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백신 목표 달성했다"지만... 불법이민자는 '방역 구멍'

입력
2021.07.1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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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들통날까 백신 접종 꺼리는 불법이민자들
서비스업 종사·위생환경 열악으로 확산 쉬워
전문가들 "불법체류자 접종 보장해야"

한 중년 난민 여성이 지난해 3월 텐트가 빼곡히 들어선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난민 캠프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레스보스=AP 연합뉴스

한 중년 난민 여성이 지난해 3월 텐트가 빼곡히 들어선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난민 캠프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레스보스=AP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둔 유럽연합(EU)에 걸림돌이 생겼다. 바로 불법이민자다. 전체 인구의 1%가량에 불과하지만, 백신을 맞다 불법체류 신분이 들통날까 접종을 꺼리고 있다. 특히 이들은 코로나19 전파가 쉬운 환경에서 생활해 재확산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이민자들의 접종을 독려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현지시간) EU 내 불법이민자들의 낮은 백신 접종률로 인해 이들이 델타(인도) 변이 확산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접종 과정에서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나면 추방당할 것을 우려해 백신을 맞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 역시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불법체류자들의 접종률이 떨어지는 경향이 확인된다”고 서술했다. 다만 미등록 이민자의 특성상 각국 정부에 이들의 인적사항이 등록돼 있지 않아 정확한 통계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EU에는 약 480만 명의 불법이민자가 머물고 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1% 정도다.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한 EU도 지난해 말 접종 시작 당시 불법체류자의 접종을 보장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대부분의 회원국에선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반이민 정책을 펴고 있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합법적인 거주 증명이 없는 사람의 경우 백신 접종 신청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독일은 불법이민자도 접종 대상에 포함시켰지만, 접종 과정에서 불법체류 신분이 확인된 경우 법무부에 통보하도록 해 사실상 백신 접종을 막았다.

“이달 내로 EU 성인 70%의 백신 접종이 완료될 것”이라고 11일 목표 달성을 예고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불법이민자 접종률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면 방역 구멍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ECDC 보고서는 “불법체류자들은 위생환경이 열악한 난민 캠프에 거주하거나, 소득수준이 낮아 인구밀도가 높은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다”며 “게다가 이들 대부분이 대면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어 전파 위험은 더욱 높다”고 지적했다.

보건 전문가들은 EU가 추방 유예 정책 등 불법이민자의 백신 접종을 보장하는 지침을 회원국에 내려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민자 의료 전문가인 샐리 하그리브스 영국 런던대 세인트조지 의대 교수는 “고소득 국가에서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백신 접종 계획 밖에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불법체류자의 접종을 보장해야 한다”고 WP에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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