은 이미 부모를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지만, 부친은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들의 삶이 얼마나 빛났었는지 알려 하지 않는다. '더 듀스'는 무엇이 옳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질문을 피하지도 않는다. 개인의 세세한 상황을 보여주며, 어떤 선택과 고민을 하며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여준다.


'더 듀스'는 스트립쇼와 성매매가 일상이었던 1970년대 뉴욕 42번가를 되살려낸다. HBO 제공

'더 듀스'는 스트립쇼와 성매매가 일상이었던 1970년대 뉴욕 42번가를 되살려낸다. HBO 제공

시즌2부터는 지역의 재개발 과정을 중요하게 다룬다. 시는 포주와 매춘부, 향락업소, 게이바 등을 모두 몰아내고 고급 아파트와 상업지구로 재탄생시키려 한다. 시장은 측근을 시켜 경찰과 함께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기존 건물 주인과 주민들을 몰아내는 것도 포함된다. 대형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원주민들이 나가야 하니까. 명목상으로는 안전하고 깨끗한 거리를 만든다는 것이지만 이면에는 부동산업자와 정치가, 그들과 결탁한 소수의 이익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재개발 계획의 중심에 있었던 경찰 크리스는 모든 일이 끝난 후, 시장의 측근에게 말한다. "승리? 우린 아무것도 못 고쳤어요. 그저 몰아붙이기만 한 거죠. 우리가 한 거라곤 쓰레기 같은 일들을 한쪽으로 몰고 새롭게 쓰레기 짓을 해서 돈을 벌 공간을 만들어준 거죠. 딱 그 정도예요."

시즌3의 에필로그는 지금이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애비와도 헤어진 후 플로리다로 떠났던 빈센트가 70대 노인이 되어 친척의 결혼식 때문에 뉴욕에 온다. 그리고 아일린 머렐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아일린은 계속 영화를 만들었고,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에도 들어간 예술영화 한 편을 남겼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더 듀스'의 주인공은 아일린과 빈센트가 아니다. 듀스에 살았던, 그들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어둡고 저열해도,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던 모든 사람이 그 시대의 주인공이었고, 빛나는 인생이었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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