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호단체 홍보대사 제안받다

입력
2021.07.11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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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아이들을 좋아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아이는 사랑스러운 존재다. 길에서 아이를 보면 잠깐이라도 발걸음을 멈추던 평범한 나는 어쩌다 다소 평범하지 않은 장소인 응급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고백하건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응급실 일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찾아오는 환자 중에는 소아가 있기 때문이다. 아프거나 다친 아이와 눈을 마주하고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 그 존재만으로 아이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진찰하면서 아이를 한 번씩 예뻐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의사의 특권이었다.

하지만 응급실은 대체로 행복한 공간이 아니었다. 특히 환자들에겐 다양한 고통이 존재했다. 그 고통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한 편씩 글을 썼다. 그 고통에 공감하거나 연유를 파악하려 애쓰기 위함이었다. 그중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바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었다. 응급실에는 가끔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무참한 폭력의 대상이 된 아이들이 찾아왔다. 왜 존재하는지 아무리 고민해도 납득할 수 없는 끔찍한 학대였다.

그 글들은 우연한 기회에 세상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아이들을 돕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아직도 많은 아동이 폭력으로 세상을 달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고, 직접 보았던 사람으로서 그것을 말해야 했다. 캠페인 기부금의 첫 대상자는 학대 피해 아동이었다. 생후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 영아가 구타로 두개골이 일그러지는 손상을 입어 모양을 교정하는 치료비였다. 치료 내역만으로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이후에도 끔찍한 학대나 사망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직업상 어쩔 수 없이 그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아동보호단체와 만났다. 평범한 사회인이었다면 몰랐을 세계였다. 그들과 협업하며 아동보호의 역사와 개념을 다시 배웠고, 단체의 조직과 실무를 보았다. 기금을 모으고 집행하는 일뿐만 아니라 면밀한 조사와 관리, 적절한 대외적 홍보,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캠페인, 국제적 협력까지 필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뜻있는 분들이 부족한 예산으로 현장에서 격무를 견디고 있었다. 이후 많은 강연에서 아동보호단체를 언급했다. 아동보호 의무교육이나 소아응급처치 교육을 맡기도 했고, 새로운 캠페인에 동참했고, 아동 보호를 다룬 방송에 출연했고, 고통받는 아이들에 대한 원고를 썼고, 인세의 일부를 단체에 기부했다. 그리고 얼마 전 정식 홍보 대사 제안을 받았다.

사실 제안에 마음이 부끄러웠다. 이미 홍보 대사는 유명 연예인들이 맡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아이를 지키는 일은 우리가 모두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것을 이 단체의 사람들이 대신하고 있었지만, 평범한 내가 이들을 대표하는 얼굴이 된다는 게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인간에게 아이를 지키는 일이 주어졌는데, 인간으로서 그것을 거절해서는 안 되었다. 사실 유명 연예인을 떠올리던 나 스스로도 편견이 있었다. 응급실에서 직접 아이를 진료하는 의사 또한 아동을 보호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했다. 위촉패를 받자 마음이 뭉클했고 한편으로는 무거웠다. 훌륭한 사람들을 대표하기 위해 마땅히 할 일을 하며 더 성실하게 살아야 했으니까.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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