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한국인은 잘 모르는 한국의 문화

입력
2021.07.07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최고의 성악가로 불리던 대학교수가 해외에서 공연을 마치고 많은 박수를 받고 격양된 마음을 억누루고 있을 때 한 관객의 요청이 있었다. 불러주신 곡들이 대부분 우리 스타일 노래였는데 그럼 당신 나라 노래를 좀 불러봐 주시겠습니까? 교수님은 그러겠다고 말하고는 애창곡인 '보리밭'을 불러주었다. 그런데 좀 전까지 박수를 치던 관객들의 반응이 달라 보였다. 곡을 신청했던 사람이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반문을 해왔다. "이상하네요. 전 당신 나라의 곡을 요청했는데 지금 불러주신 곡은 우리나라 스타일의 곡인 거 같은데요?" 교수는 그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맞다. 내가 지금까지 우리 노래라고 생각하고 불러왔던 곡들은 사실 우리가 작사한 곡일 뿐이지 그 기원은 저들의 곡인 것이 맞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건축과 수업에 한국건축사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반면 서양건축사라는 전공선택과목이 있었고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과목이었다. 서양건축의 뿌리를 이해하고 근대로 이어지는 사조와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건축의 역사는 철학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해서 건축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세계문화사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아주 중요한 분야였다. 그런데 그 안에 한국건축사는 없었다.

한국건축사를 가르치는 전국의 건축과가 아쉽게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교재가 없었고 근대화 이후 어느 누구도 한국건축사를 배워 본 적이 없었다는 현실을 알 수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몇몇 학자들에 의해 한국전통건축에 대한 연구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건축의 정체성을 우리 공간 안에 녹여 넣은 작업은 보기 어려운 것 같다. 1990년대 이후 수많은 건축전공자들이 유럽과 미국으로 진출하여 소위 건축계의 전문성과 세계성은 어디에도 부족하지 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그런데 왜 우리 건축은 세계 건축계에 특별한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 핵심은 한국적인 것, 즉,역사성의 부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인들이 다다미로 상징되는 자신들의 모듈 개념과 전통철학을 현대 기술과 접목해 표현해낸 미학적 가치가 세계인들에게 찬사를 불러일으키듯이 우리 건축의 역사성을 현대건축에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시도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 세계는 역사적 내면의 세계를 읽어 내는 가치에 갈급해 있다는 것을 우린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세계성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세계적인 문화가 많이 존재하지만 정작 우리네 자신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수제천이라는 정악음악은 세계 음악가들이 천상의 음악이라고 표현한 우리 자랑이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우리의 현재 주거방식은 미국식의 문화에 가깝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라이프 방식으로 변모한 가치를 우리 사회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골목길 중심의 오래된 마을에 살고 있던 주민들도 자동차 도로와 주차장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주된 요구인 것이 현실이다. 공간에 대한 요구는 그렇게 작동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간과된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겼던 전에부터 내려오던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점이다.

오래된 유럽 도시 유적을 관광하며 환호해 본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그와 비교해서 어떤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김대석 건축출판사 상상 편집장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