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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관광 후진국' 소리 듣는 한국, 뛰어난 의술 세계에 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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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몽골 여성이 6세 된 어린 아들을 안고 급히 한국을 찾았다. 헤노흐 쉰라인 자반증이라는 전신 혈관염을 앓던 아이는 몽골에서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이 병은 국내에선 치료가 어려운 병이 아니지만 의술이 우리보다 떨어지는 몽골에서는 쉽게 고치기 힘든 질환이다. 이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던 몽골 여성은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이 만든 의료관광 서비스를 이용해 국내에 들어와 모 병원에서 무사히 아들의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몽골 아이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정주(40) 공동대표가 설립한 스타트업 하이메디 덕분이었다. 하이메디는 해외를 겨냥해 의료관광이라는 독특한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이다. 의료 기술이 부족하거나 의료 비용이 비싸고 대기 시간이 오래 걸려 빠른 치료가 필요한 외국인들이 의료관광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들은 단순 치료만 받는 것이 아니라 치료 기간 동안 머물며 숙박, 음식, 쇼핑 등 다양한 관광활동을 하며 돈을 쓰기 때문에 의료관광이라 부른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관광은 약 90조 원에 이르는 거대 시장으로 매년 평균 35%씩 성장하고 있다. 연간 약 2,300만 명이 의료관광을 떠난다. 주로 미국, 독일, 태국, 싱가포르 등이 의료관광 선진국으로 꼽힌다. 10년 역사를 가진 우리는 의료관광 후진국이지만 연간 약 50만 명의 외국인이 들어와 2조 원가량의 돈을 쓴다. 우리는 의술은 발전했지만 이를 관광 상품화하는 데 뒤처져 의료관광 후진국 소리를 듣는다.
이 대표는 국내 최초로 외국인을 겨냥한 의료관광 서비스 플랫폼 ‘하이메디닷컴’을 개발해 인터넷으로 제공하고 있다. “국내 의료관광 업체는 약 1,000개 정도 됩니다. 대부분 영세 사업자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이용에 불편이 많아 성장에 한계가 있죠. 많은 외국인들이 간편하게 의료관광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선진화한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이용자가 모바일 앱으로 제공되는 하이메디닷컴에 접속해 질환을 선택하고, 병원과 진료 희망 날짜를 고르면 된다. 이때 환자가 병원을 고를 수 있도록 의사별 수술 횟수, 치료율, 진료비 등 병원에서 받은 데이터를 제공한다. 치료 기간에 따른 숙박 및 다양한 관광 활동까지 여기서 예약할 수 있다.
모든 정보는 외국인을 겨냥해 영어 러시아어 몽골어 아랍어 4개 국어로 제공된다. 한글은 아예 없다.
하이메디는 환자가 제공한 의사 소견서, 진단서,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자료를 병원에 제출하고 진료 예약을 대신 진행한다. “각종 의료 기록은 이용자가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스캔해서 제공해요. 내년에는 환자가 진료 기록을 웹 사이트에 바로 올릴 수 있도록 개발 중이에요.”
이때 자료 제공에 어려움을 겪는 이용자들을 위해 하이메디와 제휴한 현지 파트너 업체들이 도움을 준다. “중동,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은 의료 기록이 전산화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의사들이 진료 기록을 손으로 써요. 그래서 현지 파트너들이 진료 기록을 대신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전송합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제대로 진단이 이뤄지지 않아 국내 입국 후 병명이 바뀌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의료관광으로 입국하는 외국인 가운데 30%가량은 병명이 바뀝니다.”
이렇게 진료를 신청하면 1주일 이내에 예약이 완료된다. 그래서 빠른 치료를 받기 원하는 중증 외국인 환자들이 하이메디 서비스를 선호한다.
진료 예약이 끝난 뒤 환자가 입국하면 귀국 때까지 모든 것을 하이메디가 관리한다. 공항에 자동차를 가져가 숙소까지 데려가는 것을 비롯해 국내에 머무는 동안 교통, 통역, 숙식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러시아어, 몽골어, 아랍어 등의 전문 의료 통역사들이 진료 과정에 동행해 환자의 진료를 돕죠.”
외국인 환자들은 입국하면 무조건 2주간 격리된다. 정부에서는 중증 환자에게만 병원에서 격리 조치를 거치는 메디컬 패스트 트랙을 적용한다.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이용 가능한 진료는 49개 병원의 89개 과목이다.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22개 상급 병원 중 16개 병원을 포함해 49개 수도권 병원이 하이메디닷컴에 들어와 있어요.”
국내에서는 의료법상 환자 유치 행위가 불법이지만 외국인에게는 2010년부터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 환자유치 지원법에 따라 필요 정보를 제공하고 유치할 수 있다. 이 법에 따라 상급 종합병원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한 의료관광 등록업체에게 15~30% 수수료를 줄 수 있다. 대신 하이메디 같은 의료관광 업체는 보건복지부의 외국인 환자 유치등록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이메디는 병원 등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매출을 올린다. 외국인 환자들에게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이들이 국내에 머무는 동안 병원 진료에 따른 수수료와 숙박, 교통, 쇼핑, 관광 등 여러 서비스를 이용하면 관련 업체들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매출을 올리죠. 앞으로는 숙박, 쇼핑, 관광 비용까지 온라인 결제할 수 있는 기능을 개발해 추가할 예정입니다.”
외국인 환자 유치는 병원들에게 큰 보탬이 된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 환자의 경우 병원들이 자율적으로 의료비 책정을 한다. 따라서 내국인들보다 더 높은 진료비를 책정한다. 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진료비가 내국인보다 40~50% 비싸다. 성형외과의 경우 2, 3배 비싼 경우도 있다. “병원들은 아예 의료관광 업체들에게 주는 수수료까지 포함해서 외국인 진료비를 책정하죠.”
