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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0년 전쯤 얘기다. 노동분야 취재 잘하던 후배가 불현듯 복지팀장을 맡았다. 단독, 기획을 줄줄이 했다 해도 이제 막 신참티를 벗은 연차에 생로병사 전 분야를 도맡을 팀, 그것도 팀장을 맡기다니. 회사 신뢰가 지나친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넉 달 만에 다시 노동분야를 맡았다. 후배가 말했다. “복지 취재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한다고 했는데, 몇 달째 물만 먹었으니…”
반전은 다음부터다. 애 낳고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후배에게 회사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다시 복지부 출입을 시켰는데, 용케 ‘물 안 먹고’ 잘 버텼다. 둘째 낳고 다시 복지 취재를 맡았을 때는 종종 단독도 써냈다. 대놓고 물어본 적 없지만 이유는 자명해 보였다. 애 둘 낳고 키우면서 온갖 보육정책을 체험했고, 의료수가와 요양시설이 궁금해질 정도로 부모가 연로해졌으니까. 예전에는 복지정책이 발표되면 전문가 해설 듣고 이해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 배경과 파장을 저절로 그릴 수 있게 된 거다.
3년 전 터키 리라화 폭락 직후 ‘버버리 코트 직구’ 기사를, 같은 해 은마아파트 폭염 정전 기사를 보수지?경제지에서 먼저 봤을 때 그 후배를 떠올렸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직접 경험했다고 다 아는 건 아니다”라고 했지만 “직면한 일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성을 무시할 것만도 아니라는 소리다.
자식은 없고, 조카도 ‘복지부 관할’인 어린이집에 다니는 나는 원격수업과 입시정책 기사를 쓸 때면 온갖 인맥을 긁어 여론을 듣는다. 연락한 지 10년 넘은 고등학교 동창이든, 수년 전 연락했던 취재원이든 학부모라면 얼굴에 철판 깔고 전화 걸어 의견 물어보고, 주변 학부모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한계는 나만 갖는 게 아니다. 비혼과 만혼이 늘면서 언론사 교육팀장 중 중고생 학부모는 손에 꼽을 정도가 됐다. 코로나19 사태 직전, 교육부 장관 신년 간담회 뒤풀이에서 나는 말했다. “이제 우리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교육기사는 대학 비정규직 교원 문제입니다.”
사회는 변하고 있는데 나라 정책은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다. 정책을 좌우하는 이들은 대개 산업화 시대에 입신양명했고, 이걸 집행하는 관료들은 남은 인생을 산업화 시절처럼 설계해도 먹고 사는 데에 위협이 없다. 이러니 의도만 선했던, 앞뒤가 안 맞는 정책들이 차고 넘친다.
대학 본고사와 사법고시를 치른 대통령은 고교학점제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우고 집권 후 ‘정시 확대’를 지시해 자가당착에 빠졌다. 이 정부에서 학교서열화를 조장한다고 학업성취도평가를 3% 표집으로 바꾼 후 학습결손이 심각해졌다는 통계자료도 쏟아진다. 교육부조차 이 시기 사교육비가 매년 최대치를 경신 중이라는 자료를 발표한다. 국회는 민의 듣겠다며 국가교육위원회 위원 21명 중 2명을 교원단체 추천 몫으로 했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전교조 해직교사 특채 이유를 “큰 시대정신의 흐름”이라고 댔는데, 정작 교원노조 조직률은 10년 새 27%에서 3%로 쪼그라들었다. ‘교권 보호는 못하고 관념적 구호만 외쳤다’는 게 이유다.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삼겹살 판을 갈 때”라고 한 게 2004년이다. 정책 만드는 불판은 고기 올릴 때마다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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