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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감자를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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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번기다. 날이 더워지면 식물도 성장 속도가 빨라지기에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고추, 오이, 호박 등을 따고 잡초들도 손을 봐야 한다. 게으른 도시농부라 잡초야 제거보다 공존이 편하다 해도 작물 옆에 떡 하니 뿌리박은 놈들까지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옥수수 추비를 하고 들깨 심을 공간도 마련하고, 텃밭은 이렇듯 늘 사람의 손길과 발소리를 부른다.
농작물 수확이야 언제나 기대 반, 설렘 반이라지만 내게는 당연히 감자가 갑이다. 그해의 텃밭을 연 뒤, 3월 중순 제일 먼저 심는 작물이기도 하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감자보다 훌륭한 식재료도 없을 것이다. 감자전, 옹심이, 타코 등 국내에 알려진 요리만도 40가지가 훌쩍 넘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덕에, 감자튀김, 웨지감자 정도는 나도 웬만큼 이력이 있다.
아내가 감자 몇 알을 들고 농막으로 올라간다. 수확기면 의례처럼 하는 일이 그해 첫 감자로 감자전 만들기다. 집에서는 대부분 내가 요리를 하지만 이곳에 오면 일손이 바쁜 탓에 식사담당은 아내 몫이 된다. 감자를 얇게 채 썰어 청양고추, 후추 약간을 더해 만든 전은, 첫 감자라는 상징과 더불어 텃밭의 기막힌 별미가 되어준다.
감자 캐는 일은 어렵지 않다. 덩이줄기, 즉 감자알이 땅 깊이 파고들지 않기에 호미자루로 살살 흙을 긁어내면 그만이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에서 젊고 예쁘장한 주인공이 감자를 야트막하게 심기에, “와, 저러면 감자가 좀비처럼 흙 밖으로 기어 나올 텐데…”라며 훈수를 두다가 아내한테 한소리 듣기도 했지만 사실이 그렇다. 감자는 위로 열리고 고구마는 아래로 달린다는 말이 있다. 감자는 15㎝ 정도 깊이 심어야지, 아니면 모조리 땅밖으로 삐져나오고 햇볕을 받아 독성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와 반대로 고구마는 줄기 아래 매달리기에 비스듬하게 심는 게 좋다.
누군가에게 땅은 투자와 투기의 대상일 뿐이지만 땅만큼 인심이 넉넉한 존재도 없다. 도시의 팬데믹 집중, 부동산 투기, 취업을 향한 남녀 갈등…요즘은 도시에서 들려오는 뉴스가 다들 심란하다. 옛날에는 가난이 지겨워 시골이 도시로 떠났다지만 문득 도시가 시골로 눈을 돌리면 어떨까, 안이한 생각도 해본다. 외국영화를 보면 시골도 깨끗하고 세련된 모습이던데, 그렇게 도시에 돈을 쏟아 붓고도 저 모양 저 꼴이라니…하기야 위정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나 같은 촌로가 웬 왈가왈부란 말인가.
올해는 신기하게도 감자가 풍년이다. 한 줄기에 적당한 크기의 감자가 6~10개씩 달려 나오자 아내도 신이 나서 환호를 보낸다. 감자 농사는 잘해야 스무 배 장사라는 말이 있다. 자그마한 씨감자 4kg을 심어 80kg이 넘게 수확했으니 대풍은 분명 대풍이다. “종자가 좋았나? 올해는 왜 이렇지?” 아내가 묻기에 농부가 열심히 일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럼 작년엔 왜 그렇게 게을렀느냐며 타박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또 농사일이다. 지난해에도 두 달 가까이 장마가 이어지는 통에 고추는 탄저병이 들고 잎채소도 다 녹아내리지 않았던가. 올해의 풍년도 종자, 바람과 햇볕, 하다못해 여기저기 제 집을 마련한 지렁이들까지 한몫을 담당했으리라. 얼치기 도시농부야 그저 자그마한 대풍이나마 감사할 따름이다. 어제처럼 시원하게 소나기나 한바탕 쏟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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