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이란'으로 묶지 말라"... 美-이란 대립 속 이라크의 외줄타기

입력
2021.07.17 05:30
지난해 솔레이마니·알무한디스 사망 후
PMF 내 '친이란 vs 친이라크' 분열 불거져
이란,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장악력 약화
이라크는 '美-이란의 대리전장' 전락 경계

지난달 28일 이라크 니네베 지역에서 전날 미군의 이라크-시리아 국경지대 공습으로 숨진 하시드알사비 민병대원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니네베=AFP 연합뉴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군은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일대의 친(親)이란 민병대 활동 지역 세 곳을 공습했다. 공격 대상은 카타이브 헤즈볼라(KH), 카타이브 사이드 알슈하다 등으로, 이른바 ‘강성’ 친이란 조직이었다는 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설명이다. 지난 2월 28일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 공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복이 이뤄졌다. 이달 5일 이라크 서부 안바르 지방에 위치한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 인근의 다른 미군 기지가 공격을 받았고, 같은 날 바그다드 그린존 내 미국대사관 목전에도 로켓포가 날아들었다. 다음 날엔 이라크 북부 아르빌 국제공항에 드론이 떨어졌다. 공항 부근 주둔 미군 시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그리고 7일 또다시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가 로켓포 공격을 당해 최소 2명이 부상했다.

‘알무한디스 복수여단’은 7일 발생한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름에서 암시되듯 이 무장단체는 지난해 1월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군의 드론에 암살당한 이라크 시아파 주류 무장조직 동맹체 인민동원군(PMF)의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부사령관의 죽음에 보복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다. 예히아 라술 이라크 국방부 대변인은 “주제넘게 침범해 들어오는 이라크 적들이 아르빌 공항과 아인 알아사드에 자행한 테러로 이 나라 안보, 주권, 그리고 우리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이례적인 영어 트윗을 남겼다. 미국을 위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이처럼 미국과 친이란 성향 이라크 무장조직들이 일련의 공격을 주고받자 일각에선 “이라크가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장으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서 잠시, 지난해 1월 3일 바그다드 공항 암살 사건을 떠올려 보자. 암살은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최고사령관과 알무한디스 PMF 부사령관을 겨냥했었다. PMF는 미디어에서 거의 예외없이 ‘친이란 민병대’라는 고착된 표현으로 기술되는 단체다. 그러나 출범과정과 내부의 복잡한 상황을 보면 그리 정확한 문구가 아니다. 섬세한 표현은 더더욱 아니다. 대리전 프레임만으로는 ‘친이란’이라는 수식어로 다 묶이지 않는 다양한 조직들의 정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8일 한 이라크 보안부대원이 전날 안바르주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를 공격한 로켓탄의 발사 지점으로 추정되는 트럭의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알바그다디=AFP 연합뉴스

PMF는 2014년 이라크의 시아파 최고 성직자인 아야톨라 알시스타니의 파트와(이슬람 학자가 이슬람 법에 대해 내놓는 의견)에서 비롯됐다. ‘국가와 시아 성지를 수호하기 위해 무장 전투를 벌인다’는 알시스타니의 파트와에 기반,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 이슬람국가(IS)에 맞서는 무장 동맹체로 출범했기 때문이다. 이때 알무한디스는 파편적으로 흩어져 활동하던 시아 민병대들을 PMF의 이름하에 규합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솔레이마니가 총지휘한 PMF의 대(對)IS 전투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시리아에서 IS를 대패시킨 일등공신이 쿠르드 민병대 주축의 시리아민주군(SDF)이라면, 이라크의 대IS 전투 일등공신은 PMF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PMF는 이란의 최고 성직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추종하는 조직과 이라크 최고 성직자 알시스타니를 추종하는 조직으로 나뉜다. 지난해 4월 런던정치경제대학(LSE) 블로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란의 하메네이는 종교적 권위가 정치행위를 통해 수립되는 이른바 ‘신정 정치’를 추구하는 반면, 이라크의 알시스타니는 정교 분리를 주창한다. PMF 내 대표적 두 진영 사이에서 ‘이념적’ 긴장 관계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구체적으로는 2017년 IS와의 전투 승리 후, 양측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PMF는 2015년부터 형식적이나마 이라크 총리에게 보고하는 체계를 갖춰 왔다. 이는 PMF가 이란을 대리하는 조직이 아니라 ‘이라크 소속 군사 조직’이며, 종파 무장단체라기보단 ‘정치 무장단체’임을 분명히 하겠다는 이라크 쪽 의지를 담은 것이다. PMF 내 친알시스타니 그룹 지도부를 ‘하시드 마리자이’라 칭하는 반면, 친하메네이 그룹 지도부를 ‘하시드 벨라야티’로 구분해 부르는 것도 두 정파의 경계를 잘 보여 준다. 그럼에도 약 40개로 추산되는 동맹체가 대IS 전장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건 솔레이마니라는 뛰어난 군 사령관, 그리고 통합적 지도력을 발휘했던 알무한디스라는 인물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중동 이슈 전문 언론 ‘알모니터’는 PMF 내 이른바 ‘친이란 정파’ 지도자로 분류되던 알무한디스에 대해 “이라크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균형을 맞춰 왔던 인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솔레이마니와 알무한디스가 살해된 후, PMF는 내분 계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는 작년 7월 보고서를 통해 솔레이마니와 알무한디스 암살이 PMF 조직들의 각자도생을 부추길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이달 초 발사 주체가 모호한 로켓포들이 공항과 대사관 인근으로 날아든 장면들도 그런 각자도생의 맥락에서 이해해 볼 여지가 있다. 미군 시설 겨냥 공격은 올해 들어서만 30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인근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과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인민동원군 부사령관이 탑승한 차량이 미군의 드론 공습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바그다드=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가운데 AP 통신은 9일 이스마일 가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이 지난달 이라크 6개 무장조직 사령관들과 바그다드에서 만나 “이란과 미국의 핵협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미군 시설 공격을 중단하고) 조용히 있으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솔레이마니와 알무한디스가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암살된 사건과 관련해 “제대로 된 보복이 이뤄지지 않는 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AP 통신은 이라크의 한 시아파 정치인을 인용해 “이란의 영향력이 닳고 있다”며 “이란이 예전 같지 않고, 민병대 사령관을 100% 통제하던 때와는 분명 다르다”고 전했다. 친이란 민병대를 둘러싼, 또 다른 변화무쌍한 현실을 방증하는 셈이다.

이라크는 PMF에 대한 이란의 과도한 장악과 지배를 경계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미묘한 외교전을 펼치는 중이다. 모든 인프라가 다 파괴된 전쟁의 폐허에서 국가 건설 작업을 위해 여전히 분투 중인 이라크는 자국 영토가 미국과 이란이라는 ‘양대 숙적’, 곧 외세의 대리전장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절대 경계하고 있다. 지난해 솔레이마니와 알무한디스가 미군에 의해 암살된 지 이틀 만에 이라크 의회가 외국 군대 철수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라크 군 장성 가이스 알함다위 소장은 2017년 12월 미국 P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IS 같은 극단주의자들로부터 국경 안전을 지키는 데엔 이란이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도 “이란이 이라크의 주권을 침해한다거나, 정치적 내정 간섭을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취임 1년을 조금 넘긴 무스타파 알카다미 이라크 총리도 지난 5월 14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친이란’ 민병대들 행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미국과 이란의 틈바구니에서 이라크의 ‘외줄 타기’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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