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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이건희 컬렉션’을 어떻게 관리할지를 두고 전개된 논의의 흐름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 ‘이건희 기증관’을 따로 설립한다면 어디에 설립할 것인가. 둘째, 컬렉션을 한곳에 모아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유형별로 나눠 관리할 것인가. 당초 컬렉션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분산 기증됐지만, 각 지자체는 별도 이건희 기증관을 자기 지역에 두기 위해 치열한 유치전을 벌였다.
▦ 각 지자체가 내세운 최대 명분은 지역균형발전이다. 거기에 대구시는 이 회장의 출생지이자 삼성그룹 모태라는 점 등을 강조했다. 부산시는 “대한민국 문화 발전을 위한 고인의 유지를 살리려면 수도권이 아닌 남부권에 짓는 것이 온당하다”는 주장을 폈다. 경남 의령군은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있다는 점을, 경남 진주시는 이병철 회장이 다닌 초등학교를 각각 내세우기도 했다. 이외에도 수원시와 여수시 등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 전문가들은 진작부터 지방 설립에 부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석제부터 도자, 금속, 서적 등 전적류와 현대 회화에 이르는 방대한 유형, 2만여 점에 이르는 컬렉션을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관리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컸다. 전문가들은 현대회화를 순회 전시하려고 해도 적절한 온도와 습도 유지 시스템이나 관리능력을 갖춘 인력이 크게 부족한 현실을 지적했다. 따라서 최근 정부가 각각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인접지인 서울 용산과 중구 송현동 부지로 정한 건 무리가 없다는 게 중평이다.
▦ 문제는 컬렉션을 한군데 모을 것인지 여부다. 정부는 일단 모든 작품을 다시 한 곳에 모아 관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애초에 분산 기증의 취지를 훼손할뿐더러, 유형과 시대별로 분류해 기증품의 문화사적 맥락을 극대화하는 게 최선”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다수 전문가들은 “컬렉션이 세계적일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는 한국 근대 미술작품의 보고이기 때문”이라며 차제에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강력히 촉구한다. 아직 논의의 여지가 남은 만큼, 차분하게 최선의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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