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라는 가스라이팅을 멈춰라!

입력
2021.07.14 00:00
26면

선거철 어김없이 등장하는 여가부 폐지론
최소 인력 예산으로 근근히 버틴 사실 간과
공적 괴롭힘 중단, 인력 예산 재배치해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뉴시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뉴시스


축구팀이 있다. 구단 방침상 투자를 제대로 못 하다 보니 선수도 적고 예산도 적다. 경기 때면 모든 선수가 뛰어야 하고,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면 교체 멤버도 충분치 않다. 그래서 선수들은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각자 포지션이 있지만, 언제 어디서 공백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구단은 해외 원정 경기도 가지만, 전용구장도 없는 우리 팀은 동네 조기축구회의 눈치를 봐 가며 훈련한다. 감독은 1년에 한 번씩 바뀌어 호흡이 맞을 만하면 떠난다.

그러나 평가는 우리 팀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오히려 시도 때도 없이 ‘해체’ 운운하는 소식이 들려온다. 심지어는 팀 해체가 한국 축구 발전에 더 기여하리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생각해 본다. 만약 우리 팀에 예산을 더 투입하고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고 푸른 잔디구장이 생긴다면, 그래서 맘껏 훈련할 수 있다면, 능력 있는 감독에게서 충분히 훈련받을 수 있다면, 우리 팀의 성적은 어떻게 달라질까.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야당 대표와 대선후보자들의 입을 통해서다. 오래 들어 별로 새롭지도 않는 말들이 ‘공약’이란 이름으로 여성들과 그들의 가족, 그들의 친구인 남성들의 마음에 화살이 되어 꽂힌다. 이런 저런 수사로 포장되어 있지만, 내용은 같다. 참여정부 시절 호주제 폐지 등 성평등정책의 진전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제기된 여가부 해체론의 재등장이다. 물론 그때에 비해 백래시는 더 세졌다.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거나 ‘성평등 실현에 무능하다’는 이유가 덧붙여졌지만 속뜻은 같다. 여가부를 없애고 위원회든 뭐든 대체하되 예산은 더 줄인다는 것이다.

대체 여가부 예산이 얼마나 되길래 그토록 시끄러운 것인가? 2020년 정부 예산을 살펴보면, 여가부 예산은 1조1,264억 원으로 정부 부서 예산 중 가장 적다. 업무연계성이 높은 보건복지부 82조5,269억 원, 고용노동부 30조5,139억 원, 문체부 6조4,803억 원과 비교해 봐도 적고 통일부(1조4,242억 원)보다도 적다. 이 적은 돈으로 여성·가족·청소년의 업무를 모두 수행한다.

여가부의 인원은 2019년 12월 31일 기준 267명이다. 보건복지부 3,437명, 고용노동부 7,354명, 환경부 2,373명, 문체부 2,883명, 통일부 605명이다. 하다못해 문화재청(1,005명)이나 기상청(1,329명)보다도 적으며 방송통신위원회(277명)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동안 여가부는 위원회 규모의 인력으로 ‘부(部)’의 업무를 수행해 왔다.

여가부를 없애고 업무를 위원회와 다른 부처로 이관하면 효율성이 높아질까? 성인지적(性認知的) 정책역량이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공적 영역에서 ‘성인지적 감수성’이 실질적으로 수용된 것은 불과 몇 해 전 ‘안희정 지사사건’의 사법부 판결에서였다. 지금 한국의 공직사회는 ‘성인지적 정책’이 무엇인지 열심히 학습하고 훈련해가야 하는 시점이다. 여가부 없이 이것이 가능할까?

여가부 폐지론을 두고 한 여성학자는 ‘가스라이팅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넌 일을 잘 못해, 그렇지?"라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세뇌한다면 그는 결국 무능한 사람이 될 것이다. ‘약자 때리기’, 인력과 예산이 터무니없이 작은 부서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적 괴롭힘(public harrassment)’이 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중요한 부서의 인력과 예산을 제대로 갖추는 일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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