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분짜리 영화가 가져다준 9시간 여운

입력
2021.07.08 20:00

영화 '오페라' 스틸컷.


단 9분짜리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굳이 영화관을 향했던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에릭 오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오페라'란 제목으로 음악적인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게다가 감독의 전작은 비발디 사계의 여름을 배경음악 이상으로 활용했던 '심포니'였다. 그 표현력과 관점이 기악음악인 '심포니'에서 성악이 주도하는 '오페라'로 어떻게 확장되어 진화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허를 찔리고 말았다.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오페라'이지만 성악가의 노래로 극을 전개하지 않았다. 기승전결의 스토리나 주인공도 찾을 수 없었다. 감독은 대신 오페라의 어원인 사회와 노동, 구조의 개념에서 실마리를 얻고 있었다. 오페라하우스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피라미드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골격을 이룬다. 피라미드 구조 안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위치와 계급에 배치되어 서로 교류하고 생존한다. 여러 층을 오르내리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모습은 미시적으론 일상생활의 세부를 포착하면서도 거시적으론 역사의 수레바퀴처럼 윤회를 일으킨다. 영화가 상영되는 9분 내내 낮과 밤의 순환이 무한루프처럼 계속되는데 음악적으론 도돌이표를 연상시켜 신기했다.(에릭 오 감독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p/CMLwdd5jSkR/)

탁구공처럼 둥근 머리를 가진 수많은 인간군상은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도맡는데 이는 오케스트라와도 연결되었다. 퍼즐 조각처럼 24개의 피라미드로 뿔뿔이 세분화된 영역들은 합창(Chorus), 지속음(Continuo), 간주곡(Interlude), 아리아(Aria), 서곡(Overture) 등의 음악용어들을 간판으로 삼고 있었다. 무심코 들으면 달그락, 와글와글거리는 효과음들이 만발할 뿐이지만 초점을 하나의 캐릭터에 집중하면 고유의 소리를 찾을 수 있다. 모든 소리들이 모든 곳에 존재한다 해도 어느 곳에 귀기울이냐에 따라 그 소리는 들릴 수도 들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삶 자체를 묘사하는 다양한 사운드를 유기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이 영화엔 무려 3팀의 작곡가들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피라미드 구조는 양극화와 차별처럼 여러 대조적 갈등을 표현하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장례식과 전쟁의 맞은편에 결혼식과 아이의 탄생을 배치하니 격렬한 대비가 일어났다. 지배계층이 최상단을 차지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때, 피라미드 하단의 판자촌에선 불구가 된 사람들이 즐비하다. 지도자가 실수를 저지르면 사회는 파국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새로운 수장을 선출하지만 똑같은 일들이 반복된다. 이처럼 양극화의 분열은 관객들의 생각에 유의미한 도발을 일으킨다. 게다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엔 길고 구불구불한 두루마리 위에 문명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 활동한다. 인간의 역사는 승자의 시각이 지배하지 않던가. 꼭대기에 자리 잡은 역사가는 인간문명의 다양한 측면을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단두대의 처형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의 얼굴 색깔이 노랑, 빨강, 파랑 등 각양각색 다양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그 이유로 감옥에 갇혀 고문을 받거나 교수형에 처한다. 민족과 이념, 종교적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차별의 비극이 도돌이표처럼 무한 반복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을 끊어내어 멈출 수 있을까.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다양성이 참수되는 무한루프를 바라보며 관객들은 차별의 시대를 절감한다.

러닝타임이 단 9분에 불과했는데도 모든 장면을 이해하려면 9시간이 족히 필요할 것 같았다. 영화관보다는 이해할 때까지 머물러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이 더 어울릴지 몰랐다. 에릭 오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로 올라 화제를 모았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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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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