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안 나오면 불이익"… 항소심 재판부, 피고인 전두환에 경고

입력
2021.07.0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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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5일 오전 10시 30분경 뒷짐을 진 채 혼자서 서울 연희동 자택 앞 골목을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왼쪽). 자신을 촬영하는 기자를 발견한 전씨가 기자에게 "당신 누구요!"라고 고함을 치고 있다(가운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경호원이 나와 전씨를 급하게 경호원 숙소로 안내하고 있다. 과거 알츠하이머 등 건강상의 이유로 여러 차례 재판에 불응해 온 전씨는 이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두 발로 뚜벅뚜벅 산책을 하고 기자에게 고함을 치는 등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이날 광주지방법원에서는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열렸고, 전씨는 출석하지 않았다. 홍인기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5일 오전 10시 30분경 뒷짐을 진 채 혼자서 서울 연희동 자택 앞 골목을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왼쪽). 자신을 촬영하는 기자를 발견한 전씨가 기자에게 "당신 누구요!"라고 고함을 치고 있다(가운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경호원이 나와 전씨를 급하게 경호원 숙소로 안내하고 있다. 과거 알츠하이머 등 건강상의 이유로 여러 차례 재판에 불응해 온 전씨는 이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두 발로 뚜벅뚜벅 산책을 하고 기자에게 고함을 치는 등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이날 광주지방법원에서는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열렸고, 전씨는 출석하지 않았다. 홍인기 기자

피고인석엔 '피고인 전두환(90)'은 없었다. 이번에도 그의 변호인인 정주교 변호사가 대신 자리를 지켰다. 그는 지난 5월 10일 자신의 회고록(전두환 회고록)과 관련한 사자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1회 공판이 끝난 직후 향후 공판 기일에 대해 '노쇼(No-Show·예약 부도)'를 선언한 터였다. 그러나 그의 '출정(出廷) 거부'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이 계속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증인 신청 등)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경고한 탓이다. 정 변호사도 "피고인의 불이익에 대해 깊이 생각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피고인 전두환'은 5일 자신의 말을 실천하겠다는 듯 광주지법 형사1부(부장 김재근)심리로 열린 2회 공판 기일에도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지난해 11월 30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다.

"피고인 전두환 출석하지 않았죠?", "피고인 불출석 상태에서 피고인 측의 증거 신청과 자료 제출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날 재판장인 김 부장판사는 개정(開廷)하자마자 불출석 피고인에 대한 재판상 불이익을 언급했다. 김 부장판사는 "변호인이 신청한 증거는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객관적 자료만 받겠다"며 "사실심 마지막 단계인 만큼 피고인 출석이 전제돼야 하고, 현재처럼 불출석할 경우 증거 신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다시 정한 기일에 출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피고인의 진술없이 판결을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제365조 2항)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의미였다. 전두환 피고인이 본인에 대한 변론권을 포기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이날 재판부의 불이익 경고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선 "재판부가 법정 출석을 포기한 전두환 피고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보장해 준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 부장판사의 발언이 끝난 뒤 법정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정 변호사가 "5·18 당시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주장을 어떻게 입증할지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하면서다. 정 변호사는 1심 때처럼 "1980년 5월 21일과 5월 27일 광주 도심 헬기사격과 관련해 당시 광주로 출동한 육군항공대 조종사들을 증인 신문해야 한다", "헬기 사격으로 인한 사망 부상자 밝혀보면 된다"고 집요하게 주장했다. 여기엔 41년이 흐른 데다, 5·18 이후 신군부의 조직적인 증거 인멸과 자료 조작으로 온전한 증거가 있을 리 없다는 자신감이 작용했을 터다. 기껏해야 낡고 해진 증거들로는 헬기사격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듯 했다. 정 변호사 특유의 장광설(長廣舌)이 이어지자 방청석에선 "후~"하는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참다 못한 김 부장판사도 "입증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간단하게 밝혀라", "1심에서 반복됐던 내용들이다"고 수차례 지적과 함께 정 변호사의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이번 사건 쟁점을 둘러싼 검사와 변호인 간 신경전도 재연됐다. 검사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던 한 탈북자가 "관련 사실을 꾸며내 이야기했다"는 내용의 언론 인터뷰 기사를 재판부에 참고자료로 제출했다. 이에 정 변호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피고인에 대해 불리한 심증을 재판부에 형성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발끈했다.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해 불리한 심증을 형성할 수 있다는 변호인의 주장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배척했다.

이처럼 피고인 측의 시간끌기 식 변론 전략에 항소심 재판도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사건 당사자의 분노 지수도 끓어오르는 듯 했다. 고 조비오 신부 조카 조영대 신부는 "한 마디로 답답하고 참담하다"며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3년 7개월 걸린 1심 재판을 보면서 너무나 지치고 또 그만큼이나 속이 타들어 갔는데 언제까지 이런 재판이 진행될 것인지 정말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항소심 재판부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제발 신속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이 역사적인 재판을 잘 진행시켜 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안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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