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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은 정치가 아니다

입력
2021.07.1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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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따라 정부가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격상을 발표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 영업시간 단축 안내문이 붙어 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기간인 12일부터 23일까지 수도권 은행 영업시간이 1시간 단축돼 은행 문을 오후 3시 30분에 닫는다. 뉴시스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따라 정부가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격상을 발표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 영업시간 단축 안내문이 붙어 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기간인 12일부터 23일까지 수도권 은행 영업시간이 1시간 단축돼 은행 문을 오후 3시 30분에 닫는다. 뉴시스

방역은 과학이다. 누가 봐도 '참'인 이 단순 명제는 문재인 대통령도 수시로 강조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가 극단으로 치달으며 끝내 거리두기의 최종 수위인 4단계를 마주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안타깝게도 이 명제가 담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를 정부가 소홀히 해서다.

이태원과 광화문광장에서 불붙은 지난해 여름의 2차 대유행, 연말 요양시설과 구치소가 화인이었던 3차 대유행, 그리고 변이 바이러스와 방역 완화가 불러온 지금의 4차 대유행. 모두 과학의 시선으로 사전에 알아챌 수 있었던 불씨를 놓친 결과였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방역을 과학이 아니라 정치로 대응하고 현장의 의료인 등 과학의 경고를 가볍게 여긴 정부의 탓이 크다. K방역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방역이 불러올 민생 위기를 민심 이반으로 해석한 판단의 후과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5월 이태원발 위기를 겪으면서도 소비쿠폰을 뿌리고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면서 외부활동을 장려하는 무리수를 뒀다. 방역 현장에선 휴가철 대확산을 우려하고, 중증환자 치료시설 부족을 경고했지만 방역은 정치를 이기지 못했다. 결국 신규 확진자가 441명(8월 27일)으로 2차 대유행의 정점에 올랐을 때도 정부는 "3단계 격상은 신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같은 날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이 내놓은 진단은 "머지않아 하루 신규 확진자 1,000명"이었다. 방역일선에 선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은 "2,000명"을 내다봤으나, 정치의 힘은 방역망을 3단계가 아닌 2.5단계 격상으로 묶었을 뿐이다.

과학이 아닌 정치 논리가 우선해 빚어진 실기(失機)는 지난해 말에도 뼈아프게 있었다. 전문가 집단의 반대에도 정부는 그해 11월 섣부른 새 거리두기를 도입했고, 불과 하루 만에 확산세를 우려하는 처지가 됐다. 뒤늦은 경고는 '크리스마스 악몽'(12월 25일 신규 확진자 1,241명)을 깨트리기엔 미약했다.

4차 대유행을 앞두고 과학의 경고가 더욱 거셌지만 하루빨리 코로나 위기 탈출을 주도해야 한다는 정부의 정치적 판단은 역시 방역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서기 불과 약 열흘 전, 델타 변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발언과 달리 정부의 방역 방향을 정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입장은 "변이는 통제 가능하다"였다. 세계보건기구(WHO)마저 델타 바이러스의 지배종화와 전 지구적 대유행을 공식적으로 경고했음에도 정부는 방역완화 시그널로 읽힐 수밖에 없는 새 거리두기 시행 예고를 이어가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9일 수도권 4단계 거리두기 발표 직후 과학자들의 방역 완화 반대 목소리를 듣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으로 사과했다. 정부의 오판이 자영업자들의 '7월 희망'을 앗아가고, 학생들의 전면등교를 좌절시켰고, 가족 상봉을 가로막았음을 시인한 것이다.

과학의 경고는 여전히 날이 서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10일 "정부대응이 이미 늦었다"며 "하루 확진자가 수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터널을 벗어날 줄 알았으나, 어둠의 심연은 한 치의 빛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가 다시는 '방역이 과학'이라는 명제를 간과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양홍주 디지털기획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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