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익사 하루 88명...中 ‘수영 의무화’에 부모들 냉가슴

입력
2021.07.25 13:30
수정
2021.07.25 13:32
14면
구독

하이난 "8월까지 초등 6학년 수영해야"
아동·청소년 익사 심각, 특단의 강제조치?
"왜 아이에게 책임 떠넘기나" 항변

중국 장쑤성 롄윈강시의 한 수영장에서 지난 4일 플라이보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롄윈강=AFP 연합뉴스

중국 장쑤성 롄윈강시의 한 수영장에서 지난 4일 플라이보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롄윈강=AFP 연합뉴스


“올해 졸업을 앞둔 초등학생은 8월 말까지 수영을 배워야 한다.”


중국 최남단 하이난성 교육청이 여름방학을 앞둔 지난달 15일 공지한 내용이다. 물놀이 사고를 줄이고 체력도 기를 수 있으니 언뜻 ‘일석이조’의 방안으로 보인다. 휴대폰 게임에 빠져 청소년 근시 세계 1위 오명을 뒤집어 쓴 중국 상황에 비춰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학부모들은 “수영 의무화로 학습부담이 가중될 뿐”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정부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것이다.

교육청은 이외에 “초등 4학년~중학교 3학년은 11월까지 수영을 익혀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관내 만 9~14세 청소년은 모두 수영 실력을 갖추는 셈이다. 13개 지역에는 수영장을 새로 지을 예정이다. 이번 조치는 성과에 따라 중국 전역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중국이 수많은 종목 가운데 유독 수영에 팔을 걷어붙인 건 ‘익사 사고’ 때문이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 공안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물에 빠져 숨지는 중국인은 5만7,000명이 넘는다. 이중 56%가량은 아동과 청소년이다. 하루 평균 88명에 달한다. 중국에서 매일 150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는데 교통사고, 추락, 중독, 화상 등 다른 원인에 비해 익사 비중이 월등히 높다. 특히 농촌 아동 익사자가 도시에 비해 5배나 많다. 주로 인근 하천이나 호수, 웅덩이, 연못 등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의 한 초등학교 개학식에서 운동장에 서 있던 어린이가 하품을 하고 있다. 선양=AFP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의 한 초등학교 개학식에서 운동장에 서 있던 어린이가 하품을 하고 있다. 선양=AFP 연합뉴스


무엇보다 하이난은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다. 자연히 익사 사고 위험이 도처에 깔려 있다. 그런데 숨진 학생의 90% 이상은 수영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영교육을 통해 인명피해를 막아야 할 필요성이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절박한 셈이다. 2017년부터 교과목에 수영을 추가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이번에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의 방침이 이처럼 명분을 갖춘 터라 어느 부모도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하는 처지다. 다만 “왜 모든 학생이 강제로 수영을 배워야 하는가”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익사 사고의 원인을 안전시설 미비나 공동체의 부주의가 아닌 수영을 못하는 아동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항변이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수영에 국한하지 말고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편다. 중국은 2014년 줄넘기를 콕 집어 체력검사 필수항목에 넣으면서 도시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줄넘기 학원이 생겨나 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가중된 전례가 있다. 점수에 반영되니 어쩔 수 없이 자녀를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것이다. 방학 보충수업을 억제하려는 교육당국의 방침에도 어긋난다. 한 부모는 “아이가 비염이 있어 의사가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