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속 파티에 대처하는 자세

입력
2021.07.08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17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 D클럽을 찾은 손님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 D클럽을 찾은 손님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흥겨웠던 분위기가 깨진다. 이 음악이 나오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DJ 실수로 가수 터보의 '생일축하곡'이 장내에 퍼졌다.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달아올랐고, 출구를 향해 힘없이 걸어가던 사람들이 플로어로 돌아와 몸을 흔들어댔다.

웨이터들이 "DJ 실수", "영업종료"를 목이 터져라 외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된 축제 분위기에 흠뻑 취한 몇 사람이 2~3m 높이의 무대에서 플로어로 몸을 던진 건 그때였다.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들렸고, 바닥에는 재난 현장 같은 혈흔도 보였다. 결국 연장된 축제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끝났다.

기억 속에도 흐릿한 20대 때의 나이트클럽 경험담이 갑자기 떠오른 건, 아이러니하게도 진지한 경제 기사를 보면서였다. 뉴스 제목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파티'와 '재난'이라는 단어가 당시 기억을 끄집어 낸 것 같다.

'파티'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서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는 상황을 빗대 자주 활용된다. '재난'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등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기사에 자주 나온다.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뉴스 제목으로 자주 나오는 것은 그만큼 현 경제 상황이 양극화돼 있어서다. 코로나 상황 속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보유한 자산 값어치가 올라 미소를 지었다면 그 사람은 파티를 즐기는 쪽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코로나 위기로 실직을 당하거나 장사가 안 돼 한숨을 쉬고 있다면 재난을 겪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은행과 정부의 엇박자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양극화 현상과 무관치 않다. 한국은행은 유동성 파티를 즐기는 쪽 분위기가 너무 과열됐다고 보고 파티를 끝낼 준비를 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화려한 파티장 밖에서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그들에게 빵이라도 나눠줘야 하는 게 정부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재정과 통화정책의 역할이 서로 달라 문제 될 게 없다'는 정부 설명이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풀려는 돈이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상당수 전달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국은행이 "이제 파티를 끝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유동성에 취한 시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돈을 더 나눠준다고 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니라, 축제는 아직 한참 남았다는 확신을 갖게 해준다.

보편지원이냐 선별지원이냐라는 진부한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파티장 밖 어려운 사람들을 확실히 골라내지 못한, 정부의 두루뭉술한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비판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지원금 지급 범위를 넓히려는 여당(정치인)의 압박이 있었다 하더라도,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클럽 폐장 때 실수로 울려 퍼진 '생일축하곡'은 사람들을 흥분하게만 만들었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끝나지 않는 파티를 기획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정부는 이제라도 빵을 나눠주면 안 될 사람들을 골라내야 한다. 파티장 속 사람들에게 그 빵은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흥분제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민재용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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