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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대통령 암살 배후 드러나나... 美 거주 아이티 의사 체포

입력
2021.07.12 21:00
수정
2021.07.12 22:5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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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용병들과 아이티 입국
거주지서?美 마약국 모자 나와
아이티 경찰 "대통령 되려 했다"
용병 임무 등 전말은 아직 미궁

지난 10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미국 대사관 앞에 망명을 신청하러 온 시민들이 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최근 무장괴한들에 의해 암살되면서 아이티의 정국 혼란도 점점 커지고 있다. 포르토프랭스=AFP 연합뉴스

지난 10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미국 대사관 앞에 망명을 신청하러 온 시민들이 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최근 무장괴한들에 의해 암살되면서 아이티의 정국 혼란도 점점 커지고 있다. 포르토프랭스=AFP 연합뉴스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조브넬 모이즈(53) 아이티 대통령 암살 사건의 배후로 추정되는 인물이 현지 경찰에 붙잡혔다. 미국 플로리다주(州)에서 활동하는 아이티 국적 60대 의사로, 아직 단정할 순 없으나 막후에서 이 사건을 기획한 세력의 실체가 드러난 건 처음이다. 사건 현장 인근에서 체포된 미국인 용의자 2명에 이어, 어떤 식으로든 미국과 연계돼 있는 세 번째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해당 의사는 아이티 대통령이 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는 게 현지 수사당국의 발표다. ‘정치적 목적’의 암살이었다는 얘기다. 아이티 정국의 불안정성, 권력투쟁이 초유의 ‘대통령 사저 침입 암살’로 이어졌다는 사건 초기의 분석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레옹 샤를 아이티 경찰청장은 이날 아이티 국적의 크리스티앙 에마뉘엘 사농(63)을 모이즈 대통령 암살 사건 용의자로 추가 체포했다고 밝혔다. 샤를 청장은 사농에 대해 “대통령 암살의 핵심 용의자 중 한 명”이라며 “(대통령을 암살한) 무장 괴한 일당의 (도주) 진로가 막혔을 때, 그들이 가장 먼저 연락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농은 지난달 전용기를 타고 미국에서 아이티로 건너간 뒤, 이번 범행을 진두지휘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샤를 청장은 “사농은 ‘정치적 목적’을 갖고 일부 콜롬비아 용병들과 함께 아이티에 들어왔다”며 “미국에 본사를 둔 베네수엘라 민간 보안업체 ‘CTU’를 통해 용병들을 고용했다”고 밝혔다. 사농의 아이티 주거지에서 경찰은 미 마약단속국(DEA) 로고가 적힌 모자와 탄약, 차량 2대, 도미니카공화국 자동차 번호판 2개 등도 발견했다. 범행 당시 용의자들은 DEA 요원 행세를 하며 모이즈 대통령 암살을 ‘미국의 소행’으로 비치도록 위장한 바 있다.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암살 사건 배후로 지목된 크리스티앙 에마뉘엘 사농이 2011년 연설 모습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의 한 장면. 사농은 주로 미국 플로리다에서 활동하는 아이티 국적 의사로, 현지 경찰은 11일 그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유튜브 캡처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암살 사건 배후로 지목된 크리스티앙 에마뉘엘 사농이 2011년 연설 모습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의 한 장면. 사농은 주로 미국 플로리다에서 활동하는 아이티 국적 의사로, 현지 경찰은 11일 그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유튜브 캡처

그러나 이 정도로 사건 전말이 밝혀진 건 아니다. 당초 용병들의 초기 임무는 ‘사농 개인 경호’였는데, 이후 ‘모이즈 대통령 체포’로 바뀌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실제 아이티계 미국인 용의자 2명은 경찰 조사에서 “원래 주어진 일은 모이즈 살해가 아니라, 2019년 발부된 체포영장을 집행해 그를 (사저에서) 대통령궁으로 데려가는 것이었고, 우리 임무는 통역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들의 임무는 또다시 대통령 사살로 변경됐고, 이는 사농이 아이티 대통령직을 꿰차려는 의도였다는 게 현재까지 재구성된 사건 줄거리다. 2011년 사농이 자신을 ‘잠재적 지도자’로 내세우는 연설을 하며 아이티 지도자들을 ‘부패한 약탈자’라고 비난하는 내용의 유튜브 동영상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사농이 단숨에 대통령 권좌에 오를 수 있다고 여기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점이다. WP는 “사농은 플로리다에서 12개 이상 사업체를 운영하며 오래 생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고 보긴 힘든 대목이다.

게다가 대통령 사저를 뚫고 들어간 범행의 과감성에 비춰, ‘잦은 임무 변경’도 석연치 않다. NYT는 “(26명에 달하는) 콜롬비아 용병들이 대통령 암살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여전히 모호하다”며 “(이 사건의) 미스터리가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티 경찰은 사농 외에, 또 다른 배후 조종자 2명의 연루 단서도 포착한 상태다.

미국 정부는 아이티에 이날 국토안보부(NSA)와 연방수사국(FBI)으로 구성된 합동조사팀을 보내는 등 지원에 나섰다. 다만 미군 파견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미 국방부는 현재로선 군 부대 지원 필요성이 크지 않다면서 “계속 검토 중”이라고만 밝혔다.

아이티의 혼란은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대통령 공석 상태에서 임시 총리와 총리 지명자, 상원의장까지 뒤섞인 채 “내가 대통령 권한 대행”이라고 주장하는 등 권력 다툼은 날로 가열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범죄 조직마저 활개를 치며 치안 상태도 극도로 악화하는 중이다. 갱단 ‘G9’ 두목인 지미 셰리지에는 전날 영상 메시지에서 이번 사태를 “아이티 국민에 대한 국가적·국제적 음모”라고 주장한 뒤, “아이티 국민을 위해 무기를 사용하겠다. 전쟁 준비도 돼 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경찰 출신의 셰리지에와 그 일당이 모이즈 대통령의 우파 정당과 결탁했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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