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 경험 안기는 '기생충' VR...봉준호 감독도 "새로운 체험" 극찬

입력
2021.07.07 07:00
구독

6일부터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서 전시
할리우드 VFX 진출 1세대 구범석 감독 연출

영화 '기생충' VR 3차원 영상을 2차원으로 변환한 이미지. VR 기기를 착용하고 보면 실제 영화 속 공간에 들어간 듯 느껴지지만 2차원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왜곡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영화 '기생충' VR 3차원 영상을 2차원으로 변환한 이미지. VR 기기를 착용하고 보면 실제 영화 속 공간에 들어간 듯 느껴지지만 2차원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왜곡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가상현실(VR) 헤드마운티드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HMD)를 머리에 쓰자 전시장이 순식간에 영화 ‘기생충’ 속 공간으로 바뀌었다. 푸른 잔디가 깔린 마당이 통창 밖으로 시원하게 보이는 거실. 실내로 쏟아지는 햇살이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다. 마당에 설치된 티피 텐트까지 낯익은 이 곳은 박사장(이선균)이 살던 저택이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거실은 산산조각 나 흩어지고, 공간은 어느새 기택(송강호)과 가족들이 박사장의 집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와 비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계단 길로 바뀐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물에 잠겨 있는 기택의 반지하 집에 둥둥 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 위에 뜬 기정(박소담)의 지폐뭉치와 물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 기택 아내 충숙(장헤진)의 메달, 그리고 기우(최우식)의 산수경석이 보인다.

‘기생충’ VR의 정점은 물에 잠긴 산수경석이 수십, 수백 배로 커지며 관객을 압도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영화에선 사람 얼굴 크기 정도로 나오는 것이 전부지만 3차원 가상현실에선 거대한 산맥으로 변해 관객을 덮친다. 수석 표면의 거친 질감이 만져질 듯 사실적인데 반해 산수경석과 마주하는 느낌은 초현실적이다. 공간은 다시 박사장의 집으로 옮겨 간다. 좁다란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영화 속 비밀 공간인 지하실에 이른다. 3차원으로 재현한 그래픽 이미지이지만 실제 지하 세트를 그대로 눈 앞에 펼쳐놓은 듯하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과 선반 위의 통조림 등 소품 하나하나가 손으로 만져질 것처럼 생생하다.

'기생충' VR 연출 구범석 감독 "원작 훼손 않는 데 중점"

6일부터 16일까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한국: 입체적 상상’ 전시에 앞서 지난달 24일 언론에 먼저 공개된 4분 30초짜리 ‘기생충’ VR 콘텐츠는 2차원 영화가 보여줄 수 없었던 시각적 체험을 선물했다. 실제 영화 속 공간에 다녀온 듯한 체험을 안겨주는 데 더해 빈부격차와 계급 간의 갈등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몸소 느끼게 했다. 시사가 열린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문화광장에서 만난 구범석 감독(이브이알 스튜디오 이사)은 “봉준호 감독의 팬으로서, 또 ‘기생충’을 재해석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시 여겼던 점은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생충' VR 영상을 연출한 구범석 감독.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기생충' VR 영상을 연출한 구범석 감독.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영화 세트가 모두 철거된 뒤여서 구 감독은 이하준 미술감독에게 받은 도면과 여러 관련 자료를 실제 영화 장면과 비교해가며 3차원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는 “VR에선 조금의 오차만 있어도 다른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어 정확한 묘사를 위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며 “완성된 VR 영상을 본 영화 스태프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못 했다는 말을 듣고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영상의 하이라이트인 산수경석 장면에 대해선 “기우가 물난리가 난 집에 돌아가 산수경석을 챙겨 나오는 장면에서 내가 느꼈던 것처럼 관객도 초현실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상 속 거대한 산수경석은 실제 소품을 3차원 스캔해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도 만족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체험"

'기생충'의 주역들도 구 감독이 연출한 VR 영상에 만족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체험"이라고 했고, 시나리오를 쓴 한진원 작가는 "2018년 봄과 여름에 열정을 불태웠던 그 장소를 다신 못 볼 거라 생각했는데 고개를 돌려 가면서 샅샅이 볼 수 있어서 무척 뜨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구 감독은 시각효과(VFX) 분야 할리우드 진출 1세대다. 미국에서 컴퓨터 아트를 전공한 뒤 할리우드의 유명 VFX 회사인 웨타 디지털 등에서 일하며 ‘반지의 제왕’ ‘헬보이’ ‘황금나침반’ 등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참여했다. 귀국 후엔 VR 연출에 뛰어들어 세계 최초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2017)를 연출했다.

HMD 기기를 쓰고 '기생충' VR 영상을 관람하는 모습. 영화 속 지하공간으로 이어지는 복도가 2차원 벽면에 투사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HMD 기기를 쓰고 '기생충' VR 영상을 관람하는 모습. 영화 속 지하공간으로 이어지는 복도가 2차원 벽면에 투사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이번 전시는 한류 대표 콘텐츠를 활용한 융복합 실감 콘텐츠를 현지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마련됐다. ‘기생충’ 외에 방탄소년단 콘서트 영상의 VR 콘텐츠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하다’, 디지털 콘텐츠 제작사 디스트릭트와 비브스튜디오스, 미디어 아티스트 태싯그룹과 강이연의 작품들도 공개된다. 국내에선 파리 전시가 끝나는 16일부터 온라인을 통해 일부 작품을 2차원 화면으로 감상할 수 있다. 구 감독은 “VR 장비로 보는 것만큼 온전히 느낄 수는 없겠지만 2D 문법으로 변환한 영상으로도 즐길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