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에겐 '아파트'가 허락되지 않는다?

입력
2021.07.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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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주거권' 설문조사
같은 세대 청년에 비해 '아파트' 거주율 낮아
본인 소유 집에 사는 비율 적고 '방 한칸' 비율 높아
"주거정책, 법적가족 중심… 성소수자 소외"

편집자주

갈수록 다양하고 치열해지는 젠더 이슈, 누구도 더 이상 외면할 순 없습니다. 세상의 뉴스를 젠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젠, 젠더다' 코너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5월 22일 오후 서울 연세로 스타광장에서 열린 '2021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5월 22일 오후 서울 연세로 스타광장에서 열린 '2021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집에 있을 땐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무서웠죠. 보수적이신데다가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도 굉장히…."
"같이 사는 어머니가 동성애 반대 집회까지 나가는데, 예전부터 (성 정체성을) 들키면 '그냥 죽자' 이런 생각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집에서는 사소한 모든 것들, 편지, 일기, 사진 이런 걸 항상 감추고 점검하면서 지내야 했어요. 성 정체성과 관련된 건 모든 게 불편했죠."

집에서 독립한 19세 이상 성소수자 '주거권' 관련 면접조사 中

보통은 세상과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으며 쉴 수 있는 공간, 집. 그러나 이런 '집'이 성소수자들에게 고통일 때가 많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꽁꽁 감춘 채 살아가야 하는 공간은 결코 안식처가 될 수 없었다.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쏟아낼 수 없는 집은 오히려 끊임없이 불안을 자극하는 '위험의 장소'였다.

그렇기에 가족과 살던 공간에서의 독립은 성소수자들에게는 생존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독립 이후 자신의 공간이 생긴 이후로도 혐오와 차별, 현실 제도의 한계 등으로 이들의 주거 불안과 소외는 계속됐다.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가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만 19세 이상 949명의 성소수자에게 지난해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주거환경'을 물은 이유다.

성소수자는 지금 어떤 집에서 살고 있을까. 설문조사 응답률을 토대로 한 성소수자들이 사는 가장 흔한 집은 이렇다. 6평 이상 10평 미만(32.6%)의 원룸(36.5%). 월세 보증금은 500만 원 미만(35.3%)으로 월세는 30~50만 원(46.3%)이었다. 고작, 방 한 칸만이 이들에게 허락된 셈이다.

성소수자, 아파트 거주 비율은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미쳐

정부가 연일 서울 등 수도권 집값이 고점에 달했다며 가격 하락을 경고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4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정부가 연일 서울 등 수도권 집값이 고점에 달했다며 가격 하락을 경고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4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지난달 29일 열린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의 '성소수자 주거실태 및 주거불안에 관한 연구 발표회' 자료를 살펴보면 성소수자가 겪는 주거빈곤의 현실이 드러나 있다.

전국 2030세대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47%이다. 이에 비해 같은 연령대 성소수자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3분의 1도 되지 않는 13.4%에 불과했다. 반면 단독, 다가구주택이나 연립,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은 높았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단어가 쓰일 정도로 한국에서 아파트는 그 자체로 사회·경제적 위치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이 현저하다는 점은 성소수자의 주거환경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는 방증이다.

거주 형태도 월세나 전세인 경우가 많았다. 청년세대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수도권 기준 성소수자는 같은 세대(12.7%)에 비해서도 본인 소유의 집에 사는 비율이 6.6%로 낮았다. 반면 성소수자의 월세(53%)나 전세(37.4%) 거주율은 청년세대(각각 48.1%·34.1%)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창문 없는 방' 못 벗어나는 성소수자들

지난달 29일 열린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의 '성소수자 주거실태 및 주거불안에 관한 연구 발표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캐오 용산나눔의집 소장, 김경서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김민수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박사.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제공

지난달 29일 열린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의 '성소수자 주거실태 및 주거불안에 관한 연구 발표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캐오 용산나눔의집 소장, 김경서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김민수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박사.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제공

성소수자가 같은 나이의 청년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주거환경에 놓인 이유는 뭘까.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정상가족' 중심의 주거 정책을 원인으로 꼽았다. 1인 가구이거나 함께 살더라도 결혼도 못 하는 이들에게는 아파트 청약이나 대출 우대도 먼 나라 이야기다.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인 현수(이하 성소수자 당사자 이름은 전부 가명)씨는 "주택정책이 성소수자들은 물론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1인 가구, 동거 커플 등등을 다 고려하지 않는다"라면서 "남들은 결혼을 한다, 청약을 한다, 어쩐다 하는데 (나는) 결혼도 못하고 1인 가구라 청약도 어렵다"라고 한탄했다.

김민수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박사는 "국내 공공임대주택은 혈연 및 혼인관계를 전제하고 있다"라면서 "비혼 1인가구나 성소수자 커플은 철저히 배제된다"라고 지적했다.

