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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축구에 광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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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짬내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영화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가난하면 꿈도 가난해야 돼?”
영화 ‘맨발의 꿈’(2010) 속 축구코치 김광원(박희순)의 대사
유럽과 남미 지역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지역 국가대항전인 유로2020과 코파 아메리카 대회 때문이죠.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던 두 대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에 따라 연기됐다가 올해 나란히 치러지고 있습니다. 우연히도 두 대회 모두 결승전이 11일(일) 열립니다.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유로2020),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코파 아메리카)가 우승컵을 두고 최후 대결을 펼칩니다.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은 한국시간으로 오늘 새벽 열려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을 1대0으로 누르고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의 축구 열기도 만만치 않지만 유럽이나 남미 국가에 비할 수 없습니다. 축구에 열광하는 이들 나라 국민들 모습을 보면 가끔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이 축구를 목숨처럼 여기도록 하는지,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잘 모르니까요.
유럽이나 남미 국가 국민들의 축구 사랑이 어디서 비롯됐고,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드라마를 넷플릭스와 왓챠, 웨이브 등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에는 축구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은데요, ‘펠레’(2021)가 대표적입니다. 브라질 축구 황제 펠레의 삶을 돌아본 영화입니다. 18세 때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린 펠레가 월드컵에서 3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리기까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펠레의 화려한 발 재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지만 전개는 좀 밋밋합니다. 펠레가 자신이 지닌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군사독재 정권에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는 등 개인의 안락한 삶에만 관심을 뒀기 때문입니다.
펠레에 필적할 만한 실력을 선보였던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1960~2020)의 삶은 극적입니다.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여러 편 있는데, ‘축구의 신: 마라도나’(2008)와 ‘디에고’(2019)가 눈길을 끕니다. 전 세계 그라운드를 호령했던 불세출의 스타임에도 마약 복용과 각종 기행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인물이기에 삶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디에고’를 자세히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마라도나라는 문제적 개인의 삶을 지렛대 삼아 나폴리라는 도시와 이탈리아라는 국가, 축구라는 운동의 속성을 들추는 영화입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이 없던 곳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막노동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의 무게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마라도나는 11세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5세 때부터 축구로 가족의 생계를 오롯이 책임졌습니다.
마라도나는 22세 때인 1982년 세계 최고 명문구단 중 하나인 FC바르셀로나에 입단합니다. 부자 구단에서 특급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축구놀이’를 할 수 있었을 텐데 2년 후 SSC 나폴리로 이적합니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나폴리에서 가장 비싼 선수를 영입”했던 거죠. 마라도나가 AC밀란이나 유벤투스, 인터밀란 등 이탈리아 북부 명문 구단 대신 SSC 나폴리를 택한 명확한 배경이 영화에선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른 다큐멘터리 ‘축구의 신: 마라도나’에서 마라도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항상 유대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런 그의 감성이 나폴리로 향한 이유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SSC 나폴리는 약속과 달리 페라리 대신 피아트를, 단독주택 대신 아파트를 마라도나에게 제공합니다. 1904년 창단 이후 리그 우승은 단 한차례도 없고 컵대회 우승만 2회 차지한 구단이었으니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SSC 나폴리가 마라도나에게 줄 수 있는 건 광기에 가까운 팬들의 성원뿐이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입단 얼마 뒤 원정경기를 위해 토리노를 갔는데, 유벤투스 팬들의 이런 응원가를 듣습니다. “나폴리 쓰레기/ 나폴리 콜레라/ 이탈리아 전체의 수치/ 나폴리인들아 열심히 일해라/ 마라도나를 위해 몸을 팔아야 하니…” 이탈리아는 북부와 남부 사이 지역갈등이 심한데, 빈부격차가 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저 응원가는 뿌리 깊은 지역 차별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승부는 어땠을까요. SSC 나폴리는 마라도나의 활약을 바탕으로 강호 유벤투스에게 승리를 거둡니다. 뜻밖의 승전에 SSC 나폴리 팬 5명은 기절하고, 2명은 심장마비를 일으킵니다. 마라도나가 나폴리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폴리에서 마라도나는 신과 같은 인물로 부상합니다. 사람들은 침대 머리맡에 예수 사진과 더불어 마라도나 사진을 두기 시작합니다. 마라도나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 와 사인을 받으러 줄을 섭니다. 유명인사가 되다 보니 함께 하고 싶어하는 여자가 늘어납니다. 지역유지 행세를 하는 범죄조직 카모라의 두목 줄리아노 집안은 마라도나와 친교를 맺으려 합니다. 술 좋아하고, 춤추기 좋아하는 마라도나는 금세 밤의 향락으로 빠져듭니다.
