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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DEA·FBI 정보원도 '아이티 대통령 암살' 가담… 주동자 정체는 오리무중

입력
2021.07.13 21: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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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개입 의혹 불가피... "美서 암살 음모 시작"
암살 주동자 사농, 아이티 정계엔 생소한 인물
지인 "대선 출마 준비했으나 암살범 아냐" 주장
아이티 내부선 '대통령 경호원 연루' 의혹 제기

아이티 경찰이 8일 언론에 공개한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용의자들과 이들에게서 압수한 소총과 칼. 포르토프랭스=AP 연합뉴스

아이티 경찰이 8일 언론에 공개한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용의자들과 이들에게서 압수한 소총과 칼. 포르토프랭스=AP 연합뉴스

조브넬 모이즈(53) 아이티 대통령 암살에 미국 사법당국 정보원들이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식 요원 신분이 아닌 만큼, 현재로선 미국 정부와는 무관한 ‘개인의 일탈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자가 2명이나 체포됐고, 용의자 일부가 미국 정부를 위해 일했던 사실이 드러난 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유력한 배후 인물도 미 플로리다주(州)에서 20년간 거주했던 인물이다. 미국의 개입 의혹이 어떤 식으로든 불거질 수밖에 없고, 미 정부가 직접 규명하거나 해명해야 할 ‘진실’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용의자의 지인들은 아이티 경찰 설명과는 다른 증언들을 내놓고 있어 미스터리는 점점 불어나고 있다.

DEA “정보원 가담” 확인... FBI는 함구

미 CNN방송과 로이터통신은 12일(현지시간) “모이즈 대통령 암살 용의자로 체포된 아이티계 미국인 2명 중 1명이 과거 미 마약단속국(DEA) 정보원으로 일했다”고 보도했다. DEA도 “해당 정보원이 모이즈 대통령 암살 직후, DEA 연락책에 접촉해 왔다”며 “아이티에 파견된 DEA 요원이 ‘현지 당국에 투항하라’고 촉구했고, 미 국무부와 함께 그 정보원과 또 다른 용의자 1명의 투항 및 체포에 관한 정보를 아이티 정부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암살범들은 7일 대통령 사저 침입 당시 DEA 요원으로 위장했는데, DEA는 “누구도 기관을 대신해 활동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용의자들 중엔 미 연방수사국(FBI)의 정보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FBI는 “기밀 정보를 얻기 위해 합법적 출처를 이용한다는 것 외엔, 정보원에 대해선 언급할 수 없다”며 신원 확인을 거부했다.

미국이 이 사건 조사 주체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더 있다. 아이티 경찰이 지목한 암살 주동자, 그의 의뢰로 26명의 콜롬비아 용병을 모집한 보안회사 ‘CTU’가 미 플로리다주에 근거지를 두고 있어서다. CNN은 “아이티 당국이 공개한 수사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플로리다 관련성’ 언급이 점점 늘어난다는 건 암살 음모가 부분적으론 미국에서 시작됐다는 걸 보여 준다”며 “미 법무부가 (최소한) 미국인 용의자들은 직접 기소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암살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한 명인 크리스티앙 에마뉘엘 사농.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활동한 아이티 국적 의사로, 아이티 정계에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유튜브 캡처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암살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한 명인 크리스티앙 에마뉘엘 사농.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활동한 아이티 국적 의사로, 아이티 정계에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유튜브 캡처


유력 주동자, 아이티 정계 진출 노려

전날 암살 배후자로 체포된 아이티 국적 크리스티앙 에마뉘엘 사농(63)의 정체를 둘러싼 의혹도 무성하다. 아이티 태생인 사농은 도미니카공화국의 ‘에우헤니오 마리아 데 오스토스 대학’과 미국 미주리주 중서부침례신학교를 졸업한 뒤, 플로리다주에서 20년 이상 살았다. 2013년 플로리다주에 낸 파산신청서에선 자신을 의사이자 목사, 아이티 자선단체 이사라고 소개했다. 다만 플로리다주 보건부는 사농이란 이름으로 의사 개업 허가를 받은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사농은 조국의 미래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부터 그와 알고 지냈다는 아이티 출신 파넬 뒤베르제 미 브로워드칼리지 경제학 교수는 “사농은 내가 구상한 아이티 경제 발전 30년 계획을 지지했고 자문을 구하곤 했다”며 “가끔씩 아이티 재정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전화로 질문했다”고 말했다. 사농은 지난해 말 처음으로 아이티 정계 진출 계획을 털어놨고, 5개월 뒤엔 “대선 출마도 고심 중”이라며 뒤베르제 교수에게 경제 고문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미셸 플로처 아이티 키스케야대 교수도 “출마를 준비 중이던 사농에게서 연락을 받고 지난달 두 차례 만났다”며 “그가 ‘신의 사명을 받았다’면서 모이즈 대통령이 곧 사임할 거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앞서 사농은 2011년 유튜브에 오른 동영상에서도 아이티 지도자들을 ‘부패한 약탈자’라고 비판한 바 있다.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피살 후 정국·사회 혼란이 가중하자 아이티를 탈출하려는 시민 수백 명이 10일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미국 대사관 앞에 몰려와 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포르토프랭스=AFP 연합뉴스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피살 후 정국·사회 혼란이 가중하자 아이티를 탈출하려는 시민 수백 명이 10일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미국 대사관 앞에 몰려와 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포르토프랭스=AFP 연합뉴스


엇갈리는 증언… 대통령 경호원 연루 의혹도

하지만 아이티 정계에 무명의 인물이나 마찬가지인 사농이 아무런 뒷배도 없이 대통령 암살을 계획했다는 건 미심쩍은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지인들도 그가 대통령직을 차지하려고 살인까지 저지를 사람은 아니라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뒤베르제 교수는 “아이티에서 정치는 잔인한 스포츠가 됐다”며 사농의 무죄를 주장하는 편지를 지인들에게 보냈다고 했다. 이웃주민 스티븐 브로스도 “사농은 아이티를 도울 방법을 항상 고민했지만, 암살범이라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이티 내부에선 대통령 경호원들의 암살 가담 의혹도 제기된다. 아이티 유명 영화제작자인 레이첼 마글루아르는 “범인들이 어떻게 경호원을 다치게 하지도 않고 대통령 사저에 침입할 수 있었는지가 의문의 핵심”이라며 “사농에 초점을 맞추는 건 논점을 흐리려는 물타기”라고 지적했다. 아이티 당국은 대통령 경호국장 디미트리 에라르가 1~5월 콜롬비아 보고타를 통해 에콰도르,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등을 수차례 방문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암살 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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