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강서구 일가족, '위기 가구'였지만 비극 못 막았다

입력
2021.07.06 18: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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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모두 극단적 선택 단정 어려워" 경위 파악 주력
죽은 세 사람 모두 질병에 생계능력 없어 기초수급자
당국 모니터링 대상이었지만 방문 횟수 연 2회 그쳐

서울 강서구의 다세대주택에서 모자(母子)를 포함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경찰이 사건 경위 파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극단적 선택의 정황이 발견되긴 했지만, 세 사람이 모두 극단적 선택에 가담했을지엔 신중한 입장이다.

또 죽은 세 사람은 모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확인됐다. 특히 모자는 지자체에서 주기적으로 대면 관리를 하도록 돼 있는 '위기 가구'에 포함돼 있었지만, 당국이 이들을 방문한 것은 올해 4월이 마지막이었다.

한 다세대 주택의 우편함.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 다세대 주택의 우편함. 한국일보 자료사진


"3명 모두 극단 선택 단정 어려워"

사건을 맡은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6일 "사망자 3명 모두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며 "오늘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의 시신이 발견된 집안에서 불에 탄 숯을 발견, 이들 중 일부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앞서 경찰은 전날 오후 강서구 화곡동 다세대주택 2층에 있는 가정집에서 모자 관계인 50대 여성 A씨와 30대 남성, A씨의 조카로 인근에 사는 40대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들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신고자는 A씨의 또 다른 아들로, 그는 당일 오후 2시 35분쯤 "어머니와 형이 (이달) 1일 이후로 연락이 안 된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자와 A씨 남편은 죽은 모자와 별거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사건이 지난 주말(3, 4일) 발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무덥고 습한 날씨 탓에 시신이 심하게 부패된 걸로 보고 있다. 주민들은 사망자들이 평소 이웃과 교류하지 않아 불상사를 금세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사건 현장 인근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B씨는 "여기서 장사한 지 10년이 좀 넘었지만 (사망자들의) 얼굴을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옆 건물 주민 C씨는 "지난 일요일(4일) 창문을 열었더니 빗속에 악취가 흘러들었다"며 "사람이 죽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 2회 방문으론 막지 못한 비극

화곡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A씨 모자는 2014년부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돼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주거급여를 지원받아왔다. A씨는 남편과 2005년경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죽은 A씨 조카 역시 지난해 7월 수급자로 지정돼 같은 주민센터에서 관리해왔다. 주민센터에 따르면 A씨는 우울증과 갑상선 질환으로, A씨 아들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각각 생계능력이 없어 수급 판정을 받았다. A씨 조카 역시 우울증을 앓아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된 것으로 파악됐다.

A씨 모자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위기 가구 방문 모니터링' 사업 대상이었던 걸로 확인됐다. 이는 서울시가 '방배동 모자' 사건을 계기로 복지 수급 가구를 정기 방문해 어려움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정책 사업으로, 방문 주기는 대상 가구의 '위기 등급'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A씨 모자의 경우 위기 등급이 가장 낮은 4단계여서 가정 방문 횟수가 연 2회였다. 실제 주민센터 담당 직원이 이들 모자를 만난 것은 올해 4월이 마지막이었던 걸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A씨 모자 상황에 대한 복지당국의 점검망이 성글다 보니 이번 비극을 막지 못한 셈이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A씨 모자 가구 방문은 올해 하반기로 예정돼 있었다"며 "만약 공과금이 3개월 이상 체납됐다면 구청 시스템을 통해 이상을 감지했을 텐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 거주지역에서 최근까지 통장을 했다는 주민은 "동에서 지급되는 쓰레기봉투 등을 가져다 주려 들를 때도 문을 잘 안 열어줘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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