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확산과 유로 우승 맞바꾼 이탈리아

입력
2021.07.14 19:11

방역 당국, 노마스크 집단 응원·자축 방치
"대회 승자는 바이러스, 확진자 급증할 것"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에서 우승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이 12일 수도 로마에서 무개차를 타고 거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에서 우승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이 12일 수도 로마에서 무개차를 타고 거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독이 든 성배(聖杯)’였을까.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우승컵을 들어올린 이탈리아가 큰 대가를 치를 참이다. 방역을 잊은 응원과 자축 탓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추세가 가팔라지게 생겼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에 따르면, 유로 2020 대회 결승전이 치러진 12일 경기 직후 우승을 자축하러 이탈리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단체로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를 부르는 등 ‘거리 두기’ 방역 수칙을 어겼는데도 경찰은 이를 저지하거나 통제하지 않았다. 지난달 말 야외 마스크 의무 착용 규제가 해제되는 바람에 시민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한데 뒤엉키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12일 우승컵을 들고 로마로 돌아온 이탈리아 대표팀이 무개(無蓋) 버스를 타고 거리 퍼레이드를 할 때에도 더 큰 규모로 같은 장면이 재연됐다.

이런 일들은 예견됐다. 대표팀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로마와 밀라노, 피렌체, 볼로냐, 나폴리 등 이탈리아 대도시의 주요 광장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들이 안전 거리를 지킬 수 없는 환경에서 서로 침을 튀겨 가며 오로지 응원에만 열을 올렸는데도 방역 당국은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방역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델타 변이의 세계적인 대유행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다중 운집이 방역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만한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신종질병 팀장을 지낸 감염병 전문가 마리아 반 케르코브는 결승전 당일 자신의 트위터에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는 감염들을 지켜보자니 참담하다”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엄청난 규모의 군중이 소리치고 환호하고 노래하는 와중에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백신 미접종자를 공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시모 치코치 이탈리아 로마 바이오의과대 교수는 라 레푸블리카에 “불행히도 이번 유로 2020의 최종 승자는 바이러스”라고 했다.

실제 여건은 바이러스에 훨씬 유리하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이탈리아의 20~30대는 8% 수준에 불과하다. 델타 변이를 옮기는 게 주로 이들인데 이번 유로 대회가 자리를 깔아준 격이다. 재유행은 이미 시작됐다. 방역 당국의 통계를 보면 하향하던 신규 확진 곡선이 델타 변이 여파로 최근 다시 상향 추세로 돌아섰다. 1주일(4~11일)간 신규 확진자 수가 전주 대비 50% 넘게 증가했다.

이런 확산세에 시민들의 무분별한 운집과 당국의 안이한 대응이 동력을 제공했다는 게 방역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카를로 라 베키아 이탈리아 밀라노대 교수(전염병학)는 바이러스 재확산은 시간 문제라며 “유로 우승이 확산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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