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추싱과 양봉음위

입력
2021.07.1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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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디디추싱.

디디추싱.

2014년 중국에선 택시 보조금 전쟁이 벌어졌다. 한 신생 인터넷 기업이 ‘디디다처’(‘디디’는 뛰뛰빵빵, ‘다처’는 타다라는 뜻)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고 이를 통해 택시를 부른 승객에게 10위안(약 1,800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이 회사는 택시 기사에게도 따로 10위안을 줬다. 앱은 순식간에 확산됐다. 이에 알리바바 계열 ‘콰이디다처’가 맞불을 놨다. 똑같이 승객과 기사에게 10위안씩 보조금을 지급했다. 베이징 시민들은 짧은 거리의 경우, 거의 공짜로 택시를 탔다.

□ 두 회사가 4개월간 뿌린 돈은 4,000억 원대로 알려졌다. 출혈 경쟁을 감당할 수 없었던 양측은 2015년 전격 합병했다. 이렇게 탄생한 게 바로 ‘디디추싱’이다. 이후 디디추싱은 세계적인 차량공유 서비스인 우버와 다시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결국 2016년 우버차이나까지 인수·합병하며 대륙을 통일했다.

□ ‘쩐의 전쟁’은 시장을 선점하고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수천 억원을 뿌린다는 게 미친 짓 같지만 길게 보면 투자다. 14억 명 중국 내수 시장만 장악할 수 있다면 나중에 기업 상장 시 비싼 몸값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바바’를 뉴욕 증시에 상장한 마윈이 보여준 길이다. 실제로 디디추싱은 지난달 30일 뉴욕 증시에 상장해 무려 44억 달러를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 그런데 갑자기 중국 당국은 국가안보와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심각한 위반을 이유로 앱 마켓에서 디디추싱 앱을 제거할 것을 명령했다. 당국의 만류에도 미 상장을 강행한 데 따른 괘씸죄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디디추싱 상장은 중국공산당 100주년 전날 이뤄졌다. 시진핑 주석이 톈안먼 망루에 올라 미국을 향해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흐를 것’이라며 선전포고를 하는데 중국 대표 기업이 미 증시로 달려가는 건 양봉음위(陽奉陰違)라는 게 당의 시각이다. 앞에서는 받드는 척하면서 뒤로는 딴마음을 먹었다는 얘기다. 아예 중국 기업의 해외 상장까지 모두 막을 태세다. 미중 전쟁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면 경제는 활력을 잃기 마련이다. 지금 중국의 힘도 경제에서 시작된 걸 중국공산당은 모르는 듯하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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