술과 마약에 조금씩 찌들어가지만 축구 인생은 만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국의 우승을 이끌어냅니다. 포클랜드전쟁으로 앙숙이 된 잉글랜드를 8강전에서 ‘신의 손’ 논란을 일으키며 눌러 국민에게 통쾌함을 선사했습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로 돌아온 후 또 한차례 역사를 만듭니다. SSC 나폴리를 1986~1987 시즌 1위에 올려놓습니다. 구단 최초 리그 우승이었습니다. 나폴리는 광란의 도시가 됐습니다. 우승 축하 행진이 2개월 동안 이어졌습니다. 나폴리 공동묘지 앞에 나붙은 플래카드는 당시 팬들이 얼마나 흥분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걸 못보고 죽다니’.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라도나는 1987년 이탈리아컵 우승을 이끌더니 1989년 구단 최초로 유럽축구연맹(UEFA)컵까지 차지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합니다. 1990~1991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다시 견인하기도 합니다. SSC 나폴리 역사상 단 2차례인 리그 우승이 마라도나 발끝에서 비롯된 거죠. 나폴리 사람들의 마라도나 사랑은 더욱 깊어집니다. 사람들은 “신보다 마라도나를 더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따르기 마련일까요. 마라도나는 여러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10대 시절부터 사귄 아르헨티나 여자친구가 있는 와중에 이탈리아 여인이 남아를 출산합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마라도나의 아들이라고 크게 보도하지만 마라도나는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습니다.
마라도나는 마약 중독이 심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는 일요일 경기가 끝난 후 2,3일을 술과 마약에 절어 지내다가 다음 경기를 위해 몸을 만드는 일을 일주일 단위로 반복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딱히 경기력이 떨어지지 않으니 문제 삼는 이도 없었습니다. 카모라는 마약을 대주며 마라도나를 사업에 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마라도나는 카모라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는 하수인과 같은 신세로 전락합니다. 나폴리에서 마라도나의 여성 편력과 마약중독, 카모라와의 밀접한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입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마라도나는 진창 같은 자신들의 삶을 축구로 구원해준 영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라도나와 나폴리의 사랑은 영원할 수 없었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가 나폴리에서 준결승전을 펼칩니다. 연장전까지 가는 공방 끝에 아르헨티나가 승부차기로 승리합니다. 환호하는 마라도나의 모습에 그동안 나폴리를 사로잡았던 호감은 반감으로 변질됩니다. 월드컵이 끝난 후 마라도나는 급작스레 도핑 검사를 받습니다. 마약 성분이 검출되고 마라도나는 공개 망신을 당합니다. 구단마저 마라도나를 외면합니다. 마라도나는 이탈리아 축구 최초로 약물 때문에 출전금지 처분을 받습니다. 카모라와의 관계, 여성 문제가 언론에서 까발려집니다. ‘마라도나는 악마다’ ‘역겨운 인물 마라도나’ ‘나폴리엔 악마가 산다’… 당시 이탈리아 신문 헤드라인들입니다. 마라도나는 결국 1991년 나폴리를 떠납니다. 마라도나가 나폴리에 입단할 때 환영 나온 사람이 8만5,000명이었습니다. 떠날 때는 아무도 배웅하지 않았습니다.
다큐멘터리는 마라도나가 나폴리에서 보낸, 폭풍 같은 7년을 통해 축구장 안팎의 현실을 비춥니다. 축구라는 비즈니스와 사람들의 광기, 영웅의 탄생과 몰락 등이 맞물린 사연은 드라마틱합니다. 유로2020과 코파 아메리카에도 이에 견줄 만한 뒷이야기들이 적지 않을 듯합니다.
※ 지난 금요일 오전 한국일보 뉴스레터로 발송된 내용입니다. '라제기의 영화로운'을 좀 더 빨리 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를 눌러 구독 신청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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