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시 이란 대통령 하메네이 후계자 입지 굳힐까

입력
2021.07.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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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대선 승리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대선 승리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6월 18일 시행된 이란 대통령 선거 결과 현 사법부 수장 에브라힘 라이시가 당선되었다. 헌법수호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중도 및 개혁파 유력 후보들이 후보자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라이시의 당선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역대 최저라는 48.8%의 대선 투표율은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는 물론 긴장감 없는 승부 탓이기도 하다.

이란의 실질적 일인자인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투표율이 저조하다고 강조하는 서구 언론을 향해 이란의 적들이 시비를 거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패자들이 라이시를 축하해 주는 이란의 선거문화를 소개하며 볼썽사나운 트럼프의 대선 불복 소동을 꼬집었다.

하메네이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가 라이시 밀어주기로 치러졌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는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그의 측근들이 주류를 이루는 헌법수호위원회에서 라이시의 당선을 위해 선거판을 짰다는 이야기이다. 음모론은 이번 대선이 차기 최고지도자 선출을 위한 예비 경선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더해지면서 설득력이 커진다.

돌이켜보면 하메네이 역시 최고지도자로 등극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애당초 점지한 후계자는 호세인 알리 몬타제리였다. 호메이니의 최측근 몬타제리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승계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그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1989년 호메이니가 서거하자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호메이니는 자신이 죽고 나서 이란 사회가 이슬람혁명의 본령을 잃어버리고 변질될까 우려했다. 따라서 이슬람혁명의 가치를 보다 충실히 구현할 인물을 찾았고, 하메네이가 최종 선택되었다. 1988년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반대하는 등 호메이니와 간간이 정책적 대립을 표출했던 몬타제리가 권력에서 밀려난 것이다. 호메이니가 그랬듯이 82세 고령의 하메네이도 자신의 후계자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아닐까.

하메네이의 무한한 신임 속에서 라이시는 8월 3일부터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다. 라이시의 당선으로 관심을 끄는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이란 핵합의(JCPOA) 복원 협상이다. 4월부터 이어진 비엔나협상은 6차례의 마라톤 회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이란 간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이란 정부는 앞으로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또 나와서 합의를 뒤집는 일이 없도록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란의 대미 정책은 대통령이 아닌 최고지도자의 의중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보수 강경파로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테헤란의 대미 정책 기조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비엔나합의 타결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라이시 정권의 탄생으로 정치적 셈법이 달라지면서 협상이 꼬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메네이와 찰떡궁합을 이루어 의외의 빅딜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저항경제의 구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란의 현실에 주목한 논리이다.

이처럼 엇갈린 전망 속에서 라이시 정부의 새로운 외교안보팀이 어떠한 전략을 추진하여 성과를 도출해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난히 주목되는 이유는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라이시가 차기 최고지도자가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독이 든 성배'를 들게 된 라이시가 어떠한 외교 전략을 펼침으로써 하메네이의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갈지 궁금하다.

김강석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대체텍스트
김강석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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