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치닫는 인니, 한인 '코로나 중증·사망' 급증 3가지 이유

입력
2021.07.14 15:15
수정
2021.07.1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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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점보다 3배 급증한 델타 변이 확산에?
의료 열악, 진단 늦고, 자가 처방으로 버텨?
초기 스테로이드, 소염진통제 처방도 주의

지난달 23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종합병원에 병실이 없어 코로나19 환자가 밖에서 산소 공급을 받고 있다. CNN인도네시아 캡처

지난달 23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종합병원에 병실이 없어 코로나19 환자가 밖에서 산소 공급을 받고 있다. CNN인도네시아 캡처

인도네시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확산세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일 확진자는 연일 기록을 경신하며 14일 5만 명을 넘어섰다. 현지 역학전문가들은 "아직 최악이 아니다"라고 경고한다. 한인 사회도 위급에 처했다. 상대적으로 잘 이겨냈던 1차 확산 때와 달리 중증 환자와 사망자도 급증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지적하는 세 가지 이유를 짚어 본다.

이날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2차 확산이 시작된 6월부터 전날까지 대사관에 신고된 한인 코로나19 확진자는 133명, 사망자는 8명이다. 이전 15개월치 통계 수치(확진 124명, 사망 6명)를 한 달여 만에 뛰어넘은 것이다.

통계가 전부가 아니다. 최근 신고 인원 대부분은 병실 확보 및 귀국 방법을 묻는다. 사실상 중증이거나 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코로나19 임상정보 분석에 따르면 경증에서 중증으로 이어질 확률은 9.1%였다. 이를 감안하면 인도네시아 한인 감염자가 1,000명대라는 설이 과장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추이.

인도네시아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추이.

특히 한인들은 기저질환자가 주로 중증으로 악화하던 1차 확산 때와 달리 기저질환 여부와 상관없이 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는 듯한 분위기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1차적인 이유는 인도네시아 전역의 일일 감염자가 1차 확산 정점과 비교해 델타(인도) 변이 확산으로 3배 급증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생산 현장 등 현지인과 접촉이 상대적으로 많은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의 특성상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확진자가 많으면 중증으로 악화하는 숫자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믿고 의지할 병원 및 치료받을 병상 부족 등 열악한 이 땅의 의료 현실과 맞물린 세 가지 이유도 거론된다. ① 우선 진단 시기가 늦고 정확도가 떨어지는 검사 결과에 기댄다는 점이다. 초기 증상을 가벼운 감기 정도로 여기고 버티거나 항원(안티젠) 검사의 음성 결과만 믿고 제때 치료를 받지 않는 사례가 꽤 있다. 조금이라도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조기에 받아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중증으로 악화 시 치료가 어려운 만큼 초기 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카르타 거주 한인 의사는 "해열제를 복용해도 5일 이상 식은땀이나 발열이 지속된다면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폐렴으로 악화하는지 혈액 검사,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종합병원에 병실이 없어서 코로나19 환자들이 밖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안타라통신 캡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종합병원에 병실이 없어서 코로나19 환자들이 밖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안타라통신 캡처

② 자가 처방도 위험하다. 인터넷 정보나 주변 지인들에게 소개받은 약을 함부로 써선 안 된다. 예컨대 50대 주재원 A씨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후 집에서 열흘간 소염진통제를 복용했다. 증상이 사라지는 듯했으나 갑자기 숨이 차기 시작해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등 중증으로 악화한 상태였다. A씨는 경증 환자용 전세기에 타려고 했으나 상태가 더 나빠져 현지 병원에 입원했다.

미국 미생물학회는 이부프로펜 등 비(非)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가 코로나19 감염 초기 면역 활동에 영향을 줘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NSAID의 소염 작용이 몸 안의 항체가 항원(바이러스)과 싸우고 있다는 면역 반응의 증거인 염증을 가라앉혀 증상을 가리고, 감염 초기 환자들의 면역 체계 능력을 둔화시킨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코로나19 감염 초기 해열제로 NSAID 대신 타이레놀 등 파라세타몰 계열을 권장한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보건소에서 코로나19 초기 감염자에게 처방한 약. 병 바로 오른쪽이 스테로이드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보건소에서 코로나19 초기 감염자에게 처방한 약. 병 바로 오른쪽이 스테로이드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③ 감염 초기 스테로이드 처방도 주의해야 한다.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돼 격리시설에 들어간 현지인이 보내준 처방약에도 스테로이드가 포함돼 있었다. 스테로이드는 바이러스 질환에 많이 쓰이는 약이지만 코로나19 경증일 때는 사정이 다르다. NSAID와 마찬가지로 스테로이드는 중증으로 악화할 경우 쓰도록 남겨둬야 한다.

대한감염학회와 대한중환자의학회 등이 발표한 '코로나19 약물 치료에 관한 전문가 권고안' '환자 진료 지침' 등에 따르면 "중증이 아닌 코로나19 환자(non-severe)에 대해서는 스테로이드 투여를 권고하지 않는다" "스테로이드 사용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정립된 연구는 없으며, 장기간 노출 시 여러 부작용과 연관이 있어 일상적 사용은 권고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다만 "천식의 악화나 중증 패혈성 쇼크 등 다른 상태가 동반된 경우 스테로이드 투여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중증(severe) 또는 심각한(critical) 코로나19 환자에게 스테로이드 투여를 권고한다"고 부연했다.

의료 현장에서 지적하는 세 가지 이유는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가 처한 어려움을 방증한다. 한인회 등이 여러 방면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사실상 귀국이 막힌 상태에서 그 어려움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재외동포는 국내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척이고 친구이고 동료이고 지인이다. 부적절한 비난이 아닌 공감과 지원이 절실한 시기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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