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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 아냐"… 42년 만에 공개된 전두환의 '궤변'

입력
2021.07.06 16:29
수정
2021.07.0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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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관련 美 정부 문서 21건 비밀해제

1996년 12월 26일 군사반란죄와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선 전두환(오른쪽)·노태우(가운데) 두 전직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6년 12월 26일 군사반란죄와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선 전두환(오른쪽)·노태우(가운데) 두 전직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79년 ‘12ㆍ12 군사반란’ 직후 주한미국대사를 만나 “나는 정치적 야심이 없으며 12ㆍ12 사태는 군사 쿠데타(반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가 지난달 29일 한미 양자정책대화를 계기로 미 행정부로부터 넘겨받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비밀해제 문서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다.

12ㆍ12 군사반란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수사를 지휘한 전두환 당시 국군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 승인 없이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등을 체포하는 ‘하극상’을 일으켜 군부 권력을 탈취한 사건이다.

이날 공개된 문서를 보면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는 그해 12월 15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12ㆍ12 사태는 박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정 총장에 대한 조사 필요성이 요청돼 체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군사 쿠데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군부대 동원은 적법한 명령에 대한 정 총장 측의 저항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반란을 일으킨 지 사흘 만이었다.

전씨는 또 “최 대통령 재가를 받아 정 총장을 체포하려 했지만 대통령이 거절해 승인 없이 정 총장을 붙잡았다”고 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자인한 셈인데, 이를 “쿠데타가 아니다”라고 한 건 궤변이나 다름없다.

군부를 장악한 전씨는 이후 행정부까지 집어 삼키기 위해 1980년 5월 17일 일부 지역에 적용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에 반발한 광주 전남대 학생들이 이튿날(18일)부터 시위에 돌입했고,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낸 5ㆍ18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항소심 공판이 열린 5일, 광주지법에 출석하지 않고 서울 연희동 자택 앞 골목을 여유롭게 걷는 모습이 한국일보 카메라에 포착됐다. 홍인기 기자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항소심 공판이 열린 5일, 광주지법에 출석하지 않고 서울 연희동 자택 앞 골목을 여유롭게 걷는 모습이 한국일보 카메라에 포착됐다. 홍인기 기자

신군부가 1980년 5월 27일 광주시민들을 무력 진압하기 직전, 계엄군 투입 계획을 미국에 미리 알린 사실도 이번 문서에서 재확인됐다. 계엄군 투입 전날인 26일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은 글라이스틴 대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계엄사령부가 광주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진압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광주진압 작전을 (대중에) 사전 통보하면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기 때문에 통보 없이 작전을 수행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계엄군 재투입 결정을 미리 전달받았다는 사실은 1989년 미 국무부가 광주특위에 보낸 답변서에서 이미 드러났다. 다만 미 행정부 공식 문서를 통해 확인된 건 처음이다.

전씨는 12ㆍ12 군사반란죄와 5ㆍ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의 혐의가 인정돼 1996년 1심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됐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번에 비밀해제돼 한국 정부에 전달된 미 정부 문서 21건은 ‘5ㆍ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5ㆍ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 인계된 뒤 기록관 홈페이지에 공개될 예정이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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