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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기꾼 수산업자, 건실한 재력가 행세 국회에서 시작됐다

입력
2021.07.06 04:4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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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부회장 자격으로 수상하며 국회 입성
슈퍼카 타는 재력가로 정치권에 눈도장
그날 이후 정치인 등 유력인사 접촉 정황

자칭 수산업자 김씨가 2019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울평화문화대상' 시상식에서 언론사 부회장 자격으로 봉사상을 수상하고 있다. 월드투데이 홈페이지 캡처

자칭 수산업자 김씨가 2019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울평화문화대상' 시상식에서 언론사 부회장 자격으로 봉사상을 수상하고 있다. 월드투데이 홈페이지 캡처

현직 부장검사와 총경급 경찰 간부, 언론사 간부와 유력 정치인, 국가정보원장과 박영수 특별검사까지, 100억 원대 사기 혐의를 받는 '가짜 수산업자' 김모(43)씨가 교류했던 인사들은 대부분 '힘 있는' 사람들이었다. 김씨는 2016년까지만 해도 주변 사람들을 속여 돈을 뜯어온 생계형 사기꾼에 불과했지만, 2017년 말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후 유명 인사들을 상대하는 거물급 사기꾼으로 변했다. 김씨가 건실한 재력가 행세를 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준 곳은 국회와 정치권이었다.

2019년 12월 6일 김씨에게 날개 달아준 국회

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는 2019년 12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평화문화대상을 수상하며 정치권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인터넷 언론사 부회장 명함을 파고 다녔던 그는 당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 등 내로라하는 여야 정치인들의 박수를 받으며 봉사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김씨는 배우 손담비씨 등 수상자들 및 국회의원 10여 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치권에 '번듯한 사업가'로 눈도장을 찍었다. 람보르기니 슈퍼카를 타고 행사장에 나타난 김씨는 1,000억 원대 유산을 물려받을 포항의 청년 재력가로 자신을 각인 시키는 데 성공했다.

행사 참석자들뿐 아니라 김씨 주변 인사들도 이날 김씨의 수상 모습을 보면서 그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고 한다. 김씨 역시 수상 이력과 기념사진을 자신의 인맥 다지기에 적극 활용했다. 정치권에 일면식도 없던 김씨가 문어발 인맥을 만들며 '사기 스케일'을 키운 단초가 이날 마련된 셈이다.

사기꾼 수산업자 김씨가 자신의 슈퍼카를 운전하며 찍은 사진. 김씨 SNS 캡처

사기꾼 수산업자 김씨가 자신의 슈퍼카를 운전하며 찍은 사진. 김씨 SNS 캡처


정치권에 얼굴 알린 뒤 사기 스케일 커져

경찰이 김씨 휴대폰을 포렌식한 결과에서도 2019년 12월 6일은 특별한 날로 확인됐다. 김씨가 이날 이후 다수 정치인과 접촉을 시도하고 만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김씨는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무작위로 문자를 보낸 뒤 응답이 오면 접근했으며, 독도새우·대게·전복 등 고급 해산물을 선물하며 환심을 샀다.

김씨는 자신이 구축한 인맥을 국회의원 선수나 사회적 인지도에 따라 구분해 선물 리스트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상대방이 선물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해오면 식사에 초대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김씨가 직접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는 인사들의 면면을 확인한 주변 사람들은 그를 더 믿게 됐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김씨의 사기극은 이렇게 다져진 '거미줄 인맥' 때문에 가능했다. 김씨의 선물 리스트에는 국민의힘 소속 김무성 전 의원, 주호영 의원 등 20여명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봉사대상 준 주최 측 "의심할 만한 이력 없었다"

경찰 수사로 김씨의 100억 원대 사기 혐의가 드러나기 전까지 김씨의 실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김씨가 수상한 서울평화문화대상은 서울일보·도민일보 등이 주관하는 상이다. 주최 측은 "당시 공적서를 바탕으로 수상자를 선정한 것"이라며 "김씨 이력과 관련해 의심할 만한 점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날 상을 받은 한 참석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서울일보 관계자와 아는 분이 추천해서 영문도 모르고 상을 받게 됐다"고 전했다.

김씨가 수상자로 선정된 배경엔 언론사 부회장 직함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언론인 출신 정치인 A(59)씨의 도움으로 A씨가 운영하던 언론사 부회장 직함을 받았다. 해당 매체는 당시 김씨를 부회장으로 소개하며 수상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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