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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우익단체 방해로 쫓기고 쫓기다...日나고야서 시민 만난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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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잖아! 왜 고압적으로 말하는 거야!”
6일 오전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시민 갤러리 사카에(榮)’. ‘표현의 부자유전(不自由展)·그 후’ 전시회 도중 중년 남성의 험악한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평화의 소녀상’을 숙연하게 관람하는 시민들에게 남성 두 사람이 들이닥쳐 작품 내용이 거짓이라며 시비를 건 것이다. 문제를 일으켜 전시회를 중단시키려는 의도로 보였다. 주최 측 직원과 경비원, 변호사가 달려와 자제할 것을 호소했다. 전시회를 취재하러 온 100명 가까운 언론인까지 모여들자 결국 이 남성은 퇴장했다.
같은 시각, 전시장 밖에선 우익단체 회원들이 행사를 중단하라며 확성기를 켜놓고 가두시위 중이었다. 이들은 전시회가 일왕과 일본 국민을 모욕하는 내용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옆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당신들은 민폐를 끼치고 있다,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시위대 주변에는 경찰 몇 명이 배치돼 있었지만 특별히 이들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등 일본의 전시 성폭력 범죄를 알리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회는 첫날부터 전시장 안팎에서 우익 세력의 방해를 겪으며 시작됐다. 전시 기간 중인 9~11일에는 우익 단체가 같은 건물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맞불 전시’도 예정돼 있다. 전시회가 열리기까지 난관이 많았다. 그나마 나고야에선 개최에 성공했지만, 앞서 도쿄와 오사카에서는 전시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주최 측 실행위원 다카하시 료헤이씨는 준비 과정에 대한 질문에 답하다 힘들었던 장면이 떠오른 듯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도 했다.
이날 전시회는 2019년 8~10월 개최된 ‘아이치현 트리엔날레’의 기획전으로 열렸던 동명의 전시를 다시 진행한 것이다. 전시를 주최한 시민단체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를 잇는 아이치(愛知) 모임’은 2년 전 트리엔날레 개최 3일 만에 우익 세력의 압박에 전시가 중단되자, 전시를 재개하라고 매일 거리시위를 벌였던 시민들이다. 이들은 이후에도 조작된 주민 서명까지 동원해 아이치현 지사 소환운동을 벌인 우익 단체의 행위를 고발하는 등 2년간 역사 바로 알리기와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해 노력해 왔다.
이번 전시장에는 2년 전 트리엔날레에서 선보였던 김서경·김운성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과 히로히토 전 일왕의 사진을 태우는 장면을 담은 오우라 노부유키(大浦信行) 감독의 영상 작품 ‘원근을 안고 Part II’, 안세홍 작가의 흑백 사진 작품인 ‘重重-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이 그대로 전시됐다. 이에 더해 중국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등 아시아 각국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찍은 안세홍 작가의 컬러 사진 작품을 추가 전시했고, 아이치 모임이 2년 동안 활동한 기록도 전시했다.
우익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전시회를 찾은 시민들은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소녀상 앞에 꽃바구니를 갖다 놓은 관람객도 있었고, 소녀상 옆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나고야에 거주하는 한 50대 남성은 “이것조차 전시하지 못하게 갖은 방해를 하다니 일본의 수치”라고 분노하며 “일본인들이 과거 자기들의 조상이 한국인이나 중국인에게 어떤 끔찍한 짓을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치현 오와리아사히(尾張旭)시에 사는 야마다 도시오(79)씨도 “태평양전쟁이 끝나기 3년 전에 태어났는데도 일본의 가해 행위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다 전시를 통해 알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일본인은 전쟁 피해자라고만 생각해 가해자로서 자각이 없는데,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안다면 왜 평화헌법을 만들었고 이를 수호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면서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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