아웃팅 등으로 탈(脫)가정 할 수밖에 없던 성소수자에 대한 지원체계 역시 전무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30대 트랜스젠더 여성 유진씨는 어머니의 폭력 등으로 집을 나온 이후 한 달 35만 원짜리 창문 없는 고시원 쪽방에서 머무르고 있다. 매달 호르몬 치료에 들어가는 돈 5만원이면 창문 있는 방으로 옮길 수 있지만, 법적 성별 불일치로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그에겐 언감생심이다. 유진씨는 "구직 사이트에 등록해놨지만, 성별을 남자로 봐 일을 구하기 쉽지 않다"라고 전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동산 계약에 난항을 겪기도 한다. 다른 트랜스젠더 여성은 "집 계약을 진행 중에 계약서엔 남자로 되어있지만, 외양은 여성이라 바로 트랜스젠더라는 걸 (집주인이) 알아차려 계약이 파기된 경험이 있다"라고 전했다. 김 박사는 "성확정 수술, 그리고 법적 성별정정을 마치기 전까지 트랜스젠더의 적절한 주거공간은 계속 유예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웃 단체 카톡방서 "너 게이냐" 조롱도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외벽에 성소수자(LGBT)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지난 2017년 부터 성소수자들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무지개 깃발을 걸어왔다. 뉴시스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외벽에 성소수자(LGBT)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지난 2017년 부터 성소수자들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무지개 깃발을 걸어왔다. 뉴시스

단순히 좁은 평수와 온종일 햇빛도 들지 않는 낡은 집만이 독립에 나선 성소수자를 괴롭히는 전부는 아니다. 겨우 집을 구해 이사를 마치더라도 이웃의 편견이라는 '벽'은 견고하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공동체에 섞이지 못하고 터부시되거나 혐오에 시달리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했을 때 성소수자 남성인 설민씨가 사는 아파트 단체 카톡방에서는 혐오 발언이 이어졌다. 설민씨가 "그렇게 얘기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라고 말리자 "너 게이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후로도 열댓 명의 이웃이 그를 향한 욕설과 차별 발언을 일삼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던 현민씨는 자동차에 전시해뒀던 무지개색 깃발을 치웠다. 무지개색 깃발은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한다.

주변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부담이다. 성소수자의 경우 이웃과 교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7.1%로 절반을 넘었다. 그 이유로는 '이웃의 간섭이 불편해서'라는 답변이 가장 높았다. 레즈비언 여성인 미연씨도 "옆집 할머니가 '언니랑 같이 사나 보네. 둘이 친구냐' '왜 결혼을 안 하고 둘이 사나'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불편했다"라고 경험을 전했다.

또 다른 성소수자 여성 세아씨 역시 연인과 함께 살고 있지만, 집 주변에서는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세아씨는 "성 정체성 때문에 이 집에 못 살게 되거나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하고 괴롭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여자 둘이 사는 걸 주변에서 다 안다는 점도 두렵다"라고 했다. 여성의 경우 성소수자 차별뿐 아니라 성차별로 인한 '이중 불안'에 시달리는 셈이다.

"내가 죽으면 이 집은 누가 가져가나요"

지난달 29일 진행된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의 '성소수자 주거실태 및 주거불안에 관한 연구 발표회'에서 김순남(왼쪽 사진) 가족구성권연구소장과 아델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똥' 활동가가 발표하고 있다. 성수소자주거권네트워크 제공

지난달 29일 진행된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의 '성소수자 주거실태 및 주거불안에 관한 연구 발표회'에서 김순남(왼쪽 사진) 가족구성권연구소장과 아델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똥' 활동가가 발표하고 있다. 성수소자주거권네트워크 제공

"'만약에 내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이 집의 소유권은 누가 가져가지'라는 고민이 있어요. 제가 죽는다면 이 집에 짝꿍도 돈을 다 냈는데도 권리가 없어져 버리잖아요."

수도권에서 연인과 돈을 모아 산 오피스텔에서 함께 사는 30대 성소수자 정혜씨의 고민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성소수자 커플은 사후 상속권이 없다. 유언이 없으면 직계 비속, 형제자매,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의 순서로 재산을 나누고, 유언으로도 재산 전부를 혈연관계가 아닌 특정인에게 넘기긴 힘들다. 재산 전부를 주겠다는 유언을 남기더라도 법정상속인(직계비속, 배우자, 직계존속, 형제 등)이 유류분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장은 이런 현상을 두고 "법적 가족에 기반해 주거정책이 작동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임차인 사망 시 임차권이 승계되지 않는다는 점뿐만 아니라 전세 대출의 제한이나 공동 주거 계약이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통해서 성소수자의 주거 불안정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는 성소수자의 가족 구성권 침해뿐만 아니라 함께 돌보고, 협조해온 다양한 생활 동반자 관계의 삶의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만드는 차별을 정당화한다"라고 덧붙였다.

주거권은 '권리'… "유예 없어야"


당신이 앉아있는 방의 형태와 천장의 높이, 형태, 색상을 살펴보길 바란다. 벽의 질감, 구조, 바닥 표면의 부드러움 또는 딱딱함은 어떤지 생각해보라. (중략) 이 모든 요소가 당신에게 영향을 준다. 이들은 당신이 인식한 방식, 그리고 당신이 생각조차 하지 못한 방식으로 당신의 행복과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공간혁명' 세라 W. 골드 헤이건

주거권의 정의는 '물리적·사회적 위험에서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주거기본법)이다. 적절한 주거생활을 누릴 권리는 세계인권선언에도 명시되어 있고,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권리'라는 단어는 무력하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경우 그들의 이런저런 권리는 쉽게 뒤로 밀리곤 한다.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고군분투를 겪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고립되지 않는 삶, 그리고 동네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이들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주거권의 요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박사는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 권리, 즉 성소수자의 주거권 요구는 4인 가구 중심의 사회에서 밀려난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투쟁"이라고 했다.

아델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역시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 성별 정정을 마치기 전까지, 성소수자들의 안전하고 편안한 주거와 삶은 나중으로 유예될 수만은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거는 성공한 자립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아니라, 모두의 자립에서 가장 기본적인 출발선"이라고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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