이 대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관심을 가진 분야는 외국 환자들을 겨냥한 원격진료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 매출이 80% 감소했어요. 그런데 마침 러시아의 영세한 의료관광 업체들이 코로나19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면서 시장 진입 기회가 생겼어요. 지난해 여름부터 러시아권 국가들을 겨냥해 원격진료를 확대했습니다.”
정부에서도 의료관광 차원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외국인에 한해 원격진료를 임시 허용했다. 대신 국내 의사가 외국인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외국인 의사를 거치는 간접 진료만 가능하다. 즉 국내 의사가 원격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외국인 의사와 의견을 주고받는 식이다. “여기에 맞춰 올해 초부터 원격진료 서비스를 개발해 6월부터 몽골 지역 등에서 원격진료 환자 유치를 위한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100건씩 원격진료 문의가 들어와요.”
이 대표가 제공하는 원격진료 서비스는 국내 상급 병원의 전문의와 해외 의료진을 연결해 주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하이메디는 이때 연결되는 해외 의사에게 수수료를 지급한다. 그래서 우리보다 소득이 낮은 러시아, 몽골 지역 의사들은 원격진료에 적극적이다. “몽골 지역은 의사 월급이 50만~60만 원 수준이에요. 현지 의사들은 원격진료로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또 외국 환자들에게는 원격진료를 통해 확신을 심어 주죠.”
정부에서는 의료관광을 통해 병원들의 외국인 환자 비중을 5%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현실은 아직 0.1% 수준에 머무른다. “의료관광으로 들어온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쓰는 1인당 진료비가 성형외과는 평균 250만 원, 중증 환자는 평균 3,300만 원이에요. 의료관광은 앉아서 의술을 수출하는 겁니다. 단순한 의료 행위뿐 아니라 입국한 사람들이 여러 활동을 하며 돈을 쓰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몫이 크죠.”
외국인들이 의료관광으로 한국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한국은 K팝, K드라마의 영향으로 해외에서 성형 수술로 대표되는 미용 의료 국가로 알려졌다. “의료관광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70%가 미용 의료 때문이에요. 특히 중동 지역에서 성형 수술 때문에 한국을 많이 찾아요.”
그런데 성형 수술보다 더 클 수 있는 시장은 중증 질환이다. “한국의 중증 치료 의술은 선진국과 비슷하면서 비용은 적게 들어요. 정부는 코로나19 이후를 겨냥해 이 시장을 키울 필요가 있어요. 특히 온라인 플랫폼으로 해외 중증 환자들에게 우리 의술을 제대로 알리면 의료관광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하이메디는 2019년 1,100명의 외국인 환자들을 유치했다.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이용자가 크게 줄었으나 올해 들어 다시 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몽골, 카자흐스탄, 러시아 4개국의 중증 환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 국가들에 집중하고 있어요. 이들을 겨냥해 비대면 원격진료에 투자를 많이 할 계획입니다.”
이 대표는 창업 전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지역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IMF 외환위기 사태 때 어려워지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극단적 경험을 했다. “부모의 빚을 떠안으면서 20대 때 신용불량자가 됐어요. 제 이름으로 휴대폰 개통도 못 했죠.”
대학에서 영상제작을 전공한 그는 등록금이 없어 주유소에서 16시간씩 일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다니고 휴학한 뒤 학비를 벌어야 했다.
생계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파병도 자원했다. “파병 가면 연 2,000만 원을 줬어요. 돈 벌려고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 파병 가서 위험한 순간도 여러 번 겪었어요.”
제대 후 그는 영상 프로덕션을 운영했다. 그때 EBS 드라마 ‘학교이야기’와 한국의 의료기술을 해외에 알리는 홍보 영상을 만들어 납품했다. 그러면서 의료관광에 대해 알게 됐다. “마침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던 대학 선배가 의료관광이 전망 좋은 사업이라는 얘기를 해줬죠. 그때 창업을 결심했어요.”
경기 수원에 분양받은 새 집을 팔고 월세로 옮겼다. 수도에서 녹물이 나오고 벽지에 곰팡이가 핀 40년 된 아파트였다. 그것도 부족해 장모에게 1,400만 원을 빌려 승합차를 한 대 샀다. 그렇게 이 대표는 영혼까지 탈탈 털어 모은 돈으로 2011년 하이메디를 창업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여서 아내가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어요. 아이는 천식까지 생겼죠.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해요.”
그는 3년 동안 의료관광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태우기 위해 승합차를 직접 운전하며 발로 뛰었다. 그 바람에 의료관광의 문제점과 필요한 것들을 밑바닥부터 익히며 전문가가 됐다. 이렇게 1인 스타트업으로 혼자 일하며 연 매출을 25억 원씩 올렸다.
특히 가난은 그에게 인생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힘들게 살며 남 탓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는 감정 기복이 별로 없어요. 크게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화내지 않아요.”
덕분에 이 대표는 스스로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외부 인재를 영입해 해결한다. 2017년 요기요 출신의 서돈교 공동대표와 2019년 카카오모빌리티에서 카카오T 서비스를 기획한 유광진 개인정보책임자(CPO)를 영입한 것도 같은 이유다. “서 대표가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불씨를 지폈어요. 서 대표를 8개월 동안 설득해 영입했죠.”
이 대표는 2018년 20억 원을 투자받아 카카오모빌리티에서 플랫폼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총 80억 원을 투자받았다.
이 대표의 꿈은 직원들이 만족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회사가 성공하려면 창업자보다 큰 사람을 데려와야 해요. 저보다 뛰어난 사람을 모시려고 계속 노력할 겁니다. 하이메디가 전 세계 1등 의료관광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돼서 직원들이 서울 강남에 집 한 채씩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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