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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0.2' 세계 최고의 전자 눈 개발하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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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흑백TV 시절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던 영웅은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아닌 '600만불의 사나이'였다. 배우 리 메이저스가 연기한 TV외화 시리즈 속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은 전투기 추락사고로 두 다리와 한쪽 팔, 한쪽 눈을 잃는다. 그러나 미 정부가 개발한 기계 팔과 다리, 전자 눈을 장착하고 다시 태어난 그는 초인간적 능력으로 악당들을 물리친다.
그로부터 50년, 만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히는 전자 눈 개발에 전 세계 소수의 기업들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전자 눈이란 기계 장치를 이용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김정석(45) 가천대 의용생체공학과 교수가 2019년 창업한 신생기업(스타트업) 셀리코도 그 중 하나다. 김 대표를 만나 개발 중인 마법 같은 전자 눈에 대해 들어 봤다.
황반변성증이나 망막색소변성증처럼 실명으로 이어지는 눈 질환에 걸리면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시세포층이 파괴된다. 시세포층은 빛의 세기를 감지해 생체전기신호를 만든다. 생성된 전기신호는 시신경을 타고 뇌로 넘어가 시각피질을 자극해 사물을 인지한다. 따라서 시세포가 파괴되면 빛을 전기신호로 바꾸지 못해 앞을 보지 못한다.
의외로 황반변성증이나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실명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황반변성증은 선진국 실명 원인의 50%를 차지한다. 황반변성증에 걸리면 실명에 대한 두려움에 충격이 커서 우울증 치료를 같이 받는 경우가 많다.
방송인 김성주, 이휘재, 인교진, 송승환 등이 방송에서 황반변성증 투병 사실을 밝혔고, 개그맨 이동우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실명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유전 질환인 망막색소변성증은 3,500명당 1명꼴로 발병하며, 국내에 2만 명의 환자가 있어요. 황반변성증 환자는 국내에 41만 명이 있습니다.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리면 젊은 나이에도 실명할 수 있으며, 황반변성증은 완치가 어려워 약물로 실명 속도를 늦추고 있죠."
시신경이 살아 있으면 눈의 시세포가 파괴돼도 시세포 역할을 하는 장치를 삽입해 시신경과 연결해서 앞을 볼 수 있게 한다. 전자 눈이 이런 원리다. "종이컵에 실을 연결해 음성을 전달하는 놀이와 같아요. 실이 끊어지면 소리를 전달하지 못하지만 망가진 종이컵은 바꾸면 되죠."
김 대표가 개발한 전자 눈은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이미지 센서 반도체를 이용한다. 가로 5㎜, 세로 4㎜ 크기의 극소형 이미지 센서를 안구 뒤쪽을 절개해 삽입한다. 반도체 크기를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다. "수정체를 통해 초점을 맞추는 크기가 가로 세로 각 5㎜예요. 여기 맞춰 이미지 센서를 만들었어요. 다만 세로를 4㎜로 줄인 이유는 현재 안과 수술로 절개할 수 있는 최대 크기가 4㎜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 커지면 안구를 절개했을 때 유리체가 빠져나와 눈이 쪼그라들어요. 한 번 쪼그라들면 복원할 수가 없어요."
전자 눈은 반도체인 만큼 당연히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세한 무선 전력 및 데이터 송수신장치가 이미지 센서 바로 옆에 케이블로 연결돼 있고 자기유도코일이 수정체 외부를 두르고 있다. 전력은 전자 눈과 함께 착용하는 안경 다리에 들어 있는 배터리에서 무선으로 보낸다. "배터리는 2.5cm 거리까지 무선으로 교류 전력을 보낼 수 있어요. 수정체 주변의 자기유도코일이 전력을 수신해 무선 송수신 장치에서 직류로 바꿔 이미지 센서로 보냅니다."
이런 장치들은 생체 거부 반응을 줄이기 위해 실리콘, 백금, 폴리이미드 등 생체적합 물질로 만든다. 이미지센서는 SK하이닉스의 350나노 반도체 공정 시설에서 생산한다. 김 대표는 일부러 350나노 공정을 택했다. "최첨단 공정인 3나노 기술은 반도체 회로가 너무 미세해 생체를 자극하는 전기 신호를 만들지 못합니다."
이미지 센서와 케이블은 셀리코에서 특허를 받은 비밀 기술인 특수 생체 적합물질로 코팅처리됐다. 셀리코는 전자 눈 관련 15개 국내외 특허를 보유해 국내에서 전자 눈 관련 가장 많은 특허를 갖고 있다.
이미지 센서에 전기와 데이터를 전달하는 케이블 두께도 비밀이다. "케이블이 너무 두꺼우면 탄성 때문에 망막 조직을 뚫고 나오고, 너무 얇으면 찢어져요. 또 액체에 젖어도 끊어지지 않고 전기와 데이터를 보낼 수 있도록 특수 물질을 코팅했어요."
김 대표가 개발하는 전자 눈은 보조 장치인 안경을 함께 써야 한다. 안경은 한가운데 카메라가 달려 있고, 다리에 무선 전력 송신용 배터리가 들어 있다. 카메라는 망막의 조리개 역할을 한다. "조리개 역할인 망막이 손상되면 빛에 반응하지 않아 형상을 못 알아봐요. 그래서 안경에 부착된 카메라가 이를 대신해 형상을 만든 뒤 안구에 삽입된 이미지 센서로 전송하죠."
김 대표는 2024년까지 시력 0.2로 앞을 볼 수 있는 2,000화소(픽셀)의 이미지 센서를 개발 중이다. "사람의 눈은 1억 화소로 사물을 인지해요. 2,000 화소만 돼도 생활하며 글을 읽을 수 있어요."
이미 김 대표는 256화소의 이미지 센서 개발에 성공했다. "1단계로 64화소 이미지 센서를 2017년에 개발했고, 2019년에 2단계인 256화소의 이미지 센서를 만들었어요."
256화소의 이미지 센서는 지난해 돼지 이식 실험을 통해 유효성을 확인했다. "돼지의 뇌파가 빛에 반응하는 것을 확인했죠. 올해 돼지에게 3개월 이상 이식하고 생체 거부반응을 확인하는 안전성 실험을 할 예정입니다."
2,000화소면 세계 최정상급이다. 상용화된 전자 눈 가운데 가장 앞선 제품은 1,600 화소의 이미지 센서를 탑재해 0.01 시력을 가진 독일의 '알파AMS'다. 미국 세컨드사이트가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판매하는 '어거스2'는 잠자리 눈 수준의 60화소 카메라로 영상을 인식해 0.003 시력이 나온다.
이 밖에 프랑스가 0.04 시력을 목표로 378화소의 카메라 방식 전자 눈을 개발해 임상시험 중이다. 이스라엘도 676화소의 카메라 방식 전자 눈을 임상시험 중이나 목표 시력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만은 4,000화소 이미지 센서를 목표로 개발 중이나 화소가 높은 만큼 오래 걸린다.
문제는 가격이다. 독일 알파AMS는 1억6,000만 원, 미국 어거스2는 2억 원이다. 김 대표는 개발중인 제품의 가격을 1억 원 이하로 낮출 생각이다. "사회에 이로움을 주며 성장하는 것이 목표여서 외산 대비 절반 이하 가격을 검토 중이에요. 가격을 최대한 낮춰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게 하고 싶어요."
다행히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퓨처플레이, 한국과학기술지주회사, 신한캐피탈 등에서 투자를 받았다. 투자금은 비공개다.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바이오의료기술 과제 사업,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창업지원 사업(TIPS) 등에 선정돼 정부 지원도 받았다. 김 대표는 내년 상반기 중에 추가 투자 유치를 진행할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고가의 전자 눈 이식 수술에 의료보험을 적용한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도 망막색소변성증과 황반변성증 환자가 계속 증가하는 만큼 건강보험이 적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도 황반변성증 환자가 자꾸 늘고 있어요. 25년 후에는 20명 중 한 명꼴로 걸리는 대중적 질환이 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어요."
원래 김 대표는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2003년 삼성전자에서 메모리반도체를 설계한 반도체 전문가다. 삼성에서 1년 근무하고 국비유학생에 선정돼 미국 남가주대학(USC)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전자 눈 개발로 유명한 산타크루즈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UC산타크루즈)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USC에서 인공망막을 연구하는 마크 후마윤 교수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전자 눈에 빠져들었어요. 마치 성경 속 기적을 보는 것 같았죠. 그래서 후마윤 교수에게 물어 UC산타크루즈 대학 연구팀에 이메일을 보내 합류했어요."
당시 UC산타크루즈는 미 국방부가 후원한 세컨드사이트와 전자 눈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었다. 미 국방부는 전쟁 중 눈 부상을 입은 병사들의 시력 회복을 위해 전자 눈 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때 마침 스마트 손목시계 '갤럭시 워치'를 개발하던 삼성전자에서 다시 불렀다. "갤럭시 워치에 모바일 건강관리 기능을 넣기 위한 회로설계팀에 합류했죠. 1년 정도 일을 한 뒤 2014년 첨단 의료기술을 개발하는 가천대 의공학과 교수로 가게 됐습니다. 전자 눈을 계속 개발하고 싶었어요."
김 대표는 2019년 가천대 실험실에서 '완전하다'는 뜻의 스페인어 이름을 가진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2017년 과기정통부에서 바이오의료기술 사업과제를 수주 받아 전자 눈을 개발하다가 본격적으로 사업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서서 창업했죠."
공교롭게 6명의 직원 대다수가 눈이 좋지 않다. "한 명은 황반변성증 전단계인 망막염을 앓고 있고, 가족이 황반변성증을 앓는 직원도 있어요. 그만큼 우리에게도 절실한 연구예요."
김 대표는 앞으로 증강현실(AR)과 혼합현실(MR)도 활용할 예정이다. 시력 상실 전 단계에 있는 황반변성증 중기 환자들을 위한 AR 안경 개발이다. "황반변성증에 걸리면 중심부터 시야가 손상돼 주변으로 확대돼요. AR 안경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중심 시야 옆에 영상을 띄워주는 거죠."
내년 완성을 목표로 안경 착용자들을 위한 MR 안경도 개발 중이다. "기존 AR 안경은 안경 착용자들이 AR 효과를 느낄 수 없어요. 안경 위에 덧쓰면 초점이 잘 맞지 않거든요. 지금 개발중인 MR 안경은 자동으로 초점을 맞춰 주기 때문에 안경 두 개를 겹쳐 쓰지 않고 하나만 써도 되고, AR 효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죠."
김 대표는 요즘 남다른 부담을 느끼고 있다. 투자자들을 통해 전자 눈 개발 소식이 알려지며 안과 질환을 앓는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 보니 부담이 커요. 하지만 사회에 좋은 일이니 감수해야 하는 거룩한 부담이죠. 전자 눈뿐만 아니라 앞으로 몸에 이식하는 의료 기술을 계속 개발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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