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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를 ‘거래’하겠다는 발상

입력
2021.07.02 18: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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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기념관서 대선출마 윤석열
꼬인 한일관계 그랜드바겐 해법 제시
외교는 원칙 지켜야…거래 대상 아냐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도리도리 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누리꾼들로부터 얻은 별명이 회자되고 있다. 쉴 새 없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을 ‘저격’한 것이다. 그런 탓인지 정작 출마 메시지보다 ‘도리도리 윤’이 더 부각되는 모양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자신을 검찰수장으로 발탁한 문재인 정부를 향해 거침없이 각을 세우며 권력의지를 다졌다. “소수의 이권 카르텔” “권력 사유화”를 넘어 급기야 “국민 약탈”이라며 선을 훌쩍 넘었다. “부패·무능 정부”라는 비난은 차라리 절제된 표현에 가까웠다.

야권에서 압도적으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로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훌륭한 연설”이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반면 여당은 “무능한 검사의 넋두리” “현 정권에서 총장을 지낸 자의 자기부정”이라며 맹비난했다. 어떻든 윤 전 총장의 주사위는 던져졌고, 9개월여 남은 대선 레이스에서 그를 둘러싼 ‘X파일’이 검증대에 올려질 터이다.

윤 전 총장의 메시지는 검사 출신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급조된 느낌이다. 천안함 피격과 K-9 자주포 폭발사고 생존자를 첫 머리에 꺼내며 국가 안보를 지키다 스러져간 영웅들을 소환했지만, 자신은 안과질환 부등시(不等視)로 병역면제 혜택을 누렸다. 그런 점에서 ‘군대 안 갔다 온’ 약점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안보를 입에 올렸다면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

그의 목소리가 커진 대목은 공정과 정의를 언급할 때였다. 그러나 총장 재임시절 이른바 윤석열 사단 ‘인사 특혜’에 대해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또 자신의 처가를 둘러싼 의혹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주변에선 “10원짜리 한 장 피해준 적 없다”고 조롱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답변도 실망스러웠다. ‘10원짜리’ 발언 해명을 요구하는 기자의 질문엔 “법 적용에 예외가 없다”라는 원칙론으로 동문서답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마친 뒤 지지자와 취재진에게 둘러싸인 채 행사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마친 뒤 지지자와 취재진에게 둘러싸인 채 행사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눈에 띄는 부분은 위안부, 강제징용, 독도, 경제 보복 등으로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에 대한 해법이다. 윤 전 총장은 “모든 문제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랜드바겐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치 예상 질문을 미리 준비한 듯 쾌도난마 같은 외교 소신을 뽐냈다. 그랜드바겐은 포괄적 합의로 일괄 타결하자는 방안이다. 한마디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의미다. 그러면서 “외교는 실용주의, 현실주의에 입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다렸다는 듯 일본 언론들은 다음 날 1면 헤드라인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외교는 원칙의 문제다. 한번 원칙이 무너진 외교는 더 이상 외교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비즈니스로 전락할 뿐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선후의 안건은 있을 수 있지만, 물건 주고받듯 거래 대상이 돼선 곤란하다. 더구나 위안부 문제는 천부인권에 속하는 영역이다. 지금 당장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로 넘겨둬야 할 몫도 있는 게 외교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가 깊은 고민 없이 벼락치기 대권수업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 앞서 권성동, 정진석, 김성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과 지지자들 앞에서 인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 앞서 권성동, 정진석, 김성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과 지지자들 앞에서 인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평생을 ‘칼잡이’로 살아온 윤 전 총장이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첫 무대로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선택했지만 항일의 불꽃을 되살린 윤 의사의 정신을 본받지는 못한 것 같다. ‘어려운 장소’에서 신중하고 삼가는 태도 역시 찾아보기 어려웠다. 초청인사들의 면면도 ‘그 나물에 그 밥’ 수준. 메시지의 참신함도 물론 없었다. 현 정부를 욕하고, 반문 텐트 설치에만 골몰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 국민은 많지 않다. 되레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젓는 유권자들이 늘어날 것이다.


최형